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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구(新宿区) 요츠야(四谷) 우동 가게 사카이데(咲花善伝)

posted Nov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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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부채를 합죽선(쥘부채)으로 만들고,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워크맨으로 만든 일본 특유의 개량적 재능은 그들의 음식문화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스시의 뿌리가 동남아식 젓갈이고, 돈까츠가 포크 커틀렛의 변형이며, 오므라이스가 오믈렛의 응용품이라면, 일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음식인 우동의 기원은 고대 중국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일본인은 남의 것을 거리낌 없이 들여오고,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일본식으로 고친다. 그리고 일본식 개량과정을 거친 제품은 거의 언제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일본인의 재능은 모방해야 할 대상이나 사용할 수 있는 한정된 재료가 주어져 있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일본인 친구에 따르면, 일본인이 요리를 좋아하고 일본에 좋은 레스토랑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요리라는 행위가 주어진 재료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의 천성에 잘 맞는 활동이기 때문일 거라고 한다.

일단 일본화 과정을 거친 완성품 속에는 일본인 자신들이 소위 ‘화혼(和魂)’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특성이 녹아든다. 워크맨이 카세트 플레이어의 변조물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워크맨이 지닌 부가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아톰이 월트 디즈니의 저급한 모방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만 저급해 보이게 만들 뿐이다. 모든 문화는 소통한다. 이질적인 것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다. 완벽하게 독자적인 고유의 문화라는 것은 국수주의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내가 우동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그것을 폄훼하기는커녕 찬미하려는 뜻에서다.

인류가 밀 재배를 최초로 시작한 것은 기원 전 7천년 경의 메소포타미아에서였다고 한다. 고대에 밀 재배 기술과 밀을 가루로 만드는 기술이 중국에 전해진 후 국수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면 만드는 기술이 전해진 것은 대략 7세기 경이라는 설명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뒤늦게 섬나라에 소개된 면요리가 완전히 독립적인 개성과 일체성을 갖춘, 그러면서도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하나의 장르로 발전한 셈이다. 짝짝짝.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간장 맛 국물에 허연 국수를 말기만 하면 그게 우동인줄로만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의 친척들을 뵈러 가다가 대전역에 내려 3분간 정차시간에 마시듯이 먹어치우는 수수한 국수가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고의 우동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만난 우동이라는 요리 속에는 완성을 향한 일본인의 집요한 욕심이 들어 있었다. 미세하게 더 나은 맛을 위해서 장시간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비효율적인 집념의 결정체랄까.

우동은 화려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을 완성하지 않고는 맛이 날 수가 없다. 중국의 면 요리가 다채로운 소스와 함께 발달했다면 한국의 면은 곁들인 재료의 맛이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그러나 우동의 맛이라는 것은 면의 식감과 국물의 맛일 뿐이다. 거기 무슨 재료가 더 들어가건, 그것은 면과 국물의 맛을 돋보이게 만들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우키요에(浮世畵)라든지 산과 바다를 상징하는 일본식 정원처럼 미니멀리스틱한 미적 추구다. 이어령 선생의 표현을 빌린다면, 축소지향적인 음식인 셈이다. 우동은 더 나은 맛이 나올 때까지 이런저런 재료를 더 때려 넣는 음식이 아니다. 마치 쟈코메티의 조각품처럼,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을 사상함으로써 우동은 완성된다. 그래서 우동가게의 진면목은 그 집에서 파는, 국물과 면만으로 이루어진 가케우동(掛けうどん)에서 드러난다.

일본에서 문화적 관습은 관동과 관서로 대별된다. 같은 음식의 조리법도 대부분 관동식과 관서식이 다르다. 우동의 경우, 말린 가다랭이로 맛을 내고 진한 빛깔의 달달한 간장으로 양념한 국물에 굵고 차진 면발을 사용하는 것이 관동식이다. 관서지방에서는 멸치와 다시마로 맛을 낸 국물에 염도는 높지만 빛깔은 연한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연한 면발을 사용한다. 어느 경우든, 충분히 숙성시킨 밀가루 반죽을 사용해서 면발이 매끄러운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면발의 씹히는 느낌이 좋을 때, 일본 사람들은 면의 허리가 있다(腰がある), 또는 허리가 강하다(腰がつよ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씹기도 전에 뚝뚝 끊어지는 면발이라면 마치 허리가 없는 사람 같다는 얘기일 것이다.

기계로 제조하는 건면의 경우에는, 일본 농림규격은 “1.7mm 이상의 둥근 막대 모양 또는 때 모양으로 성형된” 밀가루 국수를 우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우동의 참맛은 손으로 만들어 ‘다마(玉)’라고 부르는 둥근 모양으로 1인분씩 정리해 두었다가 말아주는 생면에서 나온다. 일본에서 실력 있는 우동집이라면, 팔고 남을 만큼 면을 만들어 두지 않고, 숙성시킨 면이 다 팔리면 그날 장사는 그걸로 끝이다. 장사 상황을 보아가며 그때그때 면을 더 만들어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사무실 근처에는 사카이데(咲花善伝)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우동집이 있다. 이 가게의 젊은 사장이 카가와(香川)현 사카이데(坂出)시에서 '우동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런 상호를 붙였다고 한다. (咲花善伝는 坂出의 옛날식 음차 표기다.) 과연, 카가와 현이라면 시코쿠(四国)섬에 위치한 우동의 명소 사누키(讃岐)가 위치한 곳이다. 그러니까 우동집 사카이데는 동경 신주쿠에서 사누키 우동을 맛볼 수 있는 가게인 셈이다.

생긴 지가 그다지 오래 되어보이지 않는 이 가게의 주소는 동경도 신주쿠구 사몬쵸 12-8(東京都新宿区左門町12‐8)이고, 전화번호는 03-3351-3380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을 중심으로 카운터에 여남은 개의 좌석이 있을 뿐인 자그마한 식당이다. 식당의 주방에는 부부인지 친척지간인지 알 수 없지만 젊은 두 남녀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있다. 유심히 봤지만, 이들은 문을 열고 있는 시간 동안에는 손님이 없더라도 잠시도 쉬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여태껏 먹어본 중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집이 바로 이곳이다. 식구들에게도 맛있는 우동 맛을 선보여주고 싶어서 어느 토요일 점심 무렵 일부러 찾아갔는데 면이 다 팔렸다고 해서 아쉽게 돌아서 나온 적도 있다.

상당히 독창적인 메뉴를 개발해서 팔고 있는 식당으로, 돼지고기를 얹은 ‘시로(白)’, 쇠고기를 얹은 ‘쿠로(黒)’, 닭고기 카레 우동인 ‘키(黄)’, 오리고기를 얹은 ‘아카(紅)’, 등의 메뉴가 800-1200엔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부카케우동, 카케우동, 키츠네우동 등과 같은 기본 유동도 1000엔 미만 가격에 판매되고, 때에 따라 계절별로 개발한 새로운 메뉴도 소개된다. 나는 지난 여름 내내 입맛이 없을 때면 이 식당에서 ‘삿빠리레이멘(さっぱり冷麺)’이라는 냉우동을 즐겨 먹었다. 나에게 이 식당을 소개해준 선배에게 내가 고마워했던 것처럼, 내가 직장동료를 이곳에 데려가면 언제나 좋은 곳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톡톡히 듣는다.

특히 사카이데의 카레우동은 압권이다. 나는 막연히 카레우동이라는 것이 우동에 카레를 끼얹은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는데, 카레우동은 카레라이스와는 전혀 다른 제3의 음식이었다. 국물 맛이 카레소스와 우동국물 사이의 어느 지점에 맺혀 있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카레우동의 개성이 생겨난다. 앞으로 일본에 지내면서 더 나은 우동집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카레우동에 관한 한 사카이데보다 더 맛있는 곳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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