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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We Were (1973)

posted Jan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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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지우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The Way We Were>는 <Out of Africa>(1985)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의 1973년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 과연 얼마만큼 폴락 감독의 작품이냐를 따지면 좀 개운치 못한 부분도 있다. 원래 이 영화의 뼈대는 아더 로렌츠(Arthur Laurents)의 창작대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로렌츠는 코넬(Cornell) 대학 재학시절 자신이 겪었던 실화에 바탕을 두고 각본을 완성한 다음 감독을 물색했다. 그런데 대본을 받아 든 폴락은 로렌츠와 연락을 끊고 대본에 많은 수정을 가했다. 당연히 로렌츠는 격분했고,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혹평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영화판에서 흔한 일화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만큼 특색이 있으면서도 정작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과 음악상밖에 건지지 못했다는 점과, 개봉 당시 전문가들의 평이 생각보다 야박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폴락 감독 자신이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고 시인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점 등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좀 더 커진다. 감독과 작가가 잘 협조해서 만들었다면 더 나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지금도 <The Way We Were>는 영화보다 주제가가 더 유명한 것이 사실이니까.

영화는 1930년대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한다. 유태인이고 자칭 막스주의자인 여학생 케이티(Katie,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Barbra Streisand 분)는 매사에 의견도 분명하고, 반전운동 같은 정치적 활동에도 열심이다. 미국식 운동권 여학생인 셈이다. 척 봐도 백인 주류사회의 대표선수처럼 생긴 허블(Hubbell, 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분)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는 그녀의 열정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끼고, 그녀는 그의 글솜씨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둘은 짧은 데이트를 한다. 그들이 다시 만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이다. 해군 장교복을 입은 로버트 레드포드는, 짐작하다시피, 학창시절보다 멋져 보인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한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녀로서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속물스러운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싫고, 그는 아무나 붙들고 자꾸 다투곤 하는 그녀의 올곧은 성정이 부담스럽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잘 해 보려고 한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각본작가로 입문하고, 그녀는 살림에 전념해 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매카시즘의 파도에 휩싸이자 케이티는 참지 못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허블의 일자리는 위태로워진다. 결국, 한심한 남자와 부담스러운 여자는 헤어지기로 한다. 여러 해가 흐른다. 뉴욕의 어느 호텔 앞에서, 케이티는 시위전단을 배포하고 있다. 반전이었는지 반핵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반전반핵 같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금연운동이라도 하고 있었을 사람처럼 보인다. 등 뒤에서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절대로 포기는 안 하는군.” 그녀가 돌아보니 바바리 깃을 세운 허블이 서 있다. 둘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The Way We Were>의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이 마지막 장면뿐인 경우가 많다. 서로의 매력과 장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두 사람이 아쉬운 표정으로 포옹하고 애써 미소 지으며 아픈 마음을 감추던 명장면. 이 영화는 이것만으로도 ‘추억의 명화’ 반열에 오를 자격을 얻었다. 레드포드와 스트라이샌드가 잘 어울리는 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도, 배역에도. 그들의 연기가 빼어났던 덕분도 아니다. 다만 사랑에 실패한 남녀가 아름다웠던 추억과 회한을 짧은 순간 공유하는 이 장면의 설정이 관객의 가슴속 통점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우리말 번역이 불가능한 <The Way We Were>라는 제목이 이런 아픔을 잘 담고 있다.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제목과 라스트씬을 위해 존재하는 군더더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쩐지 <The Way We Were>를 떠올리게 만드는 다른 영화도 있다. <Waking the Dead>(2000)의 두 주인공이 그러하다. 필딩(Fielding, 빌리 크러덥 Billy Crudup 분)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해안경비대 장교이고, 사라(Sarah, 제니퍼 코넬리 Jennifer Connelly 분)는 목숨을 걸고 소외된 사람들을 옹호하는 운동가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제니퍼 코넬리는 ‘예쁜 소녀’ 역할을 졸업하고 진지한 배우로 변신한다.) 케이티와 허블처럼, 필딩과 사라 역시 서로를 사무치게 사랑하면서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 그는 정치가가 되어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고 싶어하고, 그녀는 직업정치인이 되는 것이 썩어빠진 체제의 하찮은 부속품이 되는 짓이라고 믿는다. 정치 얘기를 나누지 않는 한, 필딩과 사라는 천생연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서 정치를 증발시켜 버릴 수는 없다. 이 영화가 <The Way We Were>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배우가 자기 자신이 아닌 배역을 잘 연기해 낸다는 점, 그래서 둘의 사랑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점, 여자가 죽고 남자는 그 충격으로 자기 정신이 온전한지 의심하게 되는 결말이라는 점 정도다.

이 두 영화는 체제 순응적인 유능한 남성과 의식 있는 운동권 여성이 사랑에 빠졌다가 고통을 받는다는 외견상의 설정 말고도 중요한 공통점을 지녔다. 그것은 네 사람 다 자기가 감당하지 못한 사랑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케이티와 허블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나간 추억으로 치부하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은 <The Way We Were>의 관객들에게 명백해 보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유명한 거다. 자기가 필딩의 배필이 될 수 없음을 잘 알았던 사라와, 사라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환영을 거리에서 목격하는 필딩에게도 흐르는 시간이 위안이 될 수는 없었으리라.

유능해 보이지만, 시간은 실상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치유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위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건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허술한 기억력이다. 그건 섭리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자기 의지로 잊으면서 불가항력이라고 변명하고 싶을 때, 우리는 시간의 능력을 칭송한다. 하긴 기억하기 싫은 일을 선택적으로 잊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다. 좋겠다.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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