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Marathon Man

posted Jan 10,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Method Act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method’란, 보통 스타니슬랍스키(Stanislavski)식 연기방법론을 말합니다. 50년대에 미국 Actors Studio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연기교수 리 스트라스버그가 잘 요약한 대로, 그것은 "가장 효과적인 연기는 연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연기자 자신이 등장인물이 되어 반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연기론입니다. ‘Act’하지 않고 ‘React’한다는 얘기죠.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감독이던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기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고, 그 중 대표적인 'An Actor Prepares'가 1936년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 소개되었습니다. 그의 제자인 볼리슬로스키는 뉴욕에 연기학교를 열어 자기 스승의 연기론을 미국에 전파했고, 이런 방법론은 3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연극영화계에 점차 뿌리를 내려, 1947년 엘리아 카잔 등이 설립한 Actors Studio를 통해서 헐리우드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이릅니다.


   스타니슬랍스키식 '방법론'은 연기자들에게 가식적인 연기를 절대로 하지 말 것과, 배우 자신의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배역에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어 완벽하게 극중 인물로 변신할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극중 인물로서 말하고 움직일 것을 요구합니다. Actors Studio는 말론 브란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제임스 딘 등 수많은 배우들을 이런 연기방법론으로 훈련시켜서 배출했고, 현역 배우들 중에는 더스틴 호프먼과 메릴 스트립 등이 이 '방법론'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스타니슬랍스키 식으로 극중인물의 성품과 몸가짐에 깊이 몰입하는 것을 의미하게끔 되었습니다. 연기력보다는 캐스팅이 훨씬 더 중요하고, 뭐가 좋은 연기냐는 결국 관객의 취향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보니, 저로서는 method acting의 남용에는 문제가 좀 있다는 생각입니다.


   method acting의 달인들조차도 스타덤에 올라 오랜 기간 노출되다 보면 관객들이 그들의 연기의 폭에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스크린에 등장하는 말론 브란도나 더스틴 호프먼은 극중 인물보다도 크게 보입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인생보다 커(They look larger than life) 보이는 거죠. 그렇게 되면 배역보다 배우가, 배우보다 연기가 먼저 보입니다. 한편, 자신의 자아를 철저히 감추고 탈색하는 데 성공적인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는, 뭐랄까, 배역만 있고 연기자는 없어지는 '묽은' 배우가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어중이떠중이가 다 'method acting'을 추구하다 보니, 어떤 배우가 A를 연기할 때와 B를 연기할 때 뭐가 다른지 잘 알 수 없는 지경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기를 지나치게 연기자의 전유물로 만들어서, 배우가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 관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져 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헐리우드의 배우들은 대체로 그냥 '자기 자신들'입니다. 잭 니콜슨, 멜라니 그리피스, 톰 크루즈, 드미 무어, 제임스 우즈, 우피 골드버그 등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목과 대본과 감독과 배역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그들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배우가 자기 경험 속에서 극중 인물과의 동질성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극중 인물이 되는 것과, 그냥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사이의 차이는, 애당초 스타니슬랍스키가 생각했던 것만큼 큰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셰익스피어的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正劇 훈련을 쌓아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영국배우들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들의 연기는 대체로 '성실하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기예로서, 또는 직업으로서 연기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당초 스타니슬랍스키의 취지는 극중 인물을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연기하자는 것이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요컨대 악당들인들 인간적인 면이 없겠느냐는 것이겠죠. 그러나, 이렇게 全人을 연기해 내려는 경향이 대세인 헐리우드에 극적인 강세(accent)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잘 훈련된 영국배우를 데려다 놓으면 돋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국 배우가 맡은 악역은, 사악함을 부각하기에 주저하지 않고, 그래서 오히려 더 입체감이 나는 경우가 많죠. 영국 억양으로 말하는 악당들이 영화 속에 그토록 자주 등장할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영국 배우들은 영화가 집단적 창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잘 훈련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점은 'method'가 배우의 개성을 중시하는 점과도 대비가 됩니다. 스타니슬랍스키 방식은 개인기에 치중해서 패스와 조직력에 약하던 과거의 남미 축구처럼, 연기자들간의 '앙상블'을 부차적으로 만드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Sense and Sensibility나 Gosford Park, Velvet Goldmine처럼, 일급 영국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서 만든 미국 영화들은, 마치 조직력에 승부를 거는 축구처럼, 훌륭한 팀웍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과 'method의 대가' 더스틴 호프먼이 함께 출연한 Marathon Man(1976)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미국정부의 비밀 조직원들이 하나씩 살해당합니다. 그 조직원 하나가 전직 나치 군의관(로렌스 올리비에)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피살자의 동생(더스틴 호프먼)이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 독일인의 별명은 ‘아우슈비츠의 백색 천사!’ (동대문 곰발바닥이나 용두산 은갈치 등과는 비교가 안되는 묵직한 별명 아니겠습니까?) 나치 전범인 그는 다이아몬드를 대량 밀반출하려고 합니다. 조깅을 좋아하는 주인공 청년은 그에게서 뭔가를 캐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나치 전범으로부터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야 합니다. 자신의 달리기 실력과 꾀와 운에 의지해서.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더스틴 호프먼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시종 잠을 안자고 뛰어 다니면서 체력을 소모했답니다. 영화의 끝부분에 주인공의 지친 몰골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보이던 것은 십중팔구 더스틴 호프먼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더스틴 호프먼에 견주더라도 로렌스 올리비에의 연기는 오싹할 정도로 완성된 경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촬영 당시 배역 몰입을 위해 자신을 혹사하는 호프먼에게 로렌스 경이 건넸다는 말은 Saturday Night Live 같은 코메디 프로그램에 종종 패러디되기도 했을 만큼 유명합니다. "이보게, 연기를  하는 게 어떤가? 그게 훨씬 더 쉬운데.(Why not try acting? It's much easier.)"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더스틴 호프먼을 붙잡아 고문하면서 앞니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의 통증은 다른 어떤 영화의 고문 장면보다 객석에 실감나게 전해집니다. 인두에 지져지거나, 채찍을 맞아본 사람은 흔치 않지만, 치과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통증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압니다. 아, 입안에 침이 고이면서 몸에 소름이 일던 그 장면! 이빨에 구멍을 뚫으면서 높낮이가 달라지던, 드릴의 끔찍한 진동음!


   지난 여름 치통이 있어서 치과에 갔습니다. 어금니에 금이 갔다고 하더군요. (영구적으로 쓰도록 디자인된 것들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가 된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고마운 배려로, 치과 문 닫을 시간이 지난 고즈넉한 저녁에 의자에 누워 불빛을 마주 보며 여러 차례 몸서리를 참다가, 저는 경망스럽게도 물어보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혹시 Marathon Man 보셨습니까?" 저보다 열 살은 젊어보이던 그 치과의사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뇨, 못봤는데요. 그런데 마치 본 것 같습니다. 오시는 환자분들마다 하도 그 영화 얘기를 하셔서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0 괴물을 보고 2007.02.26 1090 13
49 스타워즈 2007.01.21 1071 13
48 그냥 편지 2006.12.26 1058 13
47 Unforgiven file 2006.12.22 952 13
46 두 벗들의 관심에 감사하며, 2006.12.07 1056 13
45 Re: 예술 2006.09.19 891 13
44 Eureka 2006.11.01 1043 13
43 영국 맥주광고 file 2007.02.22 3575 13
42 Mary Poppins file 2008.05.13 1106 12
41 Mais oui! (오, 예!) 2008.02.25 1198 12
40 답장 2007.03.02 1019 12
39 음악 2007.03.11 1122 12
38 극장 2007.03.11 973 12
37 반항아 2007.02.28 1188 12
» Marathon Man file 2007.01.10 1071 12
35 Rhapsody file 2006.11.26 1046 12
34 우리 영화에 관한 짧은 생각 2006.11.23 1038 12
33 temp 2006.05.19 13587 12
32 Love Story file 2009.07.06 1140 11
31 Iris(2001) file 2009.01.27 1042 11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