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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Miss Sunshine

posted Jul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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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서로 비슷한 영화들이 있죠. 영화가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비슷하게 되는 데는 몇 가지 사연들이 있습니다.


1. 오마주와 패러디


    ‘경의’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오마주(hommage)’는 감독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선배의 작품을 인용함으로써 존경을 표하는 것을 뜻합니다. 드팔마 감독이 Dressed to Kill에 히치코크의 Psycho에서 오려낸 듯한 샤워 장면을 넣은 것이라든지, The Untouchables에서 에이젠스타인의 Battleship Potemkim의 오뎃사 광장 장면을 흉내 낸 것이 오마주의 사례입니다. 타란티노가 Reservoir Dogs에서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 장면을 ‘오마주’ 삼은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패러디(parody)는 다른 작품들을 비꼬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Back to the Future에서 마이클 제이 폭스가 Taxi Driver의 명장면 “Are you talking to me?”를 흉내 내는 대목은 오마주와 패러디의 경계선쯤에 해당할 것입니다. 멜 브룩스가 Blazing Saddles나 Spaceballs를 만들 무렵만 해도 패러디는 격조 있는 웃음을 제공했습니다. 80년대 후반 들어 Airplane!으로 재미를 본 데이빗 주커가 Naked Gun 시리즈를 양산하면서부터, 패러디 영화의 질과 수준은 급전직하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들어 Scary Movie나 Date Movie, 또는 그것을 흉내 낸 국산 영화들은 끝까지 봐주기가 어려운 지경이지요.


    오마주나 패러디를 담은 영화들은 원본과 흡사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도 저도 아닌 표절이 되고 마니까요.


2. 장르영화


    비슷한 영화들의 두 번째 사연은 장르물이라는 특성에 기인합니다. 캠핑 간 젊은이들이 정체 모를 살인마에게 살해당하는 슬러시 무비는 제목만 다르지 죄다 똑같이 생겼습니다. 괴수 영화들은 하나같이 그 나름의 규칙을 따르고 있고, 로드무비들은 성장과 자아발견이라는 동일한 코드를 담고 있으며, 두 형사들이 짝을 이루곤 하는 버디무비도 다들 서로서로 닮아 있죠.


    장르란 하나의 약속이므로, 서로 다른 장르끼리 비교하는 일은 거의 무의미합니다. 조지 로메로와 조지 루카스의 작품들을 견주어 평하는 것은 비빔밥과 햄버거를 비교하는 일 비슷합니다. 대신, 장르영화들은 관객들의 기대라는 좁은 테두리 속에서 독창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이 장르영화라는 게임의 규칙입니다. 아, 물론 최근에는 “누가누가 장르를 더 잘 파괴하나”라는 색다른 게임도 생겨나기도 했지만요.


    제 친구는 잘 만들어진 장르영화를 보면 “이렇게 생긴 영화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장르영화에 바치는 최대의 찬사입니다. Holiday Inn이라든지 Die Hard 같은 영화들이 그런 찬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장르의 규칙을 허물지 않으면서도 같은 장르의 다른 영화들보다 뛰어난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그 장르가 무엇이건 즐거운 일입니다.


    자고로, 모차르트건 미켈란젤로건 모든 분야의 장인들이 이룬 가장 높은 성취는 그런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몹시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뭔가를 만들어내는 능력 말이죠. 규칙의 틀을 너무 멀리 벗어나면 긴장감이 사라져 버립니다. 길 잃은 현대미술처럼, 로버트 휴즈가 “새로움의 충격(The Shock of the New)”이라고 불렀던 일종의 해방감만을 남긴 채 지루해지고 마는 거죠. 인간이 개성을 열망하면서도 인습의 관행에 그토록 열심히 의지하는 사연도 ‘장르영화’라는 게임의 법칙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입니다.


3. 과잉경쟁적 영화기획


    세 번째 부류는 영화판이 비좁아서 생기는 일입니다. 영화는 집단창작물이다 보니, 기획단계부터 내밀한 제작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시나리오들은 여러 제작사들의 손을 거치고, 아이디어들이 영화관계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이에 누가 누구를 베꼈는지 가려내기도 어렵게 비슷한 소재나 내용의 영화들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곤 하는 겁니다.


    1989년에는 느닷없이 심해 모험영화들이 극장가를 덮쳤습니다. Abyss, DeepStar Six, Leviathan 세 편이 거의 동시에 말입니다. 이 무렵에는, 어른과 아이의 몸이 서로 바뀌는 영화들이 다섯 편이나 돌아다니고 있었죠. Like Father Like Son, Big, 18 Again, Vice Versa, Dream a Little Dream 등. 그나마 “이렇게 생긴 영화들 중에서 가장 나았던” Big과, CG의 새 지평을 연 Abyss를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들은 서로 구별이 잘 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1997년에 개봉했던 화산폭발영화 Dante's Peak와 Volcano도 주인공과 내용이 헛갈리는 쌍둥이 영화고, 갑자기 만화 펭귄들이 스크린을 점령한 Happy Feet(2006), Surf's Up(2007)도 그런 경우입니다. 2006년에 개봉한 마술사 영화 Prestige와 Illusionist 역시 내용은 서로 상당히 다르지만 포스터만 보면 한 영화의 두 포스터같이 생겼습니다.


    1999년의 중국집 영화 <신장개업>과 <북경반점>, 2000년의 소방관 영화 <싸이렌>과 <리베라매>, 2002년 사내들의 육아일기인 <유아독존>과 <키드갱>, 최근 들어 부정(父情)을 소재로 한 <눈부신 날에>, <날아라 허동구>, <아들> 처럼 닮은꼴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되는 우리 영화계도 이런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삼사년간 홍수를 이루었던 조폭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닮은꼴 영화들은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빚어내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비유가 되겠지만, 저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 임신촉진제 처방을 받은 산모들이 종종 출산하는 쌍둥이들이 연상되곤 합니다.


4. 닮지 않은 비슷한 영화


    얼마 전 우리 식구들은 Little Miss Sunshine을 함께 보았습니다. 코카인 중독자인 할아버지와 ‘성공’에 집착하는 아버지, 자살을 기도했던 동성연애자 삼촌, 진학할 때까지 묵언서약을 한 오빠 등 식구들이 주인공 소녀를 어린이 미인대회에 데려다 주려고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블랙 코메디입니다.


    다 보고 나서 큰아들 녀석이 <라디오 스타> 비슷한 영화라고 툭 한마디 던지더군요. 우리는 그보다 불과 며칠 전에 로빈 윌리엄즈가 식구들을 데리고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온갖 사건을 겪으며 가족애를 되찾는 영화인 RV도 보았던 터였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작년에 자동차를 몰고 캠핑장을 전전하며 미대륙을 횡단했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은 로빈 윌리엄즈의 고생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더랬습니다. 그런 마당에, Little Miss Sunshine이 RV 비슷하다고 하지 않고, 굳이 <라디오 스타> 비슷하다고 말하는 녀석이 저는 신기했습니다.


    실은, Little Miss Sunshine과 <라디오 스타>는 성공과 실패의 통념을 뒤집어서 들여다보고 항변하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이 영화들은 매사에 등수를 매기는 삶의 바퀴에 짓눌린 보통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낮음 음성으로 천천히 말하는 것 같은, 이 두 영화의 보행속도(pace)는 참 비슷합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비슷하지 않은 영화들이 내 마음 속에서 남몰래 비슷한 인상으로 맺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닮은꼴 영화들을 하나 둘씩 꼽아보는 일은, 영화보기의 가장 큰 즐거움에 해당합니다. Little Miss Sunshine과 <라디오 스타>를 같은 칸에 꽂아두는 제 아들도 이제 자기만의 영화 서가를 갖게 되는 것처럼 보여서, 저는 혼자 실없이 흐뭇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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