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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eka

posted Nov 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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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보로부두르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불교미술을 공부하고 싶다던 후배를 떠올렸습니다. 석가의 일생과 설법의 내용들을 형상화한 수많은 부조들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깨달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미술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구나...

    앞서 ‘길고 지루하게’ 썼듯이, 저한테 있어서 미술은 현실을 “잘” 베끼는 것입니다. 거칠게 얘기해서 그렇습니다. (하기사, 더 섬세하게 쓴대도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한테는 그러거나 말거나, 글자 대신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들이 이 곳 보로부두르 사원 유적지에서 2천년의 세월을 격하여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상을 단순화하고 과장해서 아이디어를 실어보내는, 카툰으로서의 미술.

    E.H. 곰브리치가 자신의 저서 “예술과 환영” 앞부분에 삽입했던 Alain의 아래 만화 “Egyption Life Class”가 풍자하고 있는 내용은, “사유 앞에서 전모를 드러내는 것은 예술이라 할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언명보다 제게는 더 큰 도전입니다. 곰브리치에 따르면,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관습적 기법을 다 버리고 보는 대로만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므로.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햇살을 그려내려고 애쓴 인상파 화가들과 애초부터 실체가 아닌 관념을 그리려고 시도한 그림들(고대 벽화건 울트라 초현대 추상화건)과의 차이를 무시해도 좋은 걸까요? 사유 앞에서 모습을 감춘다는 것 역시 負의 의미의 관념이 아닌가요?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저로선 그 둘을 어물쩍 같이 대접할 수는 없다는 쪽입니다. 고집쟁이라고 욕먹는데도 할 수 없습니다. 반복을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저한테 있어서 좋은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베끼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입니다. 그게 옳다거나 남에게도 그런 잣대를 권유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혼자 그렇게 결정하는, 아마추어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이야기일 따름이지요. 망망대해를 가려면 어떤 돛대든 필요하기 때문에.

             

 (Alain의 만화 “Egyptian Life Class” 속에서, 한 무리의 미술학도들이 꼭 이집트 고대벽화에 나오는 것과 흡사하게 생긴 “뻣뻣하고, 평면적이고, 옆얼굴의 기다란 눈 한쪽만 보이는” 누드모델을 열심히 데셍하고 있다. 이 풍자만화를 통해, 곰브리치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회화는 현실을 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관념을 형상화하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제가 현대 추상미술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그것을 카툰으로 대접하는 길 뿐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컨셉츄얼리즘이라는 것은 결국, 글자가 되고 싶은 그림들, 스스로 글자보다 아이디어를 더 잘 전달한다고 믿는 그림들에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겠는지요? 검은 안산암 돌판에 새겨진 불교 우화들처럼. 또는, 저 혼자 간혹 끄적여 놓고 보니 애착이 가는 콩돌이 시리즈 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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