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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4 서산, 부여

posted Jun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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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지껏 살면서 잘한 일이, 또는 제일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둘 낳았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2년 터울로, 같은 성별로. (그러니까, 그것이... 나 혼자 한 일은 아니지만, 그게 뭐 대수냐.)

    첫째,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둘째, 떠돌이 삶을 살게 될 우리 아이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를 선물했으며, 셋째, 두 형제가 형제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많은 것을 배운다.

    외동딸, 외동아들로 자란 분들, 또는 외동딸, 외동아들을 가진 분들을 모욕할 뜻은 추호도 없지만, 중국정부가 1979년부터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1가구 1자녀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이래 중국의 청소년층을 이루게 된 아이들을 “소황제족”이라고 일컫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세살 무렵부터 sibling rivalry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그것을 해보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덜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이 덜한 경향이 있다. 형제지간은 polis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최초에, 그리고 최후까지 가지게 되는 하나의 작은 사회라는 견지에서, 형제는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님인 셈이다.

    곁길로 좀 새지만, 중국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79년 이래 태어나 장차 중국의 장래를 떠맡게 될 세대가 대체로 외동아들딸들이라는 점은 섬뜩하다. 한번 상상해 보라. 5억 인구중 상당수가 소황제족인 나라.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할수록 자발적인 출산율은 금새 2자녀 이하로 줄어든다. 그래서 나중엔 중국정부가 거꾸로 출산율을 높이려고 애를 써도 중국인구는 계속 외동아들딸들로 채워질지 모른다!) 이 아이들은 형도 없고 동생도 없고, 그러므로 사촌동생도 없고, 장차 이모도, 삼촌도, 고모도, 외삼촌도 없다.

    중국이 지금처럼 정치개혁을 유보한 경제성장을 어떤 식으로, 얼마 동안 계속할지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79년생 이후 세대가 30-40대가 되는 2010년대의 중국이 지역적 소득격차나 정치적 발언권의 억제를 지금처럼 무난히 참을 수 있을 것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정부가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치러야 할 값은, 성비가 119:100으로 기형화 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좌우지간, 우리는 아이가 둘이다. 둘이라서 행복하고 날마다 보람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법 자라 둘이 제각각 생각하는 방향이나 특성이 눈에 띄게 달라지면서, 한 가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터울이 작은 형제를 기르다 보면, 대체로 언제나 아이들을 “아이들”로 마치 패키지처럼 대하게 된다. 갑자기 한 녀석이 어디 친구집에라도 가서 자고 올라 치면 온식구가 뭐 하나 빠진 것처럼 서운할 뿐만 아니라, 다소간 어색하기조차 하다. 두 아이를 앞에 놓고 대할 때와 하나를 놓고 대할 때 부모의 마음가짐이 똑같을 수는 없다. 아이를 둘 이상 가진 부모들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서로에게 맡기고 게을러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지나친 관심은 아이를 spoil시킬지 모르지만, 개별적인 관심이 모자란대서야 그 또한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일수가 없다.

    생각이 미치면 뭐하나, 행동에 옮겨야지. 2005년 봄, 여전히 정신 없이 많은 업무로 2년 이상째 식구들 얼굴을 잘 못보고 지낸 걸 만회할 겸, 3월 둘째주말에 큰 녀석과 단둘이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행선지는 별 뜻 없이 서산 간월도. 버스에서 내린 서산 시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해미에 가서 한적한 읍성터를 산책했고, 서산의 유명한 갈비집에서 저녁도 먹었다.

    한밤중에 찾아간 간월도에서는 물어 물어 민박집에 들었고, 아직 쌀쌀한 초봄 바람을 맞으며 감감한 바닷가 방파제에 밧줄을 걸고 장사하는 배 위에 올라, 그 유명한 새조개 샤브샤브를 안주삼아 소주잔 마주치며 주도를 가르쳤다. (자고로 아버지한테서 술을 배워야 나중에 실수를 안하는 법.) 아버지가 평소 아들한테 묻기 쑥스러운 신상질문이나 장래 희망 같은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을씨년스럽게 생긴 민박집 온돌방은 아늑하기만 했다. 이른 아침, 철새들도 다 뜨고 빈 그 황망한 갯벌을 온가족이 걷는 것도 재미났겠지만, 부자간 둘이서만 걸어보는 느낌도 과연 색다른 것이었다.

    4월에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아 이번에는 둘째 차례. 막내 아니랄까봐 오만에 있을 때도 엄마를 떼어놓고 어딜 가면 텐트 안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먹거리곤 하던 녀석이라, 제 형만큼 재미있어 할지 좀 걱정이긴 했다. 또 한번, 손바닥에 침 뱉어 내리치는 식의 무원칙으로 결정한 행선지는 이번에는 부여.

    시외버스를 타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버스는 공주에 닿았다. 거기서 무녕왕릉 앞까지 갔다가 문을 닫았길래 (아쉬워 할 거 무어랴) 곧장 부여행. 백마강 내려다 보이는 낙화암에서 찬 강바람을 맞으며 백제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도 해 주었고, 저 강물에서 나왔다는 용 얘기도 해 주었다. 고란사 앞으로 걸어내려오며 백마강 달밤 노래도 알려줬으니, 얘까지 와서 배 한번 타지 않을 수 있었으랴. 배까지 탔는데, 미식가인 둘째아들을 데리고 장어구이 한번 먹지 않을 수 있었으랴. 이 녀석도 구운 장어 뼈가 맛있다며 소주를 넙죽넙죽 받아마셨다.

    국토지리를 실습하는 김에 욕심을 내서 한밤중에 유성에 도착해서 호텔에 투숙했다. (...라고 내가 얘기하면, 이 녀석은 꼭 옆에서 호텔에 갔더니 방값이 7만원이나 해서 4만원 하는 모텔로 갔노라는, 별 필요없는 사족을 붙이곤 한다.) 중요한 것은, 제일 좋은 호텔에 걸어 들어가서 오밤중에 온천욕을 하긴 했다는 점이다. (아빠, 물이 역시 좀 미끈미끈하네요.)

    아이가 둘이라는 자화자찬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아이들이 서로서로 저희들끼리 알아서 배우고 깨우치게만 내버려 두는 게으름의 핑계가 되어줄 수 없다. (그토록 바삐 생업에 종사하던 우리 어머니도 그러지 않으셨더니라.) 아이들이 몇이건 간에 상관 없이, 못된 풍속에 웃자라거나 지혜와 범절에 설자라거나 세상에 도움 주지 못하는 쪽으로 덧자라난다면 그 어찌 부모 책임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앞으로도 이 녀석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는데 내 힘이 부치지는 않으려는지. 우째 이렇게 세상에 쉽고 만만한 일은 도무지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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