→고마가타(駒形)의 미꾸라지 요리

posted Dec 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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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높은 보양식으로 장어만 소개하고 그만두면 서운해 할 생선이 있으니, 바로 미꾸라지다. “미꾸라지가 금붕어 흉내를 내는 것처럼(どじょうがさ、金魚のまねすることねんだよなあ)”이라는 말은 일본의 시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 1924-1991)이 쓴 시의 한 구절이었다. 이 구절이 2011년 9월에 다시 화제가 된 것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씨가 총리직에 오르면서, 아이다씨의 싯구를 인용하여 자신은 금붕어 흉내를 내지 않고 진흙 속을 누비는 미꾸라지처럼 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다 총리는 이른바 “미꾸라지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취임 초기에는 시중에 기다랗고 시커멓게 생긴 미꾸라지 과자라는 튀김과자조차 “총리 과자”라는 별명을 얻고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우리말에서는 누군가를 미꾸라지에 비유하면 “뺀질뺀질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술책”이라든가, “혼자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일본에서도 원래 미꾸라지가 대단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은 아니라서 총리가 스스로를 미꾸라지에 비유한 것이 일종의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미꾸라지는 우리만큼 부정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인들도 미꾸라지를 먹는다. 일본말로는 미꾸라지를 ‘도죠(泥鰌)’라고 부르는데, 우리 추어탕처럼 형체를 못 알아보게 갈아서 먹지 않고, 길쭈름한 채로 배를 갈라 얇게 깎은 우엉과 함께 냄비에 넣어 삶은 다음, 갖은 양념을 넣고 달걀을 풀어 얹어서 요리한다. 이것을 ‘야나가와나베(柳川鍋)’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미꾸라지라고 하면, 으악, 소리를 지르며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아마도 비늘이 없는 생선이라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따져 보아도 고등어나 꽁치는 먹으면서 미꾸라지는 징그럽다고 말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은 자명하다.

지금은 미꾸라지(도죠)를 どじょう라고 쓰지만 예전에는 どぜう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아사쿠사(浅草)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마가타(駒形)에는 커다랗게 どぜう(도제우라고 쓰고 도죠라고 읽는다)라는 상호를 내건 미꾸라지 전문점이 있다. 1801년에 창업을 해서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식당인데, 도쿄 시민들에게 미꾸라지 요리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다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이다.

아직도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봄에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널따란 홀에는 갈대로 이어붙인 바닥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특이한 것은 테이블도 없다는 점이었다. 야트막한 나무판을 길게 깔아두고 탁자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는데, 손님들 중에는 젊은 여성분들도 제법 많았다. 마침내 도죠 나베가 나왔다. 야나가와 나베와는 달리 달걀도 풀지 않고 전신의 미꾸라지만 가지런히 누워 있는 얕은 냄비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추어탕을 즐겨 먹고 있는데, 우리식 추어탕이 미꾸라지를 갈아서 만드는 것이다 보니 미꾸라지를 먹으면서 그 자태를 마주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가만 보니 우리나라 미꾸라지와는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일본 미꾸라지가 조금 더 통통하고 몸통이 짧았다.

요즘은 논과 강에서 자연산 미꾸라지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양식한 것을 쓴다는데, 고마가타의 가게에서는 요즘 전량을 규슈지방 오이타현(大分県) 양식장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냄비가 끓기 시작할 때 썰어놓은 파를 듬뿍 얹어 넣었고, 대나무통 속에 들어 있는 산초 가루를 뿌렸다. 역시 장어나 미꾸라지 요리에는 산초가 제격이다. 낯선 음식이었지만 맛이나 씹는 느낌은 별다른 위화감이 없었다. 물에 타서 이른바 미즈와리(水割り)로 마시는 일본 소주에는 훌륭한 안주가 되었다.

호기심이 일어 메뉴에 적혀 있는 ‘사키나베(さきなべ)’도 주문해 보았다. 이번에는 온전한 미꾸라지 대신 배를 갈라서 두 쪽으로 열어놓은 미꾸라지 전골이 나왔다. 보통 이런 식으로 생선 배를 갈라 여는 것을 ‘히라키(開き)’라고 부르는데, 미꾸라지의 경우는 ‘찢는다’는 뜻의 ‘사키(裂き)’라고 쓰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양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양념구이인 가바야키(蒲焼き)도 주문해서 맛보았다. 과연 장어구이와도 흡사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 내내 미꾸라지만 먹은 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강변을 산책했다.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내년에 다시 꽃이 피고 질 때까지, 오늘 먹어 치운 미꾸라지들이여. 내게 힘을 주길.

다이토구(台東区) 고마가타(駒形) 도죠(どぜう)
주소 : 도쿄도 다이토구 고마가타(東京都台東区駒形)1-7−12
전화 : 03-3842-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