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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Trek (2009)

posted May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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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가서 <Star Trek>을 보고 왔습니다. 아이들도 이 시리즈의 팬이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Star Trek> 프랜차이즈의 11번째 극장영화인 2009년의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영화고, 골수팬들에게도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사려 깊은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액션 시퀀스는 장쾌했고, 내러티브도 알찼습니다. 악당과의 갈등구조가 너무 단순한 감은 있었지만, 스타 트렉의 우주에서 더 비비 꼬이고 복잡한 플롯은 오히려 잘 어울리지 않았을 터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Star Wars>류의 스페이스 오페라들처럼 굉음을 내며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는 비행체들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주는 무중력이고 진공이므로 그에 걸맞는 묘사가 필수적인데, JJ 아브람스 감독은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Space Odyssey>가 연상될 정도로 우아한 우주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기자와 평론가들이 쓴 많은 리뷰를 이미 읽었던 터였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아브람스 감독이 새로운 스타 트렉을 창조함으로써 낡은 전통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올드 팬들로부터는 서운하다는 비난을 들을 것”이라고 예측했더군요. 저는 이런 글을 쓴 사람들은 트레키가 아니었을 걸로 확신합니다. 하긴, 스타 트렉에 대한 리뷰를 쓰자면 예민한 골수팬 그룹인 트레키들의 눈치를 많이 볼 수 밖에 없었을테니, 그들이 만족하기엔 뭔가 모자랐을 거라고 예측하는 편이 안전했을 수는 있겠군요.

저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커크 선장이 - 스타 트렉의 세계에서는 전설처럼 전해 오는 - 그의 사관학교 시절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를 치르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주기에 아깝지 않을만큼 감동했습니다. 커크 역을 맡았던 크리스 파인은 윌리엄 섀트너의 능글맞음을 많이 흉내낸 것 같았는데, 섀트너의 “여유로움”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TV 시리즈 <Heroes>에서 악당 사일러 역할로 존재감을 증명한 재커리 퀸토는 스파크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재연했습니다. 그가 제복의 앞자락을 두 손으로 끌어내리고 왼쪽 눈썹을 올리면서 “intriguing”하다는 대사를 읊을 때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지 않은 트레키는 없었을 겁니다.

골수팬들이 실망할 거라고 평론가들이 지레 짐작한 이유 중 하나는 아브람즈 감독이 “미래에서 온 침입자가 뒤바꿔버린 새로운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렸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스타 트렉의 팬들에게 시간 여행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은 매우 익숙한 주제입니다. Temporal Paradox라고 일컬어지는, 시간 여행으로 인한 모순들은 과학적 정치함에 매우 민감한 트레키들에게 드물게, 그러나 너그럽게 용서받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드라마투르기”에 해당하거든요. 미래로부터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시공연속체(space-time continuum)에 영향을 받는다는 명제는 이미 여러 에피소드에서 실험되고 성공적으로 변주된 바 있습니다. <Deep Space Nine>의 에피소드 중 한 편인 <Trials and Tribble-ations>에서 시스코 함장은 과거로 날아가 커크 선장을 만나고 온 혐의로 “시간 조사부(temporal investigation department)”에서 파견된 두 명의 조사관들로부터 호된 조사를 받기도 하지요. 그들 중 한 명이 “제임스 T 커크라니, 그는 우주연합 함장들중 시간 여행 규율을 자주 어긴 것으로 악명이 높다”고 탄식을 할 정도로, 스타 트렉은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부터 이미 시간 여행 줄거리를 많이 써먹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저의 큰 아들은 이 영화의 줄거리가 <Voyager>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Year of Hell>에서 줄거리를 많이 빌려온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거대한 외계 함선이 나타나서 광선을 쏘아 행성의 존재 자체를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죠. 그 함선의 함장은 자신의 종족이 사고로 말살되기 이전의 상태로 시간을 돌려놓고 싶은 것인데, 어떤 조치를 하면 할수록 시간은 과거로 되돌려지지 않고 더 멀리 달라져 버린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 영화의 비주얼이나 모티브가 이 에피소드와 흡사한 부분이 상당이 있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커크와 스파크, 맥코이와 스코트, 우후라와 줄루, 체호프 등이 처음 만나 엔터프라이즈호의 처녀항해에 나서는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서 팬들에게 더 큰 선물은 없는 셈입니다. 비록 시공이 뒤틀리는 바람에 이야기 전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대로 되지 않았지만, 66년 첫 파일롯 에피소드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첫 선장이었던 크리스토퍼 파이크 함장이 원본과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점이라든지, 레너드 니모이가 스파크로 출연해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해 준 것이라든지, 위노나 라이더가 스파크의 생모 아만다 역할로 카메오 출연을 해 준 점이라든지 하는 등등이 전부 유쾌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압권은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 장면과 영화 끝부분에 울려퍼지는 오리지널 스코어였습니다. (한 가지 옥의 티를 말하자면, 원래 우주연합 사관학교에서 제임스 커크는 속임수를 써서 고바야시 마루 테스트에 성공한 뒤, 그 창의성을 인정받아 상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정학 처분을 받더군요. 하긴 뭐, 역사가 바뀐 대체 우주의 일이니, 뭐.)

결과적으로 칭찬만 잔뜩 적었는데, 스타 트렉의 팬으로서 좀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습니다. 이 드라마가 60년대부터 생 난리를 치면서 이 시리즈를 응원했던 트레키들의 마음을 빼앗은 대목은, ① 대중오락물에서 거의 처음으로 나타난 과학에 대한 진지한 태도, ② 굳센 낙관주의, ③ 미래를 내다보는 진취적인 프론티어 정신 등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열 번째 영화가 만들어지던 무렵에 “스타 트렉 시리즈는 이제 드라마로서의 소재가 고갈된 것이 아니냐”는 탄식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2000년대의 스핀 오프 드라마나 새로운 영화가 자꾸만 프리퀄로 만들어져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현상은 스타 트렉의 본성에 잘 어울리는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향후로는 좀 더 진취적인 외전들이 영화화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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