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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5. Cote d'Azure

posted Jun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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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4일, 수요일


망설이다가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5.12-23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Cannes으로의 여행.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하던 터였다. 비용은 부담스러웠지만, 학생신분일 때가 아니면 칸이라는 도시는 어쩌면 평생 가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옥스퍼드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여행사에서 항공권을 구매하고 렌터카와 보험료를 포함하니 꼭 800파운드가 들었다. 영화제 기간이라 칸에는 숙소가 전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인근 도시인 니스Nice에 숙소를 정했다.


5월 18일, 수요일


이번 학기 마지막 튜토리얼과 국제법 수업을 위한 에세이를 새벽까지 미리 써두고 새벽 6시에 공항으로 나섰다. 니스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경.  길이 복잡해서 렌터카를 몰면서 예약한 호텔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서울의 장마철을 연상케 하는 비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호텔 방은 비좁았다. 짐을 푸는 동안 비가 그쳤기에,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꼬마열차petit train를 타고 니스 구시가지와 언덕위의 성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궤도 위를 달리는 열차가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해 바퀴 달린 객차를 여러 개 연결해 둔 트램tram이었다. 자동차조차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골목 사이로 궤도도 없는 열차를 능숙하게 모는 운전사의 솜씨가 놀라웠다. 이름난 관광지답게, 니스의 구시가지는 지저분했고 시끄러웠다.


남불의 분위기가 원래 이런 것인 줄 몰랐냐고 하면 달리 항변할 길은 없지만, 새벽 내내 호텔 주변이 떠들썩해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잠귀가 유난히 얕은 아들을 재우느라, 아내와 나는 잠을 더 설쳤다. 우리 호텔방이 끼고 있는 골목이 하필 보행자 전용구간인 식당가여서, 고성방가를 해대는 취객들은 새벽이 되어도 끊어질 줄을 몰랐다.


5월 19일, 목요일


밤새 취객들의 소음에 시달린 덕분에 니스에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차를 몰고 칸으로 갔다. 두 도시의 거리는 24km 정도에 불과했다.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칸 시내는 붐볐다. 차를 세우고 유모차에 아들을 태운 다음, 우리는 크로와제트 거리 옆으로 길게 펼쳐진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여성잡지 광고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늘씬무쌍한 미인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일광욕을 하거나 서로 재잘대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하나같이 토플리스였다는 점이다. 장관이긴 했지만, 윗통을 벗어젖히고 당당히 활보하는 여자들의 벗은 몸을 안 보는 척 훔쳐보기도 민망했고, 쳐다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도 어려웠다. 말 그대로 눈을 둘 데가 없었다. 그 수많은 남불의 벌거숭이 선남선녀들 틈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두드러져 보이는 세 사람이었으므로,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해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웃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내 아내뿐이었다. 우리는 괜스레 쑥스러워하며 해변을 벗어났다.

 

뭘 그렇게 희희낙락 하냐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영화제 행사가 개최되는 축제궁Palai de Festival까지 산책했다. 이 커다란 극장은 칸 영화제 시상식 전용극장으로 1949년에 지어진 것이었다. 극장 앞에는 붉은 카펫이 널따랗게 깔려 있었다. 좀 있다 밤이 되면 은막의 별들이 저 카펫을 사뿐사뿐 밟으며 걸어갈 터였다. 대형 포스터들이 거리에 즐비했고, 여기저기서 방송차량이 인터뷰와 취재를 하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은 느린 발걸음으로 항구의 호화요트며, 기자들의 취재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1946년부터 열리고 있는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는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꼽힌다. 영화제 기간 중에 열리는 국제 전시장은 전 세계 수백 개의 영화사, 수천 명의 제작자, 바이어, 배우 들이 모이는 프로모션 장소다. 칸 영화제가 다른 주요 영화제보다 축제적 분위기가 짙은 이유는, 이렇게 시상식과 시장이 동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한 작품들 중에는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1946, 로베르토 로셀리니),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 페데리코 펠리니), <확대Blowup>(1967,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양철북Die Blechtrommel>(1979, 폴커 슐렌도르프), <파리 텍사스Paris, Texas>(1984, 빔 벤더스) 처럼 예술성 짙은 영화들이 많기는 하지만, <우정 어린 설득Friendly Persuasion>(1957, 윌리엄 와일러), <셸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1964, 자크 드미),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1966, 클로드 를로슈), <매쉬MASH>(1970, 로버트 알트만),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1976, 마틴 스콜세지),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 프랜시스 코폴라), <미션The Mission>(1986, 롤랑 조페),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1989, 스티븐 소더버그) 등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도 포함된다. 동아시아의 작품으로는 <카게무샤影武者>(1980, 구로사와 아키라), <패왕별희覇王別姬>(1993, 첸카이거), <우나기うなぎ>(1997, 이마무라 쇼헤이)등이 있었다.


칸 영화제는 독창적인 작가주의 영화를 편애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수상작들에 대한 감상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가령 “오늘은 칸 영화제 수상작을 볼까?”하는 기분이 되는,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차분하게 다른 사람의 심상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날. 또는 내가 한 번도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이 없는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보고 싶은 날. 얼른 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복잡하고 신산스러운 삶의 기미들과 마주하고 싶어지는 날. 그런데 막상 영화제가 열리는 칸을 구경한 오늘, 나는 별로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화창한 남불의 햇볕과 그 아래 즐비하던 발랄한 육체들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5월 20일, 금요일


무더위 속에 꼬맹이에게 무리를 시키면 안 되겠기에 자동차를 세워 두고 호텔에서 쉬었다. 점심은 햄버거로 해결했다. 오후에는 꼬마를 유모차에 태우고 니스의 장메드센Jean Medcine 거리를 따라 한 시간쯤 산책을 했다. 아무리 편안한 자세를 가장하고 걸어도, 우리 세 사람은 이곳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방인이었다. 친구들에게 엽서를 부쳤다.


5월 21일, 토요일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다. 차를 몰고 프랑스 국경을 넘어 모나코Monaco로 갔다. 니스에서 모나코 까지는 불과 12km 정도에 불과했다.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가 되었던 나라. 2㎢가 채 안 되는 면적으로 세계에서 바티칸Vatican 시국 다음으로 작은 나라. 1701년 이래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국방을 이웃나라 프랑스에 위탁한 나라.


모나코에 도착한 우리는 퐁비유Fontville에 있는 왕립박물관Palais Musée, 해양박물관과 수족관을 구경했다. 수족관의 피라니아 수조 옆에서 뜻밖에도 옥스퍼드의 동급생인 홍콩 학생 토니Tony와 마주쳤다. 리용까지 구경을 갈 계획이라고 한다. 동급생인 어떤 친구는 지난 겨울 이 친구를 나이로비에서 만났다던데, 세계를 누비며 다니는 모양이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왕 국경을 하나 넘은 김에 몬테카를로 앞을 지나 이탈리아 국경도 넘어 산레모Sanremo까지 갔다. 니스와 산레모 사이의 직선거리는 가깝지만, 프랑스 남해안을 타넘어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을 구불구불 타고 가야 했다. 높다란 절벽 위로 난 해안도로였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최대한 조심하며 차를 몰았다. 로마 공화정 시대로 따지면, 니스에서 산레모로 가는 길은 갈리아 트란살피나Gallia Transalpina(알프스 넘어 갈리아)에서 갈리아 치살피나Gallia Cisalpina(알프스 이쪽 편 갈리아)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해안으로도 절벽 위로 난 길밖에 없으니, 그 옛날 한니발은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하는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절벽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경치는 황홀했지만,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도로의 포장상태는 열악해졌다. 예전에 스위스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들어갔을 때 프랑스의 도로가 운전하기 어려울 만큼 엉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탈리아 도로에 비하면 프랑스 도로는 스위스와 별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감각은 상대주의의 포로다. 간단히 실험해볼 수도 있다. 오른 손을 따뜻한 물에, 왼 손을 찬 물에 잠시 담그고 있다가 양손을 제3의 그릇에 담긴 미지근한 물로 동시에 옮겨 담아 보시라. 오른 손은 ‘앗 차가워’, 왼 손은 ‘앗 뜨거워’라고 제각각 소리친다. 유럽을 여행한 때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의 도로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상대적 감각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자카르타Jakarta에 머물다가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로 갔더니 모든 것이 그렇게 깔끔하고 가지런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이듬해, 싱가포르에 머물다가 쿠알라룸푸르로 갔는데, 이번엔 또 모든 것이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하고 지저분해 보이던지. 그 얘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동경에 있다가 서울에 오면 지저분해 보이고 북경에 있다가 오면 서울이 깨끗해 보이는 거나 비슷한 이치라고 일러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첫인상이라는 것을 전보다 훨씬 덜 신뢰하게 되었다. 평생 배우고 깨달아야 할 일이 천지다.


산레모는 1951년부터 시작된 가요제로 유명하다. 산레모 가요제에서 1958년에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가 불렀던 <Volare>라든지, 1961년에 루치아노 타졸리Luciano Tajoli가 불렀던 <Al Di La>는 오랜 세월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속으로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면서 노래에 걸맞은 분위기의 항구도시를 상상하며 왔는데, 정작 도착해서 바라본 산레모는 밋밋하고 조그만 바닷가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장소들은 실제로 가지 않고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이탈리아 땅을 밟은 김에 산레모 근처의 캠핑장을 기웃거리며 산책을 하고 니스로 돌아왔다.


5월 22일, 일요일


오늘은 아들이 태어난 지 6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돌아가며 안아주고 얼러줄 친척들도 없는 외국에서 꼬물꼬물 귀엽게 자라주고 있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축하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이마에 열이 있었다. 호텔 리셉션에 급히 부탁해서 의사를 청했는데, 젊은 불란서의사가 와서는 진찰을 하더니 중이염이라며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아내와 나는 여기까지 여행을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칸이고 니스고 즐거운 줄도 모를 어린 녀석을 데리고 와서 고생을 시키다니. 보채는 아이를 번갈아 안아서 달래다가 오후에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날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좀 불었다. 칸의 해변은 모래사장이었지만 니스의 해변은 자갈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해안은 ‘담청색 해안Cote d'Azur’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니스의 앞바다는 특이한 옥색을 띄고 있다.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아내와 아이를 그늘에 앉혀두고 혼자서 바닷물로 들어갔다. 이 바다는 물 밖에서 볼 때만 옥색인줄 알았는데, 물속에서 보아도 그 색깔 그대로였다.


저녁 내내 여행을 후회하며 아이를 안아주고 업어주다가, 아기가 방안에만 있는 걸 오히려 답답해 하는 것 같아서 밤 아홉 시쯤 차를 몰고 다시 칸으로 갔다. 영화는 한 편도 관람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는 칸에 와보긴 한 것이었다.


5월 23일, 월요일


날이 갑자기 무더워졌다. 원래는 저녁 7시 비행기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아직도 열이 다 내리지 않은 아들이 안쓰러워 무턱대고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고는 공항으로 갔다. 사정을 설명한 다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려 오후 1시 반 비행기에 올랐다. 요 녀석, 만일 커서 영화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어쩌면 첫돌도 되기 전에 칸 영화제 같은 곳에 가본 덕분인줄 알라고 얘기해 줘야겠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들의 중이염이 거짓말처럼 나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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