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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나미구(杉並区)의 소바집 소바미와(蕎麦みわ)

posted Jan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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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좀 길어지겠다. 구리료헤이(栗良平)라는 작가가 1987년 발표한 <한 그릇의 가케소바(一杯のかけそば)>라는 단편소설을 요약해서 소개할까 한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소설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대강은 이어령 선생께서 소상히 분석하신 내용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1972년 섣달 그믐날, 삿포로의 소바 가게 북해정(北海亭)은 아침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날 밤 10시를 넘기고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출입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세 사람이 들어왔다. 운동복을 입은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자는 철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여자가 머뭇머뭇 말했다.
        "저... 가케소바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가케소바,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인은 “아이욧 가케 잇쵸!”라고 복창하고 손님과 아내가 눈치 못 채도록 1인분에 국수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오손도손 국수를 먹은 세 식구는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주인 내외도 목청을 돋우어 인사 한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듬해 북해정은 바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다. 10시를 막 넘기고 가게를 닫으려고 할 때 드르륵,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여전히 체크무늬의 반코트를 입고 있었고, 올해도 가케소바 1인분을 주문했다. 서비스로 3인분을 내주자고 귀엣말을 하는 여주인에게, 남편은 국수 하나 반을 삶으며 대답한다.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
그 이듬해의 섣달 그믐날,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했다.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은 벽에 붙어 있는 메뉴표를 차례로 뒤집었다. 지난 여름에 값을 올려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30분 전부터 예약석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반이 되자 세 모자가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 형이 입고 있던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고, 엄마는 색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였다. 이들은 이번에는 가케소바 이인분을 주문한다. 주인이 남몰래 3인분의 국수를 삶는 동안 세 모자는 활기차게 대화를 나눈다.
        "오늘은 너희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보험으로도 다 지불할 수 없었던 배상금을 매월 5만엔씩 지불하고 있었단다."
        "음... 알고 있어요."
라고 형이 대답한다. 여주인과 주인은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지불은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지만, 실은 오늘 전부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단다."
        "넷!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단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에서 특별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진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나도 신문배달, 계속할래요. 쥰아! 힘을 내자!"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이제야 말씀인데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참관을 하라고 편지가 왔었어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되게 되어서 수업참관 일에 이 작문을 쥰이 읽게 됐대요. 선생님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해서 회사를 쉬실 걸 알기 때문에 쥰이 감췄어요. 쥰의 친구들한데 듣고 제가 참관일에 갔어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너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가케소바 한 그릇> 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생각했죠. 작문은...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내가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는 것 등등 전부 씌어 있었어요. 그리고서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소바가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소바집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큰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깊숙이 웅크린 주인 내외는 한 장의 수건 끝을 붙잡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세 사람의 손님은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즐거운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 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성하여 내부수리를 하면서도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의아해 하는 손님에게, 주인은 세 모자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이 테이블을 자신들의 자극제로 삼고 있다, 언젠가 그 세 손님이 다시 와주면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다고 설명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여러 해가 흐른 어느 섣달 그믐이었다. 북해정에는 거리 상점회 회원과 이웃들이 모여 떠들썩한 분위기로 그믐날을 보내고 있었다.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열렸다. 정장 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여주인이 "공교롭게 만원이어서" 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 차림의 부인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저... 가케소바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황해 하고 있는 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한 그릇의 소바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포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소바집 주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소바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 내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옆에 있던 손님들이 일어나 외쳤다.
        "주인장! 뭐해요! 십년간 이 날을 위해 마련한 예약석이잖아요, 안내해요. 안내를!"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가케소바 3인분!"
        "아이욧! 가케 산쵸!"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이 복창했다.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북해정의 포렴이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이상이 소설의 줄거리다. 굳이 이 소설을 소개하는 이유는, 일본인의 특징이 그 속에 함뿍 담겨 있다고 생각되어서다. 무엇보다도, 이토록 짧은 소설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것부터가 일본의 독특한 풍토다. 일본 문학에는 단편보다 짧은 ‘장편(掌篇)소설’이라는 양식이 있어서, 노벨상 수상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100편 이상의 장편(掌篇)소설을 쓰기도 했다.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양식의 시(詩)로서, 프랑스 학생에게 하이쿠를 가르치면 “제목은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제 내용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는 우스개도 있다고 한다.

먼저 소개할 사실 한 가지는 일본인들은 섣달 그믐날이 되면 소바를 먹는다는 점이다. ‘도시코시(年越し) 소바’라고 부르는 세시 풍속 음식이다. 국수가 가늘고 길어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는 설도 있고, 소바가 뚝뚝 잘 끊어지므로 한 해의 고생을 잘라버린다는 뜻이라는 설도 있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나는 한참동안 일본에서는 섯달 그믐날 우동을 먹는 줄 잘못 알고 지냈다. 나 참. 번역가가 왜 그랬을까. 마치 떡국을 수제비로 소개한 꼴이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세 모자는 굳이 북해정에 들러서 가케소바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한 그릇을 시켜서 셋이서 나눠먹는 게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면 가게에서 청승을 떠는 대신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어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세 사람은 소바집을 찾는다.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이 되면 교회를 찾아가는 것처럼, 그것은 종교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제단을 만들어두고 제사를 지내듯이 2번 테이블을 해마다 예약석으로 남겨두는 소바집 주인 내외의 행동과도 닮아 있다. 일본인은 평범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양식화하려는 습성이 남다르게 강하다.

손님과 식당 주인이 주고받는 대화도 양식화되어 있다. 손님은 남의 영업장에 셋이서 찾아와 한 그릇만 주문했다는 것 때문에 몹시 쭈뼛거리면서도 정작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주인은 괜찮으니까 개의치 말라고 말하는 대신, 다른 모든 손님과 똑같이 대하는 것으로 예의를 삼는다. 여섯 살 먹은 꼬맹이도 소바집 주인이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동은, 그러므로 매우 양식화된 감동이다. 일본의 독특한 문화에서 진심이란 감추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그 무엇인 셈이다. 아마 한국에서였다면, 손님은 “정말 죄송하다”라고 말함으로써 미안한 마음을 풀었을 것이고, 주인은 차라리 “한 그릇만 시키시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주거나, 아니면 “괜찮으니까 마음 편하게 드시라”고 말해줌으로써 원망이나 친절을 그자리에서 다 베풀어 버렸을 것 같다. 역시 한국은 ‘되갚는 문화’라기보다는 ‘푸는 문화’인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일본 식당 주인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국수 반 덩어리를 더 말아 넣는다. 손님들은 주인의 선심을 눈치 채고도 고마움을 마음속에 담아둘 뿐, 모른 척 한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인간관계인 닌죠(人情)이고, 기쿠바리(気配り)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않고 자기의 역할에만 충실을 기한다는 의미에서, 일본인의 예의범절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일본의 다도(茶道)에서 주인이 하는 행동과 말, 손님이 하는 행동과 말이 미리 다 정해져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짧은 소설 속에는 ‘되갚음’을 중시하는 일본의 특성도 짙은 농도로 들어 있다. 소바집 주인에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모자의 분투가 이야기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어머니는 배상금을 ‘갚기’위해 자학적일 정도의 검약을 실천한다. (매달 5만엔씩 배상금을 갚으면서 소바 두 그릇 더 시킬 300엔이 정말 없지는 않았을 터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희생을 ‘갚기’ 위해 나름대로 분투한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자신의 성의를 알아준 데 감동하여 그것을 ‘갚기’위해 2번 테이블을 일종의 제단으로 만든다.

일본인들은 정말로 열심히 갚는다. 일본인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친절을 베풀면 반드시 온가에시(恩返し)라는 감사의 선물이 되돌아온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스미마센(済みません)’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 속에는 ‘갚을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되갚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살 일은 삼가는 편이 좋다. 일본의 대표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어째서 일본 문학에는 복수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어령 선생이 잘 지적한 것처럼, 그 이유는 아마도 “빚이나 은혜를 갚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원수에게 복수하는 것도 갚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그릇의 가케소바> 속에는 일본 상인들이 실천하려는 친절의 정신이라든가, 기껏 국수 3인분을 시키는 것을 “최고의 사치”라고 말하는 의사 청년의 말에서 나타나는 검약의 미덕도 들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청승맞을 정도로 검약을 실천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300엔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수 삼인분을 사먹는 것보다 서둘러 갚아야 할 배상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검약은 근면, 성실과도 한 몸뚱아리를 이루는 미덕이 된다. 검약, 근면, 성실에 일본인이 부여하는 중요성은 그들을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은 특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무대를 다른 나라로 옮겨놓으면 사라지고 말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8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1988년 FM 라디오 연말 프로에 낭송되고 그것이 산케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문자 그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질문대에 오른 의원이 이 소설을 낭독하면서 장내가 숙연해지고 각료석의 장관들을 울리고 말았다. <주간 문예춘추>는 ‘편집부원도 울었다’는 선전문구를 달고 전문을 게재했고, 후지 텔레비전은 무려 닷새 동안 낭독자를 바꿔 가면서 시청자의 우는 모습을 실황 중계했다. 경시청에서는 이 소설을 복사해 일선 수사관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피의자 신문을 할 때 이 소설을 읽혀 눈물을 흘리게 하고, 마음을 순수해진 틈을 타 자백을 시키라는 취지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소설이 실화냐 아니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소설 속 주인공 찾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소설 내용이 실화가 아닌 ‘사기극’으로 밝혀지면서 열기는 식고 만다. 작가 구리료헤이의 이런저런 비행이 밝혀진 것도 영향이 있었다. 이것도 희한한 현상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허구로 밝혀졌다고 해서 독자의 관심이 식는다니, 진실과 이야기를 이토록 혼동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을까. 이어령 교수는 “일본의 검객에 대한 무용담이라는 것은 대개가 다 이런 신화 만들기의 소산”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집단주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이렇게 허구를 사실로 만들고 신화를 역사로 믿게 하는 특성 가운데 있다.” 허구를 사실로 만드는 일본 특유의 이러한 재능은 ‘임나일본부설’이라든지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역사 왜곡에도 작용하고 있다.

사설이 길었다. 2011년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12월 31일, 우리 식구는 집 근처의 소바가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북해정의 세 손님처럼 한 그릇만 주문한 건 아니었지만,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인 다섯시 반에 맞춰 갔는데도 바람 부는 길거리에 줄을 서서 제법 기다리긴 했다. 스기나미구 이구사쵸 3-15-3(東京都杉並区井草町3-15-3)에 있는 ‘소바미와(蕎麦みわ)’라는 식당은 까다롭기로 이름난 미슐렝 가이드(동경판)에 스기나미구에 있는 식당으로는 달랑 유일하게 수록된 식당이다. 설령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갔더라도, 식당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은 언제나 좋은 조짐이다. 10-20분만 기다리면 틀림없이 여느 식당에서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는 뜻이니까.

자그마한 식당 안은 정갈했고, 섣달 그믐날에 어울리게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내장식에도 제법 신경을 쓴 것인지 메밀겨가 섞여 있는 정겨운 흙벽이 벽지를 대신하고 있었다. 우리 네 식구는 야채튀김(かき揚げ)이 딸려 있는 따뜻한 국물 소바와 차가운 세이로(せいろ)를 주문했다. 세이로(蒸篭)란 원래 대나무로 만든 찜통을 가리키는데, 증기로 쪄서 차갑게 식힌 소바를 그냥 소바라고 부르는 대신 유난스레 ‘세이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식당에서 세이로라는 메뉴를 보면 우리나라 분식집에서 파는 모밀국수의 모양을 상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소문난 식당답게 냉온 소바 양쪽 다 맛이 좋았다.

또 이렇게 한 해가 저문다. 일본에 와서 한 해 남짓,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고, 많은 일을 겪기도 했다. 거기엔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도 포함되고, 아들의 대입준비를 돕는 낯선 경험도 포함되었다. 내년 한 해는 어떤 놀랄 일들이 벌어지려나. 연말부터 심상치 않은 소식으로 분주한 걸 보니 조용하고 차분하기만 한 새해가 되기는 벌써 틀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섣달 그믐날 굳이 식구들을 소바가게로 끌고 가 저녁식사를 한 것도 뭔가 작은 의식을 치르듯이 행운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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