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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3. Islas Canarias

posted Jun 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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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5일, 토요일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공항에 닿은 시간은 아슬아슬했다. 이연호 선배 내외, 세현, 우리 세 식구 이렇게 여섯 명이 의기투합해서 카나리아 섬Islas Canaria으로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귀국을 석 달 앞두고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까 우리는 네 식구라고 말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겨울은 길고도 우울했고, 우리는 밝은 태양을 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 여행을 공모했다. 오후에 활주로를 떠난 비행기는 깜깜해서야 그란카나리아섬Gran Canaria에 도착했다.


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령의 섬 일곱 개를 가리키는데, 스페인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모로코의 서부사하라에서 서쪽으로 108km 떨어진 곳에 있다. 스페인 본토로부터는 무려 115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우리가 방문한 그란 카나리아는 일곱 개 섬들 중 테네리페Tenefire 다음으로 큰 섬인데, 이 섬의 도시 라스팔마스Las Palmas가 카나리아 군도의 수도에 해당한다. 1492년에 아메리카로 항해하던 콜럼버스도 카나리아 제도에 기항해서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화산섬인 카나리아 제도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 속에 있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피한지로 인기가 높다. 겨울철 햇살에 목마른 영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여행지는 스페인 남부 해안지방, 지중해의 마요르카Islas de Mallorca, 그리고 카나리아 제도 등이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카나리아 제도를 방문하고, 이곳의 경제는 삼분지 일 정도를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 본토보다 1시간 느리므로 영국과는 시간대가 같다. 이것도 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는 반가운 점이다. 카나리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노랗고 예쁜 새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정작 새와는 상관이 없는 이름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옛날에 이 섬들에는 사납고 큰 들개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이름은 ‘개들의 섬’이라는 라틴어 ‘Insula Canaria’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숙소는 ‘풍요한 해안Puerto Rico’(카리브 연안의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와는 무관함)이라는 동네에 자리 잡은 알바투르Alvatur라는 빌라였다. 요즘 강화도 같은 곳에 흔해진 펜션과 흡사한 복층의 숙박시설이었다.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푸에르토리코는 그란카나리아의 계곡 언저리 동네였는데, 가파른 계곡 양편에 호텔들이 즐비했다.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따뜻한 바닷바람에서는 남국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났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숙소에서 뭔가를 사러 상가까지 가려면 절벽을 따라 난 계단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는 점. 일주일간 운동 꽤나 하게 되었다.


3월 26일, 일요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 함께 산책 삼아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람이 좀 센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절벽 아래 해안에 자리를 잡고 보니 딱 알맞게 따뜻했고 알맞게 시원했다. 찌는 듯이 덥지도 않지만 바다에 뛰어들기 무서울 만큼 서늘한 것도 아니었다. 과연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한지라더니 겨울을 피해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카나리아 섬 당국은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백사장의 모래를 보충하기 위해 사하라 사막의 모래를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이 중요한 산업이니 충분이 그럴 만도 하겠다.


아들은 어느새 달리기를 주특기로 삼을 만큼 자라, 드넓은 백사장을 종횡으로 뛰어다니며 모래를 집어 던지고 찍어먹고 파도를 향해 돌진하고 물장구를 쳤다. 우리는 그토록 그리던 햇볕을 실컷 쬐었고, 어슬렁어슬렁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식당 들러 빠에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선후배가 어울려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또 한 번 수영을 했다. “형, 저녁은 뭘로 할까요?” “수제비 어때?” 근처 상점에서 밀가루를 사 왔다. 멸치 국물이 끓고 있는 동안, 사방의 창문을 열어둔 숙소의 거실로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3월 27일, 월요일


계곡 상류 쪽에 있는 대규모 야외수영장 아쿠아팍Aqua Park으로 갔다. 걸어서도 15분 정도 거리에 불과했다. 어제는 바다에서 짠 물을 맛보고 오만상을 찌푸리던 꼬맹이는 한동안 물장구를 치고 좋아했는데, 풀장 속에서 까불다가 물을 한번 먹더니만 고집스레 수영장 밖에서만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내와 내가 번갈아 잡으러 다녔는데도 기운이 모자랐다. 맑은 하늘에 지나가던 가랑비가 잠깐 뿌렸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엽서 속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생긴 풀장 곁의 파라솔 아래 길게 누워서 다 함께 낮잠을 잤다.


3월 28일, 화요일


숙소에만 있기가 갑갑해져서 렌트카를 빌렸다. 면허증을 가지고 온 사람이 나 뿐이어서 내가 차를 골랐는데, 6인승짜리 이탈리아제 승합차를 빌렸다. 하루 대여료가 30파운드였다. 우리는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했다.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섬의 남동쪽은 평범한 해안이었고, 우리가 머물던 북서쪽은 가파르고 높은 화산섬의 절벽이었다. 길이 구절양장이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코스는 제법 거칠어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카나리아 제도의 주요 산업이 관광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수산업으로 인연이 더 깊다. 그란 카나리아 섬의 수도 라스팔마스에는 1973년부터 영사가 부임했고, 1976년부터 1999년까지 23년 동안은 대한민국 총영사관도 있었다. 이곳에 한국수산개발공사의 원양어업 전진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에는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던 곳인데, 원양어업의 비중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은 총영사관 대신 작은 규모의 분관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1995년만 해도 아직 총영사관과 6-7천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던 무렵이었는데, 우리는 정작 동포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어쨌든 수산업 전진기지라니 어딘가 생선시장이 있을 거 아닌가. 우리는 렌터카를 타고 자갈치 같은 곳을 상상하면서 생선가게를 찾아다녔지만 동네 사람이 알려준 곳을 가보니 구멍가게에 놓인 좌판 위에 변변치 못하게 생긴 몇 마리의 생선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잘 찾아내지 못한 것이거나, 이곳은 어업의 기지일 뿐 주민들을 위한 생선 소매시장은 따로 없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가게의 생선들이 싱싱해 보이지 않아서 생선찌개를 해먹자는 계획은 포기했다. 명색이 전 세계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라는 곳에서 변변한 생선 한 마리도 구하지 못하다니! 어쩌면 이 동네 주민들은 생선이라면 각자 자기들이 잡아서 먹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우리는 푸에르토 데 모간Puerto de Mogan의 해변에서 지는 해와 낙조를 구경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생선찌개를 대신할 저녁재료를 사왔다. 라면과 김치만 지참하고 왔다면, 스페인령의 조그만 섬에서도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다름 아닌 부대찌개였다.


3월 29일, 수요일


임산부인 아내와 아들이 하루쯤 숙소에서 조용히 쉴 수 있도록, 나머지 일행만 짚 사파리Jeep Safari를 다녀왔다. 6인승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먼지투성이인 산길off-road을 달려 섬의 능선을 관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Jeep’은 크라이슬러Chrysler사가 옛날에 만들었던 사륜구동 차량의 제품명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륜구동차량을 SUV 또는 포-휠4-wheel 이라고 불러야지, ‘짚’이라고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차라리 못 알아듣는 편이 낫지, 혹시 알아듣기라도 하면 잘못된 호칭이라고 면박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처럼 사륜구동차량을 그냥 ‘짚’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내심 반가웠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 관광객들이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다. 여남은 대의 ‘찌프차’에 가득 탄 사람들이 금세 서로 친구가 되었다. 먼지투성이가 되어 언덕길을 내려오던 귀로에는 주최측에서 물이 가득 담긴 펩트 병을 한 사람에 하나씩 나눠 주었다. 웬 마실 물을 이리 큰 병으로 주나 했더니, 들어본즉 마실 물이 아니었다. 운전기사가 장난스레 다른 차에 접근하면 거기 탄 관광객들이 서로에게 물을 뿌려대는 장난을 하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어린 아이처럼 믈장난을 했다. 달리는 차를 타고 있어서 옷은 금세 말랐는데, 출발했던 장소에 다시 도착하고 보니 하나같이 어디 하수도 수리라도 하고 나온 사람들의 몰골이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로 닭죽을 준비해놓고 있던 아내는 흙물 자국 범벅이 되어 들어온 우리를 보고 도대체 뭘 하다 온 거냐며 화들짝 놀랐다.



3월 30일, 목요일


어제 짚 사파리에 갔다가 집어온 팜플렛을 보고 내가 배를 타러 가보자고 일행을 꼬드겼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아침 10시쯤 항구로 나갔다. ‘영국인의 해변Playa del Ingles’ 근처의 항구 위에는 두 척의 멋진 범선이 정박해 있었다. 붉은 돛을 단 배의 이름은 산미겔San Miguel이고 흰 돛의 배는 티만파야Timanfaya였다. 우리는 갑판이 좀 더 널찍하고 흰 돛을 단 티만파야 호에 승선했다. 돛을 단 범선을 타본 경험은 처음이었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몰랐다. 우리 배는 힘껏 부푼 돛을 달고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돈 많은 부자들이 요트 취미에 빠지면 헤어날 줄 모른다던데 그도 그럴 법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떠나온 섬이 수평선 한 구석에 멀찍이 보일 만큼 난바다로 나간 배는 닻을 내렸다. 돛의 그늘이 드리운 배의 우현에서는 낚싯대를 빌린 사람들이 줄줄이 낚시를 드리웠고, 볕이 드는 좌현에서는 다이빙 잔치가 벌어졌다. 서양 만화에서 해적들이 그러듯이 배에다 널빤지를 걸쳐 놓고 그 위를 걸어가서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영어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처형당하는 것을 일컬어 ‘널빤지 위를 걷다(walk the plank)’라고 표현한다. 얼핏 생각하면 수영장 다이빙보드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바닥을 알 수 없는 난바다의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은 수영장 따위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짜릿한 경험이었다. 배가 크다 보니 10여 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밑으로 뛰어내리는 데도 제법 용기가 필요했다. 신나게 뛰어내리면 풍덩 하고 물에 닿은 뒤 한참동안 가라앉다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세 번을 뛰어내렸고, 바다 위에서 한참을 둥둥 떠다녔다. 연호 형은 나보다 멋지게 뛰어내렸는데 물이 짜다며 기겁했다.


  “으악, 물이 너무 짜다. 안 되겠다.”

  “그럼 바닷물이 달겠수? 형도 참.”


후배 세현이는 ‘한 자리에 떠있는 수영법’을 모른다며 끝내 갑판 위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배의 주방장이 큰 종을 치며 점심시간을 알렸다. 점심은 커다란 닭다리와 감자였는데, 모처럼 아침부터 운동을 한 덕분인지 무척 맛이 있었다. 오후에는 파도에 배가 제법 넘실거렸는지만 배멀미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아들도 칭얼대지 않고 즐겁게 선상에서 놀았다.


3월 31일, 금요일


우리 중 누구도 이 정도면 열심히 놀았다는 데 이의가 없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갈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와서 못 해본 것이 있다면 꼼짝 않고 늘어져 쉬는 것이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늦게까지 잠을 잤고, 깬 다음에도 각자 방에서 뒹굴며 집단적 게으름에 심취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우리는 해변으로 마지막 산책을 나갔다. 서쪽의 수평선 아래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사진만 몇 장 더 찍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바다와 친해진 꼬맹이는 기어이 또 파도에 덤벼들어 옷을 적셨다.


4월 1일, 토요일


비행기가 늦은 오후에 출발했기 때문에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숙소의 수영장에서 두어 시간 더 놀았다. 라스팔마스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영국의 루튼Luton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케임브리지 집 앞에 도착하고 보니 집 열쇠가 없었다. 이런 만우절스러운 일이 있나. 아마 카나리아 제도에 흘리고 온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연호 선배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지금도 그란 카나리아 계곡 어딘가에는 내가 남기고 온 집 열쇠 꾸러미가 짤랑짤랑 소리를 내면서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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