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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 - 2003.2. Oman (1)

posted Jun 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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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더위의 결정판


오만은 페르시아만의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the Strait of Hormuz에 면해 있는 나라로, 육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예멘 등 세 나라와 인접해 있고, 바다 건너로는 이란,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탄자니아, 케냐, 소말리아의 이웃이다. 남한의 세 배 가까운 땅덩어리에 인천시 인구와 비슷한 260만 명이 사는 나라. 걸핏하면 기온이 섭씨 50도를 오르내리고 습도가 100% 근처로 육박하는 곳. 이런 자연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사는 곳. 2001년부터 2년간 오만Oman, عمان에 살면서 나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서둘지 않는 법을 배웠으며, 그간 미뤄 두었던 몇 권의 책으로 허기진 머리를 달래기도 했다. 존경하는 김의식 대사님으로부터 바다낚시를 배운 다음부터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바닷가 절벽위에서 보내곤 했다. 내가 벗 삼았던 머스캇Muscat, مسقط의 밤바다와, 그 위를 말없이 비추던 따뜻한 달빛.


오만의 더위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4월에서부터 11월까지 평균기온이 섭씨 38도에 이르는데,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낮 동안 수은주가 섭씨 50도를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섭씨 50도! 들어는 보셨는가, 그런 기온을? 6월에서 8월 사이에 수도 머스캇 지역의 습도는 95%를 웃돌아, 고온다습이라는 네 글자의 참뜻을 깨닫게 해준다. 숫자로만 얘기해서는 실감이 나지 않을 터이니, 몇 가지 예를 들겠다. 자동차 안에서 듣던 카세트테이프를 대쉬보드 위에 올려둔 채 깜박 잊고 차에서 내려 한 시간쯤 볼일을 보고 차에 돌아왔다. 시동을 걸던 나는 대쉬보드 위에 놓인 정체불명의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태양열에 녹아 마치 구겨진 휴지를 방불케 할 만큼 우그러져버린 내 카세트 테이프였다. 사정이 이러므로, 흡연자들은 자동차 안에 라이터를 흘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까운 자동차를 통구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수도관이 야트막하게 매설된 탓도 있겠지만, 수도꼭지를 틀면 열기로 달궈진 상수도관은 한밤중에도 뜨거운 물을 토해냈다. 물론 온수설비가 없는 파란 수도꼭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미지근한 정도 가지고 괜히 엄살을 떠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방금 대접받은 커피만큼 뜨거운 물이다. 채소를 씻으면 바로 데쳐져 버리기 때문에, 아내는 물을 따로 받아서 식혀두었다가 채소를 씻곤 했다. 샤워를 하기에도 살이 데일만큼 뜨겁기 때문에 물을 식혀두었다가 씻어야 한다. 오만에도 겨울은 있다. 12월에서 2월 경 오만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4-5월 날씨와 비슷하다. 그 두어 달 동안 물을 데워 쓰기 위한 소형 온수기가 집집마다 욕실에 달려 있다. 일 년 중 대부분 이 온수기를 꺼 두고 지낸다. 그러면 온수 통은 뜨거운 물이 들어와서 식는 통이 된다. 수돗물을 파란 쪽으로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고, 빨간 쪽으로 틀면 온수기 속에서 얌전히 상온으로 식은 물이 나온다. 온수 통의 크기는 대략 한 사람이 샤워할 분량 정도일 뿐이라서, 식은 물을 다 쓰기 전에 얼른 샤워를 마쳐야 한다. 느긋하게 샤워를 즐겼다가는 갑자기 나오기 시작하는 뜨거운 물에 살이 익을 수도 있다.


수은주를 이용하는 재래식 기온계는 대개 섭씨 50도를 상한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한여름을 지나고 나면 오만의 기온계들은 꼭대기까지 힘차게 닿았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느라 중간중간이 뚝뚝 끊어진 수은주를 품고 있다. 디지털 기온계들은 섭씨 53도니, 54도니 무시무시한 숫자를 가리킨다. 인간의 적응능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런 더위에도 적응을 하고 지내게 된다. 더위 자체에 좀 더 익숙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더위를 참을 비법들을 강구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더위를 오래 접하게 되면 우리 신체는 살아남기 위해 닫혀 있던 땀샘을 일제히 연다. 오만에 살기 전까지 땀이라고는 잘 흘리지 않던 나는 오만 근무 이후로 조금만 더우면 겉옷까지 푹 젖는 인간 폭포수로 변신했다. 동료들과 가끔 밴드 공연을 하는데,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공연을 하고 나면, 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은 뽀송뽀송한데 나만 혼자서 물에 빠졌다가 나온 꼴이 되곤 한다. 더울 때 반소매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 기온은 진정한 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우쳤다. 중동의 직사광선은 무자비하기 때문에 더운 날일수록 긴 바지에 긴 소매가 필수고, 바깥에서 오래 활동하려면 모자나 장갑까지 착용하는 편이 좋다.


더위를 참는 여러 가지의 비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을성을 늘이는 것이다. 더위는 못 참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을 갑갑하게 만들어, 급기야는 폐소공포와도 흡사한 패닉 현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자주 사용하던 피서방법은 한 달에 두어 번씩 가게에서 얼음을 사 가지고 와 욕조의 물속에 풀어놓고 그 속에 들어가 독서 같은 것을 하는 방법이다. 그래도 갑갑함을 견디기가 어려워지면, 우리 가족은 산과 바다를 찾았다. 물론 산이나 바다라고 해서 거기에 더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자연의 시련을 견디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


알고 보면,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중동에서 만난 뜨거운 태양도 그랬다. 앞서 영국의 날씨를 설명하면서 썼듯이, 유럽의 흐린 날씨를 견디는 데는 정신력의 소모가 컸다. 특히 길고 춥고 어두운 겨울을 나는 동안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우울함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광오한 별명을 지어 붙였지만, 영국에서 겨울 한 철 지내고 보면 대번에 알게 된다. 인간은 햇볕을 며칠만 못 쬐어도 비참한 심정이 되어버리는 대자연의 미천한 일부라는 사실을. 반면에, 중동에서 2년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더위와 씨름하느라 지친 나머지, 잔혹한 태양에다 대고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대목이 있다. 오만에 사는 동안에는 왠지 이유를 모르게 기분이 울적해지는 날 따위는 없었다. 따뜻한 남국에 사는 백성들이 낙천적인 성품이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2년간 나의 정신건강을 지켜준 것을 생각하면, 나는 뜨거운 태양에게 불평보다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은 셈이다.


2. 신밧드의 고향


오만이라는 나라는 2,092km의 해안선을 가졌고, 인도양과 페르시아 만에 면해 있다. 오만의 북쪽 끝 무산담Musandam, مسندم은 페르시아 만이 가장 좁아지는 지점에 있어서 이란 땅까지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이곳은 지중해의 지브롤터에 비길 수 있을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해당한다.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의 예멘이 워낙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보니, 예로부터 오만은 걸프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 당연히 오만에는, 과거 유럽의 제노아나 베네치아에 그러했듯이, 예로부터 뱃사람들이 많았다.


예전에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을 때도, 페르시아와 오토만 제국이 전쟁을 했을 때도, 아라비아에서 차출된 해군의 대부분은 오만에서 나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막의 유목민이 대다수인 아라비아에서 유독 오만인은 바다 사나이들이었던 셈이다. 1998년에는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9세기경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만 선박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오만 정부는 이 배를 복원하여 ‘머스캇의 보석’이라 명명했고, 2010년에 이 배는 전통 항해기술만을 사용해서 오만에서 싱가포르까지 항해에 성공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아라비아에서 실크로드가 아닌 선박으로 동아시아와 무역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오만에 살았던 부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에서 고르게 인기가 높은 무역 품목이던 유향frankincense이 오만의 남부에서 다량으로 생산되어 왔다는 점도 그러한 심증을 굳혀준다. 신라시대 서라벌을 활보하던 처용의 정체가 아라비아인이었다는 일설이 사실이라면, 처용도 오만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된다.

 

근대 이후 해상제국을 이룩한 아랍세력으로도 오만은 유일한 사례다. 19세기의 전성기에 오만의 사이드 빈 술탄Said bin Sultan은 서쪽으로는 동아프리카의 몸바사Mombasa, 잔지바르Zanzibar(지금의 탄자니아)부터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Balochistan 까지를 아우르는 해상제국의 수장이었다. 잔지바르는 1964년 현지인들의 혁명에 의해 탄자니아라는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오만 사람들이 통치하던 곳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옛 이야기의 주인공 신밧드Sinbad의 고향이 오만 북동부의 어촌 소하르Sohar,صحار‎라고 굳게 믿는 오만 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게 된다. 장보고의 발자취를 추적하던 소설가 최인호 선생이 오만을 방문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셈이다. 2002년 오만에서 근무 중이던 나는 국영방송사의 협조 요청에 따라 최인호 선생께 머스캇 인근 바닷가와 전통 목선 조선소를 안내한 적이 있었다. 환갑을 목전에 앞둔 연세에도 불구하고, 최인호 선생은 주변 사람들을 휘어잡는 재담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청년이셨다. 선생의 취재 노력은 이듬해에 <해신海神>이라는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니까 눈곱 만큼일지언정, 이 작품에는 나도 기여한 바가 있는 셈이라고 믿고 있다.


뱃사람들의 나라답게, 오만의 수도 머스캇은 바다를 면하고 있는 도시다. 머스캇에서도 외국 대사관과 외무성, 외교관들의 주택이 밀집한 주택가 동네의 명칭은 샤티 알 쿠룸Shatti Al-Qurum, 그러니까 “쿠룸의 해변”이라는 지역인데, 내가 살던 집에서 슬리퍼를 끌고 나가면 2분만 걸어가도 모래사장이 나왔다. 오만에서 내가 여가 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한 취미활동이 낚시였다. 멀리 가기 귀찮으면 해가 저문 뒤 집 앞의 모래사장에 낚싯대를 꼽아 두고 퍼질러 앉아서 바닷바람을 맞기도 했지만, 모래 해변에서는 큰 고기를 낚기 어려웠다. 차를 몰고 알쿠룸 뒷산으로 가면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절벽이 파도를 맞고 있었다. 그곳이 내가 가장 즐기던 낚시터였다. 뒷주머니에 소주를 한 팩 차고, 이마에 전등을 달고, 허리에는 수건을 걸고, 무협지를 두어 권 챙겨서 캄캄한 절벽을 찾아가곤 했다. 오늘은 저 시커먼 바다 속 어떤 생명이 내 모진 낚싯대에 걸려들까 궁금해 하면서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돌고래들이 휘영청 밝은 달빛 속으로 뛰어오르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낚시는 특이한 활동이다. 딱히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스포츠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낚시는 수렵과 사색과 취미의 특징을 다 조금씩 가지고 있다. 머스캇의 절벽 위에서 인도양을 바라보며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지나간 그 어느 시절보다 나 자신과 더 길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생명을 낚아 올린다는 점에서 공격적인 취미지만, 수렵활동 치고는 퍽 수동적인 방식이어서 기다리는 행위가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낚시에서는 내가 꾀하고 도모하는 부분과, 물고기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부분이 확연히 나뉜다. 낚시를 하면서, 나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배웠다. 아이들에게도 기다림의 진리를 알려주고 싶어서 자주 데리고 낚시를 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의 인내심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녀석들은 고기가 입질을 하지 않으면 이내 진절머리를 내면서 낚싯대를 팽개치고 바닷가를 뛰어다니곤 했다. 그래도 소금을 먹어본 놈이 물을 켠다던가. 어려서 낚싯대 좀 잡아 봤다고, 두 아들은 열 서너 살 무렵에 바다에 데려가니 제법 진중한 낚시꾼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일 반기던 생선은 중동 사람들이 ‘하무르hamour’라고 부르는 그루퍼grouper의 일종이었다. 몸에 붉은 반점이 있는 농어목 생선으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석반어石斑魚나 제주도 남쪽에서 잡히는 다금바리와도 닮은 놈이다. 우리가 돌 틈에 사는 하무르를 잡고 싶어 했던 것은 당연히 회 맛이 좋기 때문이었다. 내가 혼자 낚은 하무르 두어 마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나면, 함께 근무하던 김 서기관은 소주 한 잔 하자며 반겨 맞아 주었고, 김 서기관의 부인께서는 어느 새 가지런히 회를 쳐서 내 오시곤 했다. 간혹 마을 어부에게 삯을 내고 나룻배를 빌려 타고 난바다 가까이로 나서면 도미나 다랑어가 낚이기도 했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만든 소하르 방파제 근처에서는 잔챙이들을 미끼삼아 바라쿠다barracuda를 여러 마리 잡기도 했다. 만화영화 초반부에서 열대어인 네모 엄마를 잡아먹는 광폭한 물고기가 바로 바라쿠다인데, 구워 먹으면 살집이 좋은 삼치 비슷한 맛이 났다.


수도 머스캇 만이 아니라, 기회가 있으면 낚시를 빙자해서 오만 북단의 무산담에서 예멘과 접경한 남단의 살랄라Salalah, صلالة까지 거의 해안 전역을 훑으며 여행했다. (살랄라는 여름이면 장마와도 같은 몬순 기후가 찾아오는, 수풀이 우거진 지역이다.) 알 아슈카라Al-Ashkhara에서는 해변에 텐트를 치고 밤새워 낚시하며 동네 청년들과 노닥거리기도 했고, 미군과 영국군이 주둔하는 오만 최남단의 마시라 섬Masirah, مصيرة‎까지 배를 타고 가서 폭풍우 속에서 상어를 세 마리 낚아 올리기도 했다.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생을 일삼는 동안 꿈틀대는 모든 비린 것들이 내가 지금 이곳에 살아 있음을, 살아보아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아미타불.

 

그러고 보니, 생선만 잡았던 것이 아니었다. 머스캇 북부 소하르 근처에는 망그로브mangrove 나무가 가득 자라는 뻘밭이 있다. 한 번은 이곳에 교민들과 어울려 게를 잡으러 갔었는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을 헤집으며 괴물처럼 거대한 머드 크랩mud crab을 여러 마리 잡았다. 게가 어찌나 컸던지, 한 마리를 통째로 요리할 냄비가 없어서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며칠을 두고 찌게를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진흙투성이가 되었던 보람이 있었으니, 게는 살도 많고 맛도 좋았다.


오만 중부지방의 수르Sur, صور에서는 특이한 경험도 했다. 수르는 천연가스 생산시설이 있는 도시여서 한국가스공사 직원들이 파견근무를 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수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지구상에 몇 군데 남지 않은 바다거북의 산란장소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에 우리 가족은 KOTRA의 윤 관장님 가족과 함께 수르의 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 묵으며 바다거북의 힘겨운 산란현장을 견학했다. 한밤중에 바다에서 뭍으로 나온 거북은 여러 시간 걸려 산란 장소까지 올라온 다음 앞다리로 모래를 파내고 거기다 알을 낳았다. 아침이 되니 일찌감치 낳았던 알에서 부화한 새끼 거북들이 종종걸음으로 바다를 향해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수많은 새끼거북 중에 성체가 되는 것은 2천 마리에 한 마리 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막 여우들이 모래를 헤집으면서 거북 알을 먹이로 삼고 있었고, 해변에는 덩치 큰 게에게 붙들려 눈알을 빼 먹힌 새끼거북의 사채도 있었다. 운 좋게 여우와 게와 갈매기를 피해 바다 속으로 뛰어든 거북은 이번에는 수중의 포식자들의 먹이가 된다. 멸종 동물 보호를 위해서, 오만 당국은 해안에서 새끼 거북이 보이는 족족 사람 손으로 거두어 모아두었다가 바다로 풀어주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 거북을 잡아다가 보호소의 물통 속으로 날랐다. 어린 짐승들은 다 귀여운 법이라지만, 파르스름한 새끼 바다거북은 꼭 일부러 귀엽게 만든 인형처럼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둘째가 눈썹을 팔자로 만들면서 물었다.


  “딱 한 마리만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될까요?”

  “어젯밤에 쟤네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알을 낳는지 봤지? 얘들은 바다에 풀어줘야 살 수 있단다.”


인생이라는 고해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것이 어찌 바다거북뿐이겠나. 요 꼬마 녀석들이 제 새끼를 낳고 살아가려면 또 얼마나 고단한 일들을 많이 겪어야 하겠나, 방정맞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건 굳이 말로 하지 않았다.


3. 산의 누드


한반도의 1.5배쯤 되는 오만의 국토는 80%가 사막과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만의 산은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왜 특이한지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다. 구글 어스google earth나 사회과부도를 찾아보면 금세 알 수 있듯이, 드넓은 아라비아 반도에 산이라는 산은 죄다 남쪽에 몰려 있다. 고산지대로서 늘 푸르른 예멘을 예외로 친다면 (예멘은 여러 차원에서 예외라서, 걸프협력기구GCC에 속하지도 않는다.), 걸프 국가들 중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산을 가진 나라는 오만 뿐이다. 자발 아흐다르Jabal Akhdar, الجبل الأخضر, 자발 샴스Jabal Shams, جبل شمس‎ 등 높이가 3천 미터에 달하는 산들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특이하달 법 한데, 오만의 산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누드’라는 점이다.


오만 전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알 하자르 산맥Jabal Al Hajar, جبال الحجر 덕분에 오만 어느 지역을 가건 험준한 바위산을 볼 수 있다. 처음 오만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그 박력 있는 풍경에 압도된다. 2002년 말에 2주간 다녀가셨던 아버지께서는 "야아, 이거 달나라 같구나!"라고 탄성을 지르셨다. 사실 좀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영화 에 나오는 화성의 풍경과 흡사하다. 작은 관목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바위산이 대부분이라서, 독특한 모험을 즐기는 유럽의 산악인들이 암벽등반을 하러 몰려오곤 한다. 우리 가족이 더위를 피해 종종 찾아갔던 자발 알 아흐다르의 이름은 '초록색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면 석류나 대추야자나무 같은 유실수들을 포함하여 녹색을 제법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우리나라의 산에 비하면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대부분은 헐벗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오만의 바위산을 보면서 나는 황량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것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결핍하고 있는 산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2년간 생활하면서 어느 순간, 바위산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질학적 견지에서, 오만의 산들은 산의 원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한 화가가 모델의 벗은 몸을 보면서 부끄럽다거나 음탕한 기분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과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신밧드의 모험담 중에, 섬인 줄로만 알고 상륙했더니 그곳은 엄청나게 큰 고래의 등이더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래가 너무나 크고 너무나 늙었기 때문에 등 위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오만의 산은 나무와 풀이라는 이물질이 뿌리 내리지 않은 젊은 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셈이었다. 지구라는 행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쩌면 오만의 바위산은 갓 뽑아낸 자동차처럼 깔끔한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오만에 2년간 살면서 비가 내리는 것은 딱 한 번 보았다. 그런데 그 비란 것이 내가 알고 있던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허공이 아예 잠수하는 것처럼 퍼붓는 것이었다. 열대우림지역인 인도네시아에 살면서도 그런 비는 경험하지 못했다. 오만처럼 뜨거운 나라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지 상상해 보시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웃통을 벗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일단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하자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빗줄기가 너무 세차고 거세서 첫째는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둘째는 벗어 붙인 웃통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만의 집들은 방수나 방한의 개념이 없이 지어져 있다. 이런 비를 만나자, 우리 집의 모든 창틀은 일제히 수도관으로 변신이라도 한 듯이 물줄기를 집 안으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2층 전체가 삽시간에 복사뼈 높이까지 물에 찼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구룡폭포로 변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아차, 감전의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집 바깥쪽 창고에 있는 두꺼비집을 향해 뛰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빗줄기를 다시 한 번 뚫고 가서 두꺼비집 스위치를 내린 다음에도 아이들에게는 소파 위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그리 오래 내린 비도 아니었건만, 온통 젖어버린 가재도구를 정리하느라 아내와 나는 고생 꽤나 했다.


머스캇은 바다에 면해 있지만 병풍 같은 바위산에 둘러싸여 있다. 비가 오던 날,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의 모든 골짜기들은 폭포로 변해서 시내를 향해 붉은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시내가 물에 잠기는 것은 당연했다. 사막의 나라에는 와디wadi, وادي라는 것이 있다. 계곡을 일컫는 단어인데, 평상시에는 물이 없기 십상이므로 건천乾川이라고 번역되곤 한다. 비가 오던 날, 우리는 머스캇 시내 전체가 무섭게 흐르는 탁류로 가득 찬 와디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시내의 저지대까지 차량이 다시 통행하게 되기까지는 비가 그친 후로도 며칠 더 걸렸다.

 

오만에는 다른 사막 지역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와디다. 산이 있는 곳에 물이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여서, 오만이 멋진 호수와 시냇물을 가지게 된 것도 바위산의 덕분인 것이다. 수량이 풍부한 와디 근처에는 운치 있는 관개 수로가 만들어져 있고, 울창한 대추야자 농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바위산 덕분에, 오만은 대추야자, 콩, 바나나, 석류 등 농산물을 제법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더위에 지치고 지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우리 가족은 머스캇에서 가장 가까운 해발 3천 미터의 초록색 산, 그러니까 자발 아흐다르로 도피했다. 아슬아슬하고 가파른 자갈길을 따라 4륜구동 차를 한참 운전해 가다 보면 이 산의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높은 산은 선사시대에 바다 밑이었다가 솟아오른 땅이어서, 정상에서도 조개껍질을 심심찮게 주울 수 있었다. 풀과 나무로 뒤덮인 산이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지질학적 시간의 침전물이었다. 정상에는 여관이 한 채 있었고, 다른 무엇보다 반가운 서늘한 바람이 있었다. 여관의 정원에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모처럼 선선한 바깥공기를 쐬다 보면 건너편 산봉우리 사이로 붉은 해가 저물어갔다. 밤이 되면 한기가 느껴져 오랜만에 두꺼운 겉옷을 걸쳐야 했다. 자발 아흐다르에서 보내는 밤은 뜨거운 여름에 수영장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상쾌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가는 길이 멀고 험해서 자주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2001년 여름에는 서툴게 차를 몰다가 무리한 경사를 이기지 못한 자동차가 산 중턱에서 고장나 퍼질러지는 바람에 온 사방에 전화를 걸어 견인차를 부르고 바위 그늘에 하릴없이 앉아 한나절을 지내는 고생도 해 본 터였다.


기온이 떨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좀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피서장소로는 앞서 말한 ‘물 있는 계곡’, 즉 와디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머스캇에서 200km쯤 떨어진 산 중턱의 와디 바니 칼리드Wadi Bani Khalid의 경치는 압권이었다. (인터넷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시기 권하고 싶다.) 처음에 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웬만한 사륜구동도 버거워할 만큼 울퉁불퉁한 바위길을 한참 지나 완만한 경사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는 동안, 나는 식구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무슨 대단한 계곡이 있다고 이토록 힘들게 찾아가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런 불평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우리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이 계곡을 찾아왔다. 산등성이 사이로 믿을 수 없이 맑고 고요한 호수가 숨어 있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호수에는 틸라피아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천렵을 즐길 물고기들도 많았다. 건너편 구석에서는 동네 청년들이 양을 잡은 다음 고기를 손질하면서 꼬치에 굽고 있었다.


일본 대사관의 친구 나이토씨 가족과 함께 놀러 갔던 와디 마자라Wadi Mazara는 어린 시절의 송추 계곡을 연상시키는, 넓은 개활지를 흐르는 널찍하고 얕은 개울이었다. 머스캇 북쪽으로 공항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다가 내륙 방향으로 접어들면 나칼Nakhal이라는 마을 어귀에는 온천수가 샘솟아 흐르는 시냇물도 있었다. 뜨끈뜨끈한 시냇물이었지만 햇살보다는 시원했으므로 그것도 특이한 피서가 되었다. 그 물 속에 살고 있는 피라미를 닮은 신기한 물고기를 잡아다가 집 안의 어항에 기르기도 했다. 가엽게도 와디 바니 칼리드에서 잡아온 덩치 큰 틸라피아에게 하룻밤 새 전부 잡아먹히고 말긴 했지만.


특이하기로는 와디 샤브Wadi Shab가 으뜸이었다. 머스캇과 수르 사이에 티위Tiwi라는 동네에서 강변을 거슬러 걷다 보면 가파르게 솟은 돌산의 암벽 사이로 흐르는 강, 그 양쪽으로 드리워진 열대 수목의 그늘이 나타난다. 신비감을 자아내는 풍경은 마치 같은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숨이 차서 좀 쉬어 가면 좋겠다 싶을 만치 산길을 오르다 보면 더 이상 전진할 길이 없어져 버린다. 거기서부터는 절벽 5-6미터 아래의 물로 뛰어내려 물길을 따라 헤엄쳐 가야 한다. 깊어서 시퍼런 색깔을 띠고 있는 강물 속으로 처음에는 누구나 뛰어내리기를 주저하지만, 초등학생인 아이들도 용감하게 뛰어내렸다. (하산할 때는 더 낮은 지점까지 물길을 따라 내려온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계곡물 속에서 헤엄을 치거나 암벽을 손으로 붙들고 한동안 다시 전진하다 보면 정면이 암벽으로 가로막힌 막다른 곳이 나온다.


거기가 끝이냐면 천만의 말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암벽에는 한 사람이 머리를 들이밀 수 있을 정도의 동굴이 뚫려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것을 ‘열쇠구멍’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안내 없이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는 이곳을, 우리는 머스캇에 오래 살면서 수산업에 종사하고 계신 김점배 사장님 가족을 따라 갔었다. 김 사장님이 하는 모습을 쫓아서, 몸은 물에 잠기고 머리만 물 밖으로 내 놓은 채 줄지어 그 비좁고 캄캄한 바위구멍 속으로 들어가 십 미터 쯤을 허우적대며 전진하다가, 우리는 차례로 탄성을 질렀다. 동굴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널찍한 ‘실내수영장’이 바위 동굴 속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굴의 천장 위 어딘가 바깥으로 구멍이 나 있는지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고, 동굴 속 바위를 타고 작은 폭포수가 물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같은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장소였는데, 도저히 카메라를 가진 채로 도착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보니 사진을 한 장도 남길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머스캇에서 티위로 가는 길 중간 쯤 바닷가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비마 싱크홀Bimah Sinkhole이라고 부르는, 평지가 쑥 꺼져 들어간 곳이다. 어림잡아 직경이 5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타원형 꼴로 지하를 향해 30-40미터쯤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바닥에는 깊이가 최고 17미터에 달하는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석회암이 함몰되어 생긴 신기한 지형으로서,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산에서 흘러나온 지하수와 바다에서 스며드는 해수가 섞여 짭짤한 맛이 나는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 물 속에서 헤엄치며 사는 물고기들도 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만화영화 <붉은 돼지紅の豚>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르코의 비밀아지트를 연상시키는 지형이었는데, 간혹 운이 좋으면 우리 식구가 이 낙원을 독차지할 수도 있었다. 구멍 속 바닥의 작은 모래사장에서 도시락을 먹은 다음 튜브를 타고 바위 그늘 드리운 물 위에서 노닐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동굴 속에서처럼, 우리가 떠드는 소리는 웅웅 울리는 메아리를 만들었다.


2002년 1월에는 부모님께서 오만에 다니러 오셨다. 모처럼 낯선 나라를 찾아오신 두 분을 모시고 우리 식구는 사막에도 갔고, 와디 바니 칼리드와 와디 마자라에도, 비마 싱크홀에도 갔다. 아버지는 여행 중에 피로를 쉽게 타셨다. 연로하신 탓이겠거니 했는데, 귀국하신 다음 달에 폐암 진단을 받으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2년간의 투병을 시작하셨다. 그 여행이 양친을 함께 모신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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