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진쟈(日枝神社) 옆 장어구이(鰻懐石) 야마노차야(山の茶屋)

posted Sep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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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다.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주로 먹는 것은 네 종류다. 우선 여름철 스테미나 음식으로 알려진 민물장어다. 그냥 뱀장어라고도 부르는데, 민물장어 하면 나는 6년 전쯤 작은 아들을 데리고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낙화암을 구경한 뒤에 강변에서 구워먹으면서 아들에게 소주잔을 처음으로 권했던 추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일본에서는 민물장어를 우나기(鰻)라고 부른다. 우나기라면 야쿠쇼 코지(役所広司) 주연의 1997년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 다음부터는 전부 바다에서 사는 장어들로서, 흔히 일어 이름인 아나고(穴子)라고 불려지고 있는 붕장어가 있다. 아아, 아나고라면, 내가 여름방학마다 부산에 내려가면 할머니께서 자갈치 시장에서 잔뜩 사다가 회를 만들어 주셨던 바로 그 생선이다. 요즘은 이상스럽게도 아나고를 길쭉하게 썰어서도 회를 만드는 모양이더라만, 원래 부산에서 먹는 아나고 회는 살점이 부슬부슬해질 때까지 잘게 썬 다음 마른 수건으로 꼭 짜서 물기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 접시 위에 펼쳐 놓으면 아나고 회는 마치 솜뭉치처럼 보였다. 이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침샘은 분수처럼 침을 뿜어내고 있다.

그 다음은 포장마차의 단골 안주인 꼼장어다. 꼼장어는 네 종류 중에서 몸집이 제일 작아서 통발로 여러 마리씩 잡는다. 꼼장어는 먹장어라고도 하는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꼼장어의 가죽으로는 일본나막신의 끈 같은 것을 만든다. 한국에서는 그다지도 인기가 있는 꼼장어지만 일본 사람들이 꼼장어를 먹는다는 얘기는 아직도 들어보지 못했다. 꼼장어의 일본 이름은 아마도 ‘쿠로아나고’인 모양인데, 그게 뭔지 안다는 일본인도 아직 못만나보았다.

마지막으로, 다 자라면 2m까지 몸집이 커지는 갯장어가 있다. 얼굴이 마치 늑대처럼 사납게 생긴 갯장어는 일본말로는 하모(鱧)라고 부르고, 주로 샤부샤부처럼 양념한 국물에 익혀 먹는 유비키(湯引き) 방식의 조리법이 애용된다. 하모 유비키라면, 서울에서는 공덕동 마포경찰서 맞은편 서부지원 근처의 매일매일 실내포차에서 먹어본 것이 으뜸이었다.

일본에서는 복날을 도요노 우시노 히(土用の丑の日)라고 부르는데, 이날은 민물장어(우나기)를 먹는 것이 관습이다. 우리의 삼계탕 대용품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노래책인 망요슈(万葉集)에도 민물장어는 자양강장에 좋은 식품으로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연간 장어 소비량은 15만톤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장어 한 마리를 200g 정도라고 치면, 일본의 전국민이 1년에 최소한 여섯 마리씩은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들은 일설에 따르면, 일본에서 복날에 장어를 먹는 관습의 기원은 어떤 박물학자가 고안한 천재적인 마케팅 전략의 결과였다고 한다. 때는 에도 시대. 여름철 불경기에 장어가 팔리지 않는다는 생선가게 주인의 낙담어린 고충을 들은 박물학자 히라가겐나이(平賀源内)씨가 망요슈에서 힌트를 얻어 “복날은 장어의 날, 장어 먹고 여름을 이기자” 라는 카피를 고안해 내고 생선가게 간판에 ‘장어 먹는 복날’이라고 써 붙인 데서부터 장어가 스테미너 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히라가씨가 요즘 태어났다면 덴츠(電通)사 같은 광고회사에서 활약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나기는 양쪽으로 갈라서 양념을 발라 굽기도 하지만, 카바야키(蒲焼き)라고 해서 한 마리를 통채로 꼬치에 구불구불 끼워서 익혀 먹기도 한다. 물론 밥 위에 장어구이를 얹은 우나기동(鰻丼)도 인기가 높다. 분카(文化, 1804-1818)시대에 오쿠보이마스케(大久保今助)라는 연극(芝居) 연출가가 장어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장어를 구워 극장까지 가져오는 동안 식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따뜻한 장어구이를 먹기 위한 아이디어로 뜨거운 밥 위에 장어구이를 올리는 아이디어를 그가 발휘한 데서 우나기동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장어 요리법은 관동지방과 관서지방이 서로 다르다. 관동에서는 등부터, 관서에서는 배부터 가르고, 관동에서는 가른 장어를 반으로 자른 후 꼬치를 만들어 살짝 구운 후 쪄서 소스를 바른 후 다시 구워낸다. 관서에서는 찌지 않고 소스를 발라가면서 구워낸다. 관동지방의 요리법이 부드럽고 담백한 장어구이를 만드는 반면, 관서지방의 장어구이는 맛이 진하고 식감이 박력 있다.

동경 시내 히에진쟈(日枝神社) 바로 곁에 관동식 우나기 정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 시내 한복판이지만 모르고 가면 찾기가 쉽지 않은 위치에 있고, 일단 들어가면 시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산속의 분위기가 난다. 그 이름도 우아한 야마노차야(山の茶屋), 그러니까 직역하면 산 속의 찻집이라는 뜻이다.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정치가나 재계 인사들도 많이 찾는 식당이고, 예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서는 자리를 잡기가 어렵다.

점심 메뉴가 10,000엔, 17,000엔, 저녁은 15,000엔, 20,000엔이니까 꽤나 비싼 식당인 셈인데, 자주 가기는 어렵지만 비싼 만큼 관동식 장어구이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메인 코스가 나오기 전에는 장어 간 구이(肝焼き)가 나오는데 그 맛이 오묘하다. 소스를 바르지 않은 장어구이를 시로야키(白焼き)라고 부르는데, 이 식당에서는 양념구이와 시로야키를 모두 즐길 수 있다. 관동식으로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 살짝 쪄서 다시 구운 장어라서, 혀 위에서 살살 녹을만큼 부드럽고, 양념이 진하지 않아서 장어의 본래 맛이 잘 살아 있다.

야마노차야의 주소는 동경도 치요다구 나가타쵸 2-10-6 (東京都千代田区永田町2-10-6)이고, 연락처는 03-3581-0585다. 영업시간은 11:30-14:00, 17:00-21:30이고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