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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apsody

posted Nov 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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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예쁜 여자들을 여간해서 쉽게 못 믿습니다. 선입견이라기보다는 경험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예쁜 여자를 싫어하냐고 물으신다면, 웬걸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끌리는 것과 신뢰하는 것이 좀 다른 일일 뿐이지요.


    남자들은, 아마도 유전자적인 이유에서, 예쁜 여자들에게 너그럽습니다. 길에서 똑같은 전단지를 두 여자가 나눠주고 있다면, 남자들은 열이면 열, 더 유머가 풍부하거나 책을 더 많이 읽은 여자 쪽으로 가서 전단지를 받아들지는 않는 것이죠.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예쁜 여자들은 성장하면서 남자들의 너그러운 대접을 활용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예쁘다는 것, 그리고 예쁜 만큼은 덜 성실하거나 덜 정직하거나 고집스럽거나 비합리적이어도 양해가 된다는 것. 거꾸로, 남들만큼 성실하거나 정직하거나 겸손하거나 합리적으로 굴면 남들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따라서 받아야 한다는) 것.


    아마이(甘い)라는 일본말이 있습니다. 달다는 뜻인데, 일본사람들은 이 말을 여러 뜻으로 씁니다. ‘사태를 너무 낙관한다’, ‘세상을 만만하게 본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아마이를 쓰지요. “아마에”라는 명사는 “응석, 어리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어문화적 통찰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스위트’하게 생기거나 ‘스위트’하게 굴 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만만하게 대하는 응석을 부리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겁니다!


    자기가 예쁜 줄 모르는 예쁜 여자를 저는 드라마나 영화 밖에서는 만나본 일이 아직 없습니다. 자기 미모의 크레딧을 비교적 아껴 쓰는 미인조차도 “바쁠 때, 남자에게는 한번 빵긋 웃으면서 귀엽게 대꾸해주는 걸로 귀찮고 성가신 열 마디 설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법칙 정도는 잘 알고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무심결에 하는 행동이 바로 그 “예쁜짓”에 해당한다는 점을 모르면서 하는 예쁜 여자들은 꽤 자주 만나보았습니다. 세상이란 공평해서, 모든 장점은 그 사람의 단점이고, 모든 이득은 딱 고만큼의 댓가를 그림자로 달고 다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오해가 없도록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저는 그게 싫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자 스스로 그 점을 의식하고 자인하는 것은 중요해 보입니다. 미인들이 모쪼록 자기가 예쁘다고 인정할 만큼 정직했으면, 진심이 필요한 순간에는 비장의 예쁜짓을 접고 상대를 대할 수 있을 만큼 성실했으면, ‘쉬크(chic)’하게 톡톡 튀는 말로 쉽사리 남에게 상처를 주고 쉽게 용서받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을 만큼만 겸손했으면 하고 바랄 따름이죠.


    스스로 예쁜 덕을 보는 것은 흉측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두뇌의 덕을 보듯이 말이지요. 오히려, ‘예쁨’에 관해 얘기하면 마치 지하철 속의 치한을 쳐다보듯 화내고, 실제로도 미모의 우위를 의도적으로 상쇄하는 거친 행동을 일삼는 페미니스트들은, 뭐랄까, 마치 자기 집 앞마당에서 일부러 노숙하는 부자처럼 안쓰럽습니다. 그런 행동에 담긴 고심이 납득이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 친하게 지낼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뜻일 뿐입니다만.


    잘생긴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최근까지도 인류사회가 남성중심의 권력구조를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정으로 말미암아 거기에는 양성간 어느 정도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대략 지난 3천만년동안 인류의 무리를 이끄는 권력은 거의 예외 없이 남자들이 독점해 왔고, 적어도 아직까지의 인류의 진화단계에서, 잘생긴 남자들이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이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의 크기는, 잘생긴 여자들의 그것과 맞먹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요즘 들어 꽃미남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현상은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The Great Disruption”이라고 부른 현대사회의 새로운 추세,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이 강해지는 현상의 그림자일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그런지, 예쁜 여자에게서 언뜻언뜻 비치는 자신 있는 모습의 질감은 종종, 돈 많은 남자의 그것과 닮아 보입니다. 잘생긴 남자가 느끼는 자랑의 크기나 감촉은, 억지로 비유하자면, 운동을 잘 하는 여자가 느낄 법한 자신감에나 비할 수 있는 것이 혹시 아닐런지요.


    예쁜 여자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줄 교육적 동기에서 제가 두 아들들에게 보여준 영화가 Rhapsody입니다. 두 녀석 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아마도 저는 절반만 성공을 했던 모양입니다. 두 녀석이 두런두런 의논하더니만 둘 다 Rhapsody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Xanadu에 나오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더 예쁘다는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녀석들, 아이반호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라는 오기가 잠시 들었다가, 아 참, 교육의 목적이 리즈 테일러라는 배우가 아니라는 데로 생각이 돌아가더군요.) 하기사, 예쁘고 도도한 여자가 드러내는 무언가보다 예쁘고 친절한 여자가 감추고 있는 무언가가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것까지 다 아빠로부터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헨리 리처드슨의 동명소설을 1954년 영화화한 Rhapsody의 주인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놓쳐본 적이 없는 부잣집 딸 루이즈(룰루)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녀는, 아직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재능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 폴을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폴을 쫒아 쮜리히의 음악원에 입학합니다. 문제는, 폴은 룰루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사랑 때문에 자신의 연습에 방해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는 완벽주의자라는 점입니다. 이런 그의 야심은 혹독한 수업과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는 쮜리히에 오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요.


    ‘바이올린 따위’에게 지기 싫은 룰루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왜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지 못하는지 야속하게 생각하는 폴의 사이는 자꾸 삐걱대며 멀어져 갑니다. 이 대목에서 같은 음악원의 피아니스트 제임스가 등장합니다. 룰루에게 첫눈에 반한 제임스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는 남자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폴과 심하게 다툰 그녀는 자살미수와, 조금의 심적 갈등을 거쳐, 조금은 자기파괴적으로 제임스를 연인으로 선택하죠.


    부부가 된 룰루와 제임스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포기한 그에게는 아쉬움이 남고, 아직도 룰루는 이제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어 각광을 받는 폴이 약 올라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폴과 룰루의 밀회장면을 목격한 제임스가 “이제는 떠나주겠다”며 집을 나갔을 때, 룰루의 아버지는 그녀를 설득합니다. 제임스를 저렇게 버리는 것은 신사적이지 않고, 혹시 또 아느냐고, 제임스를 재기시키면 폴도 너를 다시 보게 될른지. 룰루는 입술을 깨물고 기차역으로 제임스를 찾아가서 그를 붙듭니다. 다시 쮜리히로 가자며.


    거의 알콜중독 폐인이 되어 살던 제임스가 독주가로 거듭나는 동안, 룰루의 눈물겨운 내조가 계속됩니다. 앙갚음이라는 심산으로 시작했음이 분명한 그녀의 ‘피아니스트 만들기’는, 그러나 그녀가 연주자의 아내 역할을 충실히 연습하는 동안 예전에 폴이 그토록 바라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갑니다. 마침내 연주회날. 자신의 곡을 아내에게 헌사한 제임스는 이제 그녀가 자신을 떠나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연주회에는 폴도 참석한 상태.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는 떠나가지 않았고, 돌아온 그녀를 보고 감격해서 무너져 내리는 제임스의 품에 그녀가 안기면서 엔드크레딧이 올라갑니다.


    남자분들, 예쁜 여자를 만나거든 일단 조심하십시오. 자기가 하는 짓이 “예쁜 여자로서의 아마에(응석)”인지 모르면서 그런 짓을 하는 여자는 거의 예외 없이 남자를 망가뜨리더군요. 그걸 알면서 하는 여자는 스위트(아마이)하지만 말입니다.


뱀의 다리.


1. 저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어릴 때 TV 명화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입니다만, 아, 가슴에 높은 파도 솟구쳐 세우던 그 선율. 정경화가 연주한 이 곡을 지금도 저는 제일 좋아합니다.


2. 여자 때문에 거의 폐인이 되었던 피아니스트 제임스는, 바로 그 여자가 “예쁜” 얼굴로 부추켜주자 다시 오랜만에 피아노 연습을 시작합니다. 손이 굳어 메트로놈을 느리게 틀어놓고 바이엘 치듯 딩동거리는 장면으로부터 여러 번 오버랩되면서 점점 연주가 속도와 기교를 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설명은 없어도, 그가 여러 날 동안 피아노 의자에 접착된 채 지내고 있다는 느낌을, 이 장면은 전해줍니다.) 이 장면만큼은 기억에 거머리처럼 착 달라붙어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나도 연습만 하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조금은 효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칠 때만이 아니라, 자신 없는 숙제가 길을 막아설 때면 언제나.


3. 쮜리히 음악원에 입교한 날, 폴과 룰루는 근처 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습니다. 이제 클래식 음악이 한 물 갔다고 얘기하는 친구에게 폴은 내기하겠느냐며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외칩니다. “Is there a fiddle in the house?” 이 식당의 손님들은 전부다 음악연주자들. 남의 악기를 받아들고 룰루를 향해 “For you”라고 속삭이며 멋진 선율을 연주하던 폴의 주변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더니, 식당 손님들이 하나 둘, 전부다 자기 악기를 꺼내 이 협주곡에 가담합니다. 점점 격정적으로 되어가는 선율에 실려 폴과 나머지 손님들은 전부 일어나서 하나가 되고, 얼쑤? 정작 룰루는 쮜리히 도착 첫날부터 자기가 왕따가 될 가능성을 느끼는, 복선 담긴 장면 되시겠습니다. 이 장면은 멋집니다. 일전에 저의 어느 친구는 예술에서 직업적 기술은 관념을 앞선다는 생각을 이야기 하더군요. 이 생각에는 저도 완전히 동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밥벌이의 강요에 찌들지 않고서도 뭔가를 애호한다는’ 우월한 자부심을 가지고서도, 감히 프로 앞에서는 주름을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데 모여 치열하게 경쟁/협력하며 (그렇습니다. 진정한 프로들에게 경쟁과 협력은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매달리는 프로들의 냄새를, 이 장면은 짧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주는 기시감(Deja vu)을 예전에 한 액션영화를 보면서도 느꼈습니다. 척노리스가 주연한 1985년 영화 Code of Silence의 한 장면. 강도 둘이 어느 술집을 털러 들어가서 총을 빼들고 손들어!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술집을 가득 매운 손님들은 다 사복경찰들이어서, 아무도 놀라지 않고 전원이 가지각색의 총을 뽑아들고, 재수 더럽게 없는 두 강도는 순식간에 총구의 숲에 둘러싸입니다. 빠르지만 절도있는 동작으로 강도들에게 일제히 ‘반응’하던 그 사내들의 익숙한 자세와 당황하지 않는 표정들의 섹시함!


4.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주자 역할을 맡게 되는 우리 배우들은 필히 이 영화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역을 맡았던 이태리 미남배우 비토리오 가스만과 피아니스트 역의 존 에릭슨, 영화 Bird의 포레스트 휘타커, Young man with a horn의 커크 더글러스 등을 좀 눈여겨 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멋진 ‘흉내’를 낼 수는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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