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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King of Scotland

posted Mar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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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할머니께서는 고등어처럼 빨리 상하는 생선을 ‘성질 급한’ 생선이라고 부르셨었습니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경구를 상기할 필요도 없이, 권력의 성질은 고등어만큼 급합니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마치 장마철 뒤뜰에 방치해둔 생선처럼 되는 것이죠. 그것은 종류와 크기를 불문하고 모든 권력에 내재된 속성입니다. (이젠 아예 코메디언으로 변신하다시피 한 조형기가 예전에 주연했던 ‘완장’이라는 MBC 단편 드라마가 생각나는군요.) 혜성과 같이 나타난 스코틀랜드 출신 케빈 멕도널드 감독의 The Last King of Scotland는 권력의 신속한 숙성과 변질과 부패과정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왜 우화냐 하면, 이 영화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과 관련된 실재 사건들을 가공의 주인공과 섞어서 만든 픽션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앞머리에 ‘실재했던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자백하고는 있지만, 저는 이렇게 역사를 픽션과 섞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올리버 스톤 감독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가공할 바에야 가공의 역사를 다루든지, 가공된 인물을 다루고 싶다면 기록된 역사와 상상력의 경계를 지나치게 흐려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과연 어느 만큼이 ‘지나친’ 정도에 해당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주인공을 실존인물로 착각할 정도라면 지나친 정도에 해당합니다.


    실존했던 이디 아민과 가공의 인물인 니콜라스를 재료로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졌지만, 저로서는 편하지가 않더군요. 실명과 픽션을 섞는 드라마에서부터 마이클 무어 류의 정치적 선전물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니콜라스 개리건이라는 인물은 우간다에서 정치활동을 했었던 봅 아스틀즈라는 영국인을 아주 느슨하게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의 일대기를 찾아서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막상 그와 영화 주인공 개리건 사이의 공통점은 별로 없습니다. 실존인물인 아스틀즈의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더 논란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고, 추하고 비극적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니콜라스 개리건을 실존인물로 착각하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영화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기 때문에, 이점은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The Last King of Scotland의 사실왜곡 혐의를 제가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극적 작위성이 감춰지기보다는 드러나 있고, 무책임한 음모론을 전파하는데 골몰하고 있지 않으며, 주인공 니콜라스가 영웅이 아니라 유혹에 약하고 경솔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니콜라스는 고향에서의 삶에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이 가는 데로 골라잡은 우간다로 그는 무작정 떠납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우간다로 떠나기까지의 시퀀스는 무척 짧은데, 그 얼마 안 되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그가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으며, 뭔가 파괴적인 출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칭찬해줄 만한, 경제적인 영화문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우간다의 시골에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때마침 그곳을 방문한 이디 아민을 보고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됩니다. 우연한 사건을 거쳐 이디 아민은 그를 대통령 주치의로 초청하는데, 니콜라스는 그 색다른 삶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민 대통령은 니콜라스가 영국인들(Englishmen)을 경멸하는 스코트랜드인(Scotsman)이라는 점과, 니콜라스의 직설적인 반골기질을 무척 높이 삽니다. 니콜라스는 이디 아민과 함께 천천히 타락해가며, 권력의 부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에게 조심스레 고자질한 보건장관이 살해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까지. 결국 그는 대통령의 곁을 떠나기로 하지만, 이때는 이미 수많은 우간다인들이 스스로 박수치며 환호했던 권력자에 의해 살해되고 난 다음입니다. 아민 대통령 치하에서 학살당한 백성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략 30만명에서 50만명 사이쯤 될 것이라는 추정 밖에.


    이 영화의 첫머리에서 이디 아민은 집권한 직후 우간다의 시골길과 벌판에서 국민의 친구로 칭송받으며 갈채를 받습니다. 탱크와 장갑차를 보고 놀라며 겁을 먹는 니콜라스에게 현지인은 웃으며 말해줍니다. 괜찮다고. 인민의 친구인 아민장군의 군대라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이미 역사적인 결말을 알기 때문에, 이디 아민이 엄청난 군중의 환호에 둘러싸여 사자후를 토하며 군중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모습은 더더욱 서글픕니다.


    80년대초에 코메디 영화의 우스꽝스런 조역으로 출발해서 꾸준히 자신의 배역을 늘여간 포레스트 휘타커는 이 영화에서 그가 평생 보여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했던 Bird에서 마약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 재즈연주자 찰리파커를 연기했을 때도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 특히, 엄청난 속주(奏)로 유명한 찰리 파커의 연주 모습을 그만큼 그럴듯하게 연기한 그의 노력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로 1988년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낚아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Bird처럼 자기파괴적이고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인물을 연기하기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Bird에서의 휘타커가 보여준 연기는 매우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대목을 예측할 수 있는(predictable)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The Last King of Scotland에서 그가 연기한 이디 아민은 한 박자 늦춰 가는 ‘이상한’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설명될 수 없는 빈 공간 같은 것 말입니다.


    이제 곧 50줄에 접어드는 그가 노인 전문배우가 되기 전에 그토록 힘찬 배역을 맡아서 필생의 연기를 펼칠 기회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런 성취가 제대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로써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네 번째 흑인이 되었습니다. 시드니 포에티어나 덴젤 워싱턴은 정말 흑인다운 배우라기보다는 멋진 남자가 맡을 법한 배역에 “흑인 치고는” 어울리는 배우들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공감하신다면, 포레스트 휘타커는 흑인의 문화를 대변하는 수상자로서는 2005년 제이미 폭스에 이어 두 번째나 마찬가지라는 평가에도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왜 영화의 제목이 하필이면 The Last King of Scotland인지 궁금하신가요? 이디 아민은 권좌에서 물러나기 전에 과대망상 증상을 보였는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칭호를 붙였습니다. “종신 대통령, 육군 원수 알 하지 이디 아민 박사, 빅토리아 무공훈장, 특별무공훈장, 및 무공십자훈장 수여자, 스코트랜드 국왕, 지상의 모든 짐승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의 주인이자, 아프리카 전역, 특히 우간다에서의 대영제국의 정복자 각하(His Excellency President for Life Field Marshal Al Hadji Dr. Idi Amin, VC, DSO, MC, King of Scotland Lord of All the Beasts of the Earth and Fishes of the Sea and Conqueror of the British Empire in Africa in General and Uganda in Particular)”


    “성질 급한” 권력의 사례가 되어줄 독재자들은 많습니다. 대게 권력자의 이름 앞에 붙는 기다란 수식어들은 성급한 생선들이 제풀에 상해가면서 풍기는 악취와도 비슷합니다. 그 수식어의 길이만으로 치자면 이디 아민을 능가할 독재자는 많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디 아민이 최악의 독재자였음을 반드시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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