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기현(宮城県) 센다이시(仙台市) 소혀구이(牛たん炭焼) 리큐(利久)

posted Mar 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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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는 다소 생뚱맞게도, 우설(牛舌) 요리의 중심지다. 일본 사람들은 소의 혀를 한자와 영어의 합성어인 ‘규탄(牛+tongue)’이라고 부르니까, 일단 불필요한 중언부언을 피하기 위해 그곳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규탄이라고 쓰겠다. 우설 소금구이는 ‘규탄시오야키(牛タン塩焼き)’ 또는 줄어서 ‘탄시오’가 되는 식이다. 도쿄에서도 고기를 굽는 식당(야키니쿠야)에서는 의례 우설 구이로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을 만큼, 일본인은 우설을 즐기기는 한다.

그러나 도쿄의 우설 요리가 서울에서 보던 것처럼 둥글고 얇게 저민 형태로 굽는 것이라면, 센다이의 ‘규탄야키’는 이른바 ‘아츠키리(厚き利)’라고 해서 두툼하게 썰어 칼집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 깨나 먹었다는 한국인 중에도 ‘두툼한 우설요리’라고 하면 어쩐지 거부감을 가질 사람도 있음직 한데, 센다이 역의 삼층 식당가에는 아예 이런 식의 규탄 요리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성업 중이다.

오늘날 센다이가 규탄 야키의 메카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 음식의 지역적 특색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착을 잘 보여주는 사례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의 식육 풍습이 짧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대표적인 사례 같기도 해서다. 일본인들이 육고기를 전면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년도 채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었다. 그리고 센다이 쇠고기가 유명세를 탄 것은 패전 이후의 일이다.

센다이에 미 점령군이 진주한 후, 미군들이 대량으로 소비하면서 습성상 먹지 않고 남기는 부위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혀와 꼬리 부위를 이용한 식당이 생겨났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일본에서는 다양한 육고기 재료와 다양한 부위의 요리에 대해 금기나 혐오 분위기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야생동물 요리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혐오감이 없는 것 같고, 고래처럼 진귀한 동물의 고기를 세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대량으로 소비해온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특정한 몇 가지 동물을 집중적으로 식용으로 사용한 경험을 갖지 않은 ‘육식계의 신규 진입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 짐작이다.

사실 무슨 이유에서든 고기 자체를 멀리하는 것은 별문제지만, 육식을 하면서 어떤 동물은 되고 어떤 동물은 안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런 의미에서, 센다이의 규탄야키는 혀나 꼬리는 의례 스튜나 스프의 재료로만 써야 되는 줄 아는 서양 요리에 멋지게 한 방을 날린 셈인지도 모른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뭐 어떠냐 이거다.

하지만 센다이의 규탄야키가 전쟁직후부터 성황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로 집 밖의 식당에서 먹는 요리이며, 가정에서 환영받는 요리는 아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 규탄 식당이 넘쳐나게 된 것은 80년대 고도성장기를 겪으면서 센다이에 거주하는 전근자와 단신부임자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에 규탄을 별미로 즐기면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센다이 역전이나 공항, 기념품 가게 어디서든 다양한 규탄 포장 제품을 팔고 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몇 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전통을 지닌 특산품의 행색을 하고 있는데, 이 제품들이 토산품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내가 수염을 깎기 시작한 시절 이후의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제는 제법 유명세도 자리를 잡아서, 내가 센다이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규탄야키 많이 먹고 오라’고 인사를 해 주던 지인들이 벌써 여럿이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가 센다이에서 찾아간 곳은 가장 인기가 높다는 체인점 리큐(利久) 그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소문이 난 츄오도리점(中央通り店)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맛을 볼 요량으로 구이 정식과 스튜 정식을 각각 시켰는데, 역시 스튜보다는 구이가 훨씬 맛이 좋았다. 칼집을 내 두툼하게 구운 우설은 간도 잘 배고 맛도 좋았으며, 씹는 맛도 일품이었다. 정식에 함께 나온 쇠꼬리 국도 고기와 맛이 잘 어우러졌다.

‘일본인은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방질의 마블링이 서리처럼 내린 ‘시모후리(霜降り)’ 부위를 최고로 치고, 아직까지 구이 보다는 샤브샤브나 전골, 스키야키 등이 일본 고기 요리의 본류이기 때문에 일본 식당에서 먹는 고기는 식당이 고급이면 고급일수록 씹기 전에 입안에서 녹아버리는 느낌이다. 고기라면 역시 불에 구워서 씹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모후리 상등품 쇠고기로 구이를 하면 부드럽긴 하지만 너무 느끼해서 손바닥만한 접시에 나오는 일인분 이상을 먹을래야 먹을 수도 없다.

그런 마당에, 센다이에서는 이토록 박력있는 식감을 지닌 우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센다이의 규탄야키는 일본 전역의 일반적인 쇠고기 식습관에도 한 방을 날리는 유쾌한 지방색이라고 생각된다. 리큐 츄오도리점의 주소는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오바구 츄오 2-2-16(宮城県仙台市青葉区中央2-2-16)이다. 센다이에서 열차를 타고 도쿄역에 도착한 것은 저녁 식사 시간 무렵이었다. 도쿄 역 구내 식당가에 유독 어떤 집 앞에 줄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기에 무슨 식당인가 했더니, 규탄야키 리큐의 도쿄역 지점이었다. 일본인은 고기를 먹을 줄 모른다는 내 생각은 의외로 빨리 거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