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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posted Mar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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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뾰루지가 났는데 잘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두면 낫겠지 하고 놔뒀더니 성을 내서 아프고 신경이 쓰여 회사 근처 피부과에 들렀다. 서툰 일본어로 수속을 마치고 병원의 대기실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두 시 46분이었다. 바닥이 울렁울렁 움직였다. 또 시작이군. 잠시 현기증을 느낄 정도의 지진은 일본에 도착한 뒤 지난 6개월 동안에만도 익숙해질 만큼 경험한 터였다. 웬만큼 흔들려서는, 일본인들은 식사 도중에 잡담을 멈추지도 않을 만큼 지진에는 익숙해 보였다. 지진이라면 나도 초짜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2년 동안 실내에서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의 지진은 충분히 겪어 보았고, 놀라서 대피해야 하는 상황도 겪어본 터였다.

그런데 흔들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번에는 좀 긴데 그래.” 이만하면 멎겠지 싶은 시간이 흘렀지만, 흔들림은 멈추는 게 아니라 더 강해졌다. 일본인 환자와 병원 직원들은 걱정스러운 눈길을 주고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급기야 벽과 문이 삐걱이면서, 얌전히 앉아 있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일본 건물은 잘 지었다고 하지만 이래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다. 점잔을 뺄 때가 아니었다. 슬며시 일어나 기둥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움직인 탓이었을까? 일본인들도 와, 소리를 내며 벽과 기둥 쪽으로 몰려갔다. 진찰실에서 환자를 계속 진료하던 의사가 밖으로 나오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우와- 이번에는 강한걸.”

집이 궁금했다. 핸드폰으로 집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는 먹통이었다. 흔들리는 바닥을 딛으며 병원의 공중전화로 다가가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나 먹통이었다. 심한 흔들림은 이윽고 멎었지만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 순서가 되었고,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 나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샀다. 거기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또 한 차례 강진이 왔다. 약국의 손님들은 전부 길 밖으로 나왔다. 길가의 가로등, 전신주와 신호등이 마치 강풍에 휘날리는 여린 나무들처럼 휘청거리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이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조악하게 재난을 흉내 내는 미국의 놀이공원이 생각났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전 직원이 건물 밖으로 대피 중이었다. 동경 시민들은 ‘개활지로 대피하라’는 지침에 따라 인근 공원이나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아이폰에 탑재해둔 인터넷 전화가 떠올랐다. 집에 있던 인터넷 전화와 연결이 되었다. 아내는 무사했고, 집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아내는 크리스탈 잔과 접시가 든 유리장이 앞으로 쏟아지려는 걸 사지로 버티면서 저만치 굴러 떨어지는 시계와 넘어져 박살나는 거울을 보고 있어야 했노라고 했다. 유리장을 붙들고 있을 게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궁금했는데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전원 무사하다는 메일이었다. 일단 이만하면 되었다.

일층의 임시 사무실에서 회의를 했고, 비상대책을 세웠고 비상대책반을 조직했다. 늘 하던 일을 접고 비상대책 업무를 시작할 순서였다. 일을 하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집에 전화를 해 보니 아이들이 귀가를 안했단다. 아 참, 그렇지. 전철이 끊겼으니 집에 그냥 올 수 있을 턱이 있나. 아내더러 차를 몰고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일렀다. 학교와는 전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잘 연결되지도 않는 인터넷 전화로 짬짬이 통화를 해본 결과, 아이들은 교직원의 차를 얻어타고 귀가했고, 아내는 학교까지 가서 허탕을 쳤다. 결국 세 식구가 집에 다 모였다는 소식이 왔다. 그 소식은 서울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들었는데, 국내 전화는 불통이었어도 국제전화는 간혹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통해, 가스를 잠그고, 여진이 있으면 밖으로 피신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비상식량을 좀 장만해 두라고 일러두었다. 다시 일을 하다 보니 금세 밤 아홉시였다. 아이폰의 이메일을 통해 세계 여러 곳의 지인으로부터 안부 문의가 왔다. 일일이 답을 할 여유는 없었다. 여진이 밭은 간격으로 계속되었고, 7층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는 쉽지 않았다. 급한 일을 마치고 선배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전철이 끊어지고 도로는 정체가 심해서, 보도는 걸어서 귀가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장이나 공포를 읽을 수는 없었다. 마치 무척 재미없는 연고전을 보고 잠실 경기장을 빠져 나와 정류장으로 가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러나 질서 정연한 무리를 이루어 일정한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개중에 여러 사람은 직장에서 나눠준 것처럼 보이는 지진대비 헬멧을 쓰고 있었다. 짜증을 부리거나 소란스럽게 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동차는 거의 움직이지 않다시피 했지만, 꼬리를 물고 교차로를 막는 차량은 한 대도 보지 못했다.

“이런 마당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을까요?” 내가 선배에게 물었다. 일본 근무가 세 번째인 선배가 싱긋이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일본사람이 많이 변하지 않았다면 하는 데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그의 말이 맞았다. 문을 연 데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식당이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은, 갑자기 보행자가 늘어나서 식당마다 끼니를 늦게라도 해결하려고 줄이 길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라면과 볶음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진도 8.8의 강진이었다. 일본의 동해안 지역은 6-7미터 높이의 지진해일로 초토화가 되었다. 일본이 기상관측을 시작한 156년 기간 중 최악의 지진이라고 했다. 이런 지진에도 동경 도심에 무너진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집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가스는 자동으로 차단이 되었다고 한다. TV 화면 속에서 해안의 집들은 조각난 쓰레기처럼 내륙으로 쓸려가고 있었다. 밤늦게까지도 안부를 묻는 메일이 왔다. 여전히 답신할 여유는 없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지하철이 운행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퇴근을 했다. 집에 들어서니 깨진 거울이 현관 앞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밤새 불안한 잠을 자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침상이 흔들렸고, 그때마다 핸드폰에서는 삑삑 지진경보가 울렸다.

3월 12일은 토요일이었지만 전 직원이 출근했고, 모두들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집에 있는 가족들 걱정도 될 텐데 어린 아이들을 집에 둔 후배들도 묵묵히 일했다. 나는 지금 철야근무를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동경에서 동북방으로 270km쯤 떨어진 후쿠시마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두 곳이 고장을 일으켰고, 한 곳에서는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고 인근 20km 바깥으로 대피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방송에서 스리마일 섬에서와 유사한 노심융용 사고 가능성을 우려했다. 최소한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만 하루가 지나갔는데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 창에 처 둔 블라인드들이 울렁울렁 춤을 추곤 한다. 철야 근무반만 남고 다들 퇴근한 다음부터 내 자리에서 앉아 있으려니 너무 조용했다. 상황일지를 만들고 아이폰에 들어 있는 빌 에반즈의 음악을 틀었다. 뉴스에서는 앞으로 적어도 한 달간 여진이 있을 것이고, 일주일간은 진도 6 정도의 여진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재난을 무질서와 혼란 없이 겪어내고 있는 일본인들을 칭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명이 재천이라지만, 인명피해는 되도록 적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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