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지방에서 짙은 색의 코이구치(濃口) 간장으로 우동 맛을 내는 것과는 달리, 관서지방에서는 색이 옅은 우스구치(薄口) 간장을 사용한다는 점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 이유는 관서에서 우동을 널리 먹는데 비해 관동에서는 소바가 더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관동 사람들은 소바 국물에 더 잘 어울리는 짙은 색 국물을 그냥 우동에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내 일본인 친구 한 사람은 교토 태생으로, 고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도쿄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도쿄에 와서 우동을 시켜보니 웬 시커먼 국물에 국수가 빠져 있어 “이게 뭔가” 싶었단다. 평소에 알던 우동과 너무 달라서 징그러운 생각도 들어서 한동안 도쿄 우동은 잘 먹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거꾸로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관서지방 우동이 어떻기에 그러나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도쿄에서 어딜 가야 관서식 우동을 먹어본단 말인가?
일본 전문가인 선배에게 여쭈었더니 금세 답이 나왔다. 롯폰기 네 거리 근처에 가면 ‘기온테이(祇園亭)’라는 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었었다. “기혼테이요?”라고 물었더니, 선배는 “아니, 교토의 기온(祇園)”이라고 일러주셨다. 기온은 교토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유흥가에 해당한다. 식당 주소는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 3-13-8(東京都港区六本木3-13-8)이고, 전화는 03-3497-0352다. 토요일 저녁, 미식가인 작은 아들을 꼬드겨 그날따라 도쿄답지 않게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기온테이를 찾아갔다.
기온테이는 우동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교토식 술안주 여러 종류를 구비한 이자카야(居酒屋)였다. 우리는 각각 메뉴에 나온 두 가지 교토풍(京風) 우동을 주문했는데, 웨이터가 들고 온 그릇 속에는 과연 보리차보다도 더 옅은 빛깔의 국물이 담겨 있었다. 우스구치 간장이 색은 옅지만 염도는 더 강하다고 들었는데, 기온테이의 우동은 도쿄에서 먹던 여느 우동보다 더 담백하고 싱거웠다. 귀족적인 맛이라고 해야 할까. 면발도 훌륭했고 전체적인 균형감도 좋았다.
나는 오늘도 좋은 경험 했잖느냐고 아들에게 은근히 덕담을 기대했는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아들녀석은 “맛있긴 한데, 저는 츠루통탄 우동이 더 좋아요”라고 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사람의 입맛은 무서운 것이어서 어느 쪽에 먼저 길들어지느냐에 따라 기호가 결정된다. 일본이라고는 도쿄에서의 일 년 반 생활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어느새 ‘관동형’ 입맛을 가지게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