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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지초(淡路町) 이자카야(居酒屋) 미마스야(みます屋)

posted Sep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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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가 금붕어 흉내를 내는 것처럼(どじょうがさ、金魚のまねすることねんだよなあ)”이라는 말은 일본의 시인 아이다 미츠오(相田みつを, 1924-1991)이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이 최근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신임총리가 9월 1일 총리직에 오르면서, 아이다씨의 싯구를 인용하여 자신은 금붕어 흉내를 내지 않고 진흙 속을 누비는 미꾸라지처럼 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 뒤로 노다 총리는 이른바 “미꾸라지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덕에 시중에는 기다랗고 시커멓게 생긴 미꾸라지 과자라는 튀김과자조차 “총리 과자”라는 별명을 얻고 절찬리에 판매중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누군가를 미꾸라지에 비유하면 “뺀질뺀질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미끄러움”이나, “혼자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일본에서도 원래 미꾸라지가 대단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은 아니라서 총리가 스스로를 미꾸라지에 비유한 것이 일종의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일본의 미꾸라지는 우리만큼 부정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인들도 미꾸라지를 먹는다. 일본말로는 미꾸라지를 ‘도죠(泥鰌)’라고 부르는데, 우리 추어탕처럼 형체를 못 알아보게 갈아서 먹지 않고, 길쭈름한 채로 배를 갈라 얇게 깎은 우엉과 함께 냄비에 넣어 삶은 다음, 갖은 양념을 넣고 달걀을 풀어 얹어서 요리한다. 이것을 ‘야나가와나베(柳川鍋)’라고 부른다. 아마도 버드나무 드리운 얕은 시냇물에서 잡은 생선이라고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미꾸라지라고 하면, 으악, 소리를 지르며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아마도 비늘이 없는 생선이라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따져 보아도 고등어나 꽁치는 먹으면서 미꾸라지는 징그럽다고 말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동경 시내 칸다(神田)에 야나가와나베를 잘 하는 이자카야가 있다. 지하철 마루노우치선(丸の内線)의 아와지초(淡路町)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미마스야(みます屋)라는 곳이다. 일본에서는 100년이 넘도록 변치 않는 맛과 신용으로 고객들을 맞는 가게를 일컬어 노포(老舗)라고 쓰고, 읽기는 ‘시니세’라고 읽는다. 그러니까,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메이지 38년)에 창업된 이 가게는 ‘시니세 이자카야 미마스야’인 셈이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각박한 삶을 살았던 우리나라에는 일본식 기준으로 ‘노포’라고 부를 만한 식당이 없다. 그런데 정작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인 일본에서는 얄밉게도 이런 가게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하긴, 대공습을 포함하는 전쟁과,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찢어지는 가난은 일본에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월의 격동’만을 탓할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은 옛것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만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습관을 쉽사리 바꾸느냐 여부를 가지고 보수와 진보를 가릴 수 있다면, 내가 아는 한 일본은 지구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고, 한국보다 진보적인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각각 일본의 강점이자 약점이고, 한국의 약점이자 강점일 터이다.

이번에도 나는 후지TV의 노자키상을 따라, 메이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는 미마스야에 가 보았다. 낮게 드리운 포렴(노렌; 暖簾)을 젖히고 들어선 목조건물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선 평상 위에는 여러 개의 탁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옆 테이블 손님에게 꾸벅 양해를 구하니 화들짝 미안하다며 얼른 우리 자리에 벗어둔 자기 옷을 치워주었다. 미마스야의 주인이 3대째라니, 이곳을 찾는 손님도 3대째일 터였다.

노자키상은 짓궂은 미소를 띄면서 말사시미(바사시: 馬刺身)를 먹어보겠냐고 했다. 내가 기겁을 했다면 재미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래된 친구 나이토 상과 술을 마시면서 이미 바사시가 맛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터였다. 일본사람들은 말고기를 ‘사쿠라고기(桜肉)’라고 부른다. 벚꽃처럼 붉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과거 일본이 개항을 했을 때 서양인들에게 말고기를 쇠고기라고 속여서 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외국인들은 “이거 혹시 사쿠라고기 아닌가?” 의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므로, 사이비나 가짜를 일컬어 ‘사쿠라’라고 부르는 습관이 거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다. 믿거나 말거나.

바사시를 주문하니, 점원이 아카미(赤身)로 하겠는지 시모후리(霜降)로 하겠는지를 물었다. 노자키상이 시모후리가 더 맛있는데 그걸로 하겠냐고 나한테 물었다. 맛있다는데 뭐 고민할 게 있나. 시모후리를 시켰다. ‘시모후리’란, 서리가 내렸다는 뜻인데, 고기에 서리처럼 지방질의 ‘마블링’이 잘게 섞인 부위를 말하고, 아카미는 지방이 없는 빨간 육질을 말한다. 우리는 시원한 맥주로 입을 가신 다음, ‘버드나무 냇물 냄비’ 요리와 ‘서리 내린 사쿠라 고기’를 안주 삼아 일본술(日本酒)와 일본식 소주를 번갈아 마셨다.

미마스야가 미꾸라지나 말고기처럼 낯선 음식만 내는 곳은 물론 아니다. 이곳에는 스키야키 풍의 각종 끎임요리(니코미; 煮込), 전갱이나 복어 튀김, 닭구이 등의 안주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노자키상과는 영화 이야기로 안주를 삼느라 다른 안주를 맛보지는 못했다. 나는 최근의 한국영화가 품격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고, 노자키상은 일본영화가 한국영화만큼 활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각자의 한탄을 들어주느라 술이 과했던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지하철을 계속 타고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미마스야의 주소는 치요다구 칸다츠카사마치2-15 (東京都千代田区神田司町2-15-2)이고, 연락처는 03-3294-5433이다. 점심시간에도 영업을 한다고 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17시부터 23시까지 영업을 한다. 언제나 붐비는 집이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고 오면 ‘틀림없이’ 자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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