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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7. Europe, again (2)

posted Oct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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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목요일

 

이젠 의논할 필요도 없었다. 두 개 조로 나눠서 관광을 하는 관행이 어느새 우리 네 사람의 불문율이 되어 있었다. 새벽 첫 기차로 아내와 동생이 융프라우 봉과 묑크Mönch 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있는 기차역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를 향해 떠났다. 그 사이 나는 호텔의 주인장과 다시 한 번 실랑이를 벌였다. 미리 알려준 요금이 아침식사비를 포함하는 것처럼 착오를 일으켰다면 직원의 실수였을 뿐 자기는 우리가 아침을 먹건 안 먹건 반드시 ‘정가대로’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자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사무적인 얼굴로 고집을 피웠다. 결국 아침을 안 먹는 대신 그놈의 지긋지긋한 아침 값은 계산에서 제외시키는 걸로 타협을 했다. 여행 온 기분을 잡치기 싫어서 승강이를 그쯤에서 그만 둔 것인데, 타협이라고 하기에는 손해를 본 느낌이라 뒷맛이 썼다. 어쩌면 상습적인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수기의 관광지에서 숙박업소의 업주는 이미 그곳으로 흘러들어온 관광객 앞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속으로 내 다시 스위스로 여행을 오나 봐라, 중얼거리다가, 베른의 천사 아줌마를 떠올리고 빛과 그늘이 비긴 셈 치기로 했다. 정반합이군. 헤겔이 스위스에서 교사생활을 했다더니만, 스위스 여행은 내 마음 속에 변증법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 꼬마는 여행을 하는 동안 유럽 각국의 이유식을 섭렵하는 중인데, 아내와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들을 업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유식과 과일 등 식료품을 조달했다. 정말이지 뭐든지 비싼 동네였다. 열쇠고리로 쓸 수 있는 조그만 스위스칼도 하나 샀다. (훗날, 나는 이 스위스 칼에 달려 있는 작은 볼펜으로 니콜 키드먼의 친필 서명을 받았다.) 아내는 점심 무렵에 혼자서 돌아왔다. 동생은 융프라우에서 혼자 눈썰매를 타면서 좀 더 놀다 오겠다고 했단다. 거기 썰매장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는데, 뭘로 눈썰매를 탄다는 말인가? “도련님은 자기 가방을 비워서 거기 올라타고 신나게 놀고 있어요.” 이 녀석,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동생은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옷이며 가방이 다 젖어 있었다. 눈밭에서 신나게 뒹군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기운이 남아도는 동생을 데리고 오후에는 동네 수영장으로 갔다. 탁구대도 있어서 오랜만에 둘이서 탁구로 몸을 풀고 수영도 했다. 아이거Eiger와 융프라우의 눈 덮인 정상을 바라보며 수영을 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다함께 차를 몰고 해발 1,034m에 있는 산골마을 그린덴발트Grindenwald까지 올라갔다. 구불구불 올라가는 산길 옆으로는 달력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노래가사처럼 ‘맑은 시냇물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베르네 오버란트였다. 우리는 차 안에서 함께 요들송을 불렀다. 꽃으로 장식된 샬레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저 꽃이 에델바이스다 아니다 옥신각신도 했다. 그린덴발트의 식당에서 붉은 석양에 물든 절벽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했는데, 꼬마가 재롱을 부려 식당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8월 4일, 금요일

 

이번 여행길이 반환점을 돌았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피곤해서 융프라우 구경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안보고 갈수도 없어, 오늘은 나 혼자 융프라우 정상을 향해 나섰다. 아침 첫차로 올라가는 길에는 한국인들이 제법 많았는데,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던 파리 유학생 동포 일가족은 내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주었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웬 불만들은 또 그렇게 많은지, 내내 이어지는 이들의 투정을 듣다 보니 괜히 옆자리를 잡아줬다는 후회가 들었다.

 

융프라우는 독일어로 ‘처녀’라는 뜻인데, 함부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험준함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1912년에 열차가 개통된 이후로는 알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봉우리가 되었다. 융프라우의 정상은 4,158m이고, 관광객이 열차로 올라갈 수 있는 융프라우요흐 역은 해발 3,454m 지점에 있다. 유럽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기차역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로를 만드는 데는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실제로 열차를 타보면 불과 16년 만에 이런 곳에다 그런 걸 지었다는 것도 대단하게 여겨진다. 날은 맑았고 흰 눈 때문에 눈이 부셨다.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내가 소화하기 어려운 대자연의 거대한 규모였다. 감탄사를 제외하면 그 느낌을 글로 옮기기는 어렵다. 결국,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뿐인 색안경을 산꼭대기에서 분실했다는 것을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깨달았다. 좀처럼 물건을 분실하는 법은 없었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모양이다. 아까 옆자리에서 끊임없이 궁시렁대던 사람들 때문에 상한 기분 탓이었거나, 자연의 거대함에 주눅이 든 탓이었거나, 아니면 식솔들을 산 아래 두고 온 가장이 가급적 빨리 돌아가려고 허둥댔던 탓이었을 거다.

 

8월 5일, 토요일

 

알프스의 서늘한 기운을 벗어나기 아쉬웠지만, 여정을 되돌려 북쪽으로 향할 때가 되었다. 아침식사를 주지 않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이번에는 북북동으로 진로를 돌려, 룩셈부르그Luxembourg가 목적지였다. 큰 산을 넘고 먼 길을 달렸다. 틀림없이 국경을 몇 개 넘었을 테지만 어디가 국경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길고 복잡한 사연을 가진 유럽의 나라들이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국경을 과연 어디까지 허물 수 있을지는 지켜 볼 일이지만, 그 정도만 해도 큰 변화임에는 틀림없었다. 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가 된다는 것이 좋기만 한 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행자는 다른 것을 보기 위해 여러 곳을 간다. 다른 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것들끼리 구별되는 독특함이 없다면, 그것은 문명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문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 문명이 역사적 개념이라면, 문화는 그보다는 훨씬 더 지리적인 개념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놓고 말할 때, 문명은 시간을, 문화는 장소를 의미하는 셈이다.

 

언어권이 달라진 탓인지 풍경의 느낌도 사뭇 달라 보였다. 이곳에 예약해둔 호텔은 이비스IBIS 체인이었는데, 체인점 답지 않게 서비스가 엉망이었다. 당직을 서고 있던 호텔직원은 영어도 서툴고 내가 부친 편지를 나한테 도로 돌려주는가 하면, 아기용 침대라면서 창고 구석에서 꺼내주는 것은 지저분한 침대 틀과 먼지가 풀풀 날리는 스폰지 나부랭이였다. 그 직원은 하필 포르투갈인이었다.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비스 업종에 적당한 사람은 아니었다. 70년대 영국 TV 코미디 <Fawlty Towers> 생각이 났다. 이제는 세계적인 유명배우가 된 존 클리즈가 주연하는 이 좌중우돌 희극의 무대는 서비스가 엉망인 영국의 호텔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실수연발의 호텔 직원 마누엘은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영어를 엉뚱하게 말하거나 알아듣는 것이 주특기였다. 그날 밤 이비스 호텔의 직원을 하마터면 마누엘이라고 부를 뻔했다.

 

8월 6일, 일요일

 

소국 룩셈부르그에는 구경거리가 많지 않았다. 오전에 다시 출발해 플랑드르 지방을 가로질렀다. <플랜더스의 개>라는 영국 여류작가의 소설은 일본의 만화영화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플랑드르에 진입하면서 절로 “먼동이 터 오는 아침에 두 개의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로 시작하는 만화영화 주제가가 입에 맴도는 것이 살짝 짜증스러웠다. 이토록 클리셰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은 유럽의 다른 곳에 비해 풍광이 특출하게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도 유명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반다이크Anthony Van Dyck, 브뤼겔Pieter Bruegel,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등 플랑드르 화가들을 빼놓고는 근대 회화를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적인 화가를 다수 배출한 지역의 지도상 남방한계선이 이탈리아라면, 그 북방한계선이 플랑드르가 아닐까 싶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서는 좀처럼 위대한 화가가 나오지 않는다. 태양이 사시사철 풍성한 밝은 풍경은 좀처럼 안타까운 감흥을 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강렬하지만 평면적인 고갱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강한 태양빛은 그림으로부터 입체감을 빼앗아버린다. 거꾸로, 햇빛이 너무 귀해도 그림 그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영국이 자랑하는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는 ‘빛의 연금술사’라는 평을 듣지만, 그의 그림 속에서 빛은 항상 안쓰러운 결핍의 느낌을 준다. 옅은 빛 속에서 그려진 그림은 노출부족의 사진처럼 생동감이 떨어진다. 햇볕의 분량이 그림에 생동감을 줄 정도는 되면서도 화가들이 빛을 귀하게 여길 만큼 부족한 지역이 플랑드르인 것 같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면 “빛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라든지, ‘물병을 쥔 여인’ 같은 그림을 보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화가가 애타게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내 느껴진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눈동자에 맺힌 한 방울 빛은 또 어떠한가! 빛을 소중히 여기는 화가는 그림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림 속에 빛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자를 잘 그려야 한다. 그림에서 빛은 다 그린 뒤에 나타나는 것이지 빛으로써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그림자와 그늘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 붉은 빛깔 도는 저녁햇살도, 눈부신 인공조명도 비로소 드러난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밝은 사람이냐 보다는 어디까지 어두워질 수 있느냐일 테니까.

 

플랑드르 벌판을 넘어 벨기에 북부의 깔끔한 소도시 브뤼헤Brugge에 도착했다. 시내의 모든 건물들이 놀이동산처럼 깨끗했다. 호텔 주인에게 그런 소감을 말했더니, “지금이 방학이라 낙서하는 학생들이 설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거고, 도시를 보존하고 청소하려고 징수하는 세금이 엄청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 파트리시우스Patritius는 작지만 격조 있고, 서비스도 훌륭했다. 식당에서 손수 서빙을 하는 주인 내외의 몸가짐도 우아했다. 마치 귀족의 저택에 초대를 받은 기분이었다. 객실의 커다란 침대 위에는 볕에 잘 말려 햇볕 냄새를 머금은 양질의 침구가 개켜져 있었다. 볕이 드는 작은 뒷마당에는 예쁜 꽃들이 잘 손질되어 있었다. 늘 꽃을 가꾸시던 살림꾼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호텔이 정갈한 게 꼭 외갓집 식탁 같다.” 내가 말했더니 동생이 “맞아, 형. 정말 그래요”라고 동감을 표했다. 아직까지 외할머니께서 생존해 계시던 무렵이었다.

 

오후에는 산책을 했다. 브뤼헤는 도보로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 딱 알맞은 크기의 도시였다. 운하를 따라 도는 작은 유람선이 있기에 타고 한 바퀴 돌아보았다. 12세기에 인공으로 조성했다는 운하의 둔덕 위로는 멋들어진 풍차도 서 있었다. 운하 곁의 작은 야외무대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남유럽을 벗어난 덕분인지, 불어오는 바람도 한결 서늘했다. 저녁으로 홍합과 스테이크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먼 길을 왔으므로 온 식구가 피곤해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운하 때문인지 모기가 설쳐대서 가져온 전기모기약을 피웠다.

 

8월 7일, 월요일

 

이 정갈한 호텔은 아침식사도 다른 곳과의 비교를 불허할 만큼 훌륭했다. 빵과 차의 종류도 다양했고, 치즈와 햄도 맛이 있었다. 꼬마는 이제 빵만 보면 새끼 제비처럼 입을 크게 벌려대는데, 오히려 우유보다 빵이 더 좋은 모양이다.

 

브뤼헤라는 도시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상점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놀이공원과도 같다. 시내에는 초콜렛과 레이스lace 면직물 가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끌려 들어가 레이스 가게 점원의 설명을 듣고 레이스 제작시범도 구경했다. 온갖 신기한 문양이 레이스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던 점은, 아내의 취향이 꼬물꼬물한 레이스 면직물보다는 심플하고 현대적인 장식품 쪽에 있다는 점과, 기념 삼아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기에는 제품들이 너무 호되게 비쌌다는 점이었다.

 

초콜렛도 가지각색이었는데, ‘사람이 평소에 반드시 가리고 다니는 신체 부위들’을 초콜렛으로 - 그것도 인종별로 다른 피부색을 흉내 내어 여러 색깔로 - 만들어 진열해둔 곳도 있었다. 동생이 가지고 귀국할 선물로 초콜렛을 한 상자 샀고, 동네 퍼브pub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사람이 너무 많지도,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시내를 산책하니 상쾌했다. 날씨도 좋았다. 다만,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학창시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수업 시작 종소리를 듣는 것 비슷한 기분이 되었다.

 

8월 8일, 화요일

 

벨기에의 오스탕드Oostende 항구로 갔다. 페리를 타고 해협을 건너 영국 땅에 도착했다. 도버는 벌써 가을날씨였다. 놀다가 귀가하는 길은 왜 언제나 요일과 관계없이 교통체증이 심한 걸까? 고속도로(M25)가 꽉 막혀서 예상보다 두 시간 정도 더 소모되었다. 피곤한 몸으로 주섬주섬 짐을 한 구석에 치워두고 다들 널브러졌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우편물 속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온 입학허가서가 섞여 있었다. 며칠 후면 단출한 살림을 트럭으로 옮겨야 할 차례다. 1년 만에 삶의 근거지가 다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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