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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was a crooked man

posted Dec 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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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원칙이면서, 경제학에 도사가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감사와 사랑은 주면 줄수록, 하면 할수록 커진다고 하죠. 하지만, 정작 커지는 것은 감사/사랑 베풀기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평판(reputation)과, 관계(relationship)와, 지위(status)와, 선순환에서 오는 보람을 더 누리고 싶은 동기(motivation)입니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경제학에서는 ceteris paribus라고 하죠),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거나 범사에 감사하는 에너지조차도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사람은 사랑과 감사조차도 소모하고 소진하는 겁니다. 재능도 낭비될 수 있고, 신뢰도 바닥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니까요.


    매력(personal charm)은 어떨까요. 사람이 가진 재산 중에 타고난 매력만큼 중요한 자원도 없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의 매력은 무한한 자원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를테면 산유국을 연상시킵니다. 남들이 뼈 빠지게 노력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그저 땅에 파이프 박아서 벌어들이는 나라들 말이죠. 하지만, 경제의 원칙은 여기도 어김없이 작용합니다. 자신의 자산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매력은 생각보다 쉽사리 그 바닥을 드러냅니다.


    중동의 산유국에서 생활하면서 살펴보니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축복이기만 한 것은 아니더군요. 중동 산유국들이 부유하다는 신화는 알고 보면 사막의 신기루 같은 허상입니다. 물론, 이들 국가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유한 개인들이 있긴 하지만, 석유파동이 진정된 80년대 이래 줄곧 걸프연안 국가들의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90년대 후반까지 8개 걸프 연안국의 GDP 총액은 스위스 한 나라의 GDP 규모에 맞먹을 정도에 불과하고, 94년 기준으로 모로코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러는 북아프리카 및 중동국가(이스라엘 포함) 전체의 GDP 총액은 같은 해 프랑스 GDP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90년대말 유가상승 이후 수년간 몇몇 국가들이 흑자재정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런 현상은 오히려 중동 산유국의 재정이 유가라는, 자기 힘으로 좌우할 수 없는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해 왔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국가들의 경제구조는 대체로 70년대 오일쇼크때 완성된 것이어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유가의 등락으로 인해 예산운용의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크고, 석유가스사업을 필두로 하는 공공부문이 과대하며, 비석유 제조업부문이 거의 전무한 불균형적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빈부격차의 심화, 해외인력의 과다 고용, 내국인의 만성적인 실업(자국민 실업자에 대한 복지정책도 재정적자 요인 중 하나입니다), 조제수입의 저조, 정책운영상 투명성의 부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걸프지역 산유국은 1조달러 이상의 해외투자 자본이 있으므로 이를 국가자산에 고려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 상당부분이 왕실 및 개인의 사유재산이므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쉽사리 국외로 도피할 수 있는 불안정한 자산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부존자원은 축복이기 보다는 되려 저주인 셈입니다. 개인의 매력도 낭비되기 쉬운 자원입니다. 내로라 하는 사기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보다 매력적인 집단은 찾기 어려울런지도 모릅니다. 매력 넘치는 선남선녀들 중에는, 스스로에게 그런 자원이 없었다면 아마도 훨씬 더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인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배 아파서 하는 말 같은 티가 너무 나나요? 하하.


   1970년에 만들어진 There was a Crooked Man이라는 서부영화가 있습니다. 커크 더글러스가 천하의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그는 신화의 주인공이나 반란노예의 수장에만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약아 빠진 악당 역할도 잘 소화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어느덧 세월이 흘러, “커크 더글러스 아들이 배우 하겠다고 나섰다며?”라고 묻던 사람들은 이제 “마이클 더글러스의 아버지도 배우였던가요?”라고 묻는 애들에게 점점 밀려나고 있지요. 마이클은 일찌기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를 제작한 탁월한 사업가이면서, 배우로서도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커크 더글러스가 보여준 신화적인 서늘한 느낌을 마이클에게서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There was a Crooked Man의 주인공 피트먼(커크 더글러스)은 몇몇 악당들과 작당하여 크게 한탕을 합니다. 쫓기는 몸이 되자 그는 동료들을 배반하고 혼자 돈을 들고 달아나, 사막의 어느 돌산, 독사들의 땅굴 속에 돈을 묻어둡니다. 마침내 체포된 그는 혹독한 사막의 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여기서 그는 신임 형무소장인 로우프먼(헨리 폰다)과 숙명적으로 만납니다. 피트먼은 자신의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형무소 내에서 죄수들의 우상이 됩니다. 그는 가엾은 형무소장을 골탕 먹이면서 자신에게 헌신적인 여러 죄수들을 모야 탈옥을 모의하죠. 마침내 거사일이 되자 죄수들은 가슴 설레며 준비한 작전을 감행합니다만, 탈옥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대부분의 죄수들은 사살되고, 충실한 동료죄수들의 목숨을 건 도움으로 피트먼은 혼자 탈옥에 성공합니다.


     알고 보면 이 녀석은 애당초부터 소란을 피워놓고는 저 혼자 내뺄 생각이었던 겁니다. 탈출도중 부상을 당해 “이봐 나는 어떡해”라며 매달리는 동료죄수의 가슴을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기던 커크 더글러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악당은 숨겨둔 돈을 찾아 유유히 떠나고, 스타일이 완전히 구겨진 형무소장은 그를 잡으러 길을 나서지요. 그러나 정작 피트먼을 죽이는 것은 형무소장이 아니었습니다. 희희낙낙하며 돈뭉치를 풀던 그는 돈보따리의 작은 구멍을 통해 기어들어갔던 독사 한 마리에 손을 물려, 도망칠 때처럼 혼자서 죽어갑니다. 형무소장이 퉁퉁 부은 그의 시체를 발견해서 말안장 뒤에 묶고 석양을 향해 떠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There was a crooked man에 나온 크루키드(crooked)란 단어는 물건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 주인공처럼 심성이 비뚤어진 것을 일컬을 때도 쓰죠. 이 영화 제목은 영국의 동요(Nursery Rhyme)에서 따온 거랍니다. 비뚤어진 사내가 있었네/그는 비뚤어진 길을 걸었지/그는 비뚤어진 계단 위에서/구부러진 동전을 주웠지/그는 삐딱한 입을 가진/비뚤어진 고양이를 샀네/그리고 그들은 함께 살았지/비뚤어진 작은 집에서. 노래 속의 비뚤어진 사내는 영국 찰스 1세이거나 그와 평화조약을 맺은 스코틀랜드의 장군 알렉산더 레슬리를 가리킨다는 설이 있습니다. 노래 속의 비뚤어진 계단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경계선을 암시한다는군요. 어쨌든, 이 영화는 심성이 못말리게 꼬부라진 사람이 엄청난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일이 가능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매력 만점이면서도 그 자산을 잘 관리하는 선후배나 벗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의 비결은 정직, 성실, 겸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매력을, 기회를 만드는 데 쓰지, 불성실을 용서받는 데 쓰진 않더군요. 언뜻 생각하면 매력을 키우고 관리하는 일은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강호의 고수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매력은 엄청난 자제력과 끊임없는 노력 없이 빛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북해 유전이나 텍사스 유전처럼 매장량이 크면서도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부존자원을 가진 나라들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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