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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 Linings Playbook (2012)

posted Mar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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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라이닝(silver lining)이라는 것은 해를 가린 구름 가장자리가 얇게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구름의 은빛 테두리는 그 뒤에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실버 라이닝이라는 표현은 머지않아 찾아올 좋은 날을 뜻합니다. 영화 <Silver Linings Playbook>(2012)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두 남녀가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다시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요. 중년의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던 탓인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적지 않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사랑하는 아내가 간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상대 남자를 두들겨 패는 바람에 아내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사내입니다.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정신병원에서 8개월 치료를 받고 귀가하지만 여전히 아내와의 재결합을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자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아내와의 좋은 추억과 나쁜 기억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스티비 원더의 노래 <My Cherie Amour>를 시도 때도 없이 환청으로 듣습니다.

그런 그의 앞에 아내 친구의 동생인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가 나타납니다. 티파니는 경찰이던 남편이 사고로 죽은 직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젊은 여성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성생활이 식어가던 부부 사이를 회복하기 위해 야한 속옷을 사러 외출했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것을 만회하려는 것이었던지, 티파니는 남편이 사망한 후 회사 사무실의 모든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식으로 광기를 분출했습니다.

팻과 티파니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어색해 하다가 정신 치료 약의 종류와 효과를 떠벌이는 장면은 두 사람의 상태가 어떤 지경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짜임새도 좋을 뿐더러 사건이 전개되는 속도도 적당합니다. 주인공과 조연들 모두 호흡이 잘 맞는 연기를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는 뻔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은 두 가지 속임수를 표 나지 않게 잘 발휘한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속임수 첫째.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수다스럽기 마련입니다. 현실 속에서는 아무도 해리나 샐리처럼 수다를 떨지 않지요.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을 신경증 환자들로 설정해서 스크루볼 코미디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수다에 야릇한 사실감을 부여했을 뿐입니다. 주인공들을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설정한 덕분에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떠들썩한 연기는 비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팻은 오히려 건강한 상태의 우디 알렌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 보일 정도입니다.

두 주인공이 진짜 심각하게 미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도록, 이 영화는 주인공 주변에 정신이상자보다 더 이상해 보이는 정상인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사설 도박과 미신에 집착하는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 분), 동생에게 어린애처럼 짓궂게 구는 팻의 형,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숨 막혀 하면서도 그런 심정을 들킬까봐 노심초사 하는 팻의 친구, 사무실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팻의 주치의 등등. 현대인은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삽니다. 팻과 티파니를 괴롭히는 정신적 상처는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영리한 무대장치인 셈이지요. 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정신적 압박. 우리가 근근히 참고 추스리는 이 스트레스를 채 못 견디고 무너져버린 주인공을 어떻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브래들리 쿠퍼는 “세상에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sexiest man alive)”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미남 배우입니다. TV 드라마 <A Team>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잘생긴 얼굴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Face”라는 배역을 맡은 것도 쿠퍼였지요. 제니퍼 로렌스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 영화계를 점령해버린 신예 스타입니다. 본 적도 없던 배우가 <Winter's Bone>(2010)이라는 영화로 201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더니 <X-Men : First Class>에서 수퍼모델 레베카 로민이 맡았던 배역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고 <Hunger Game>의 주인공 자리를 꿰어찼습니다. 그러더니 2013년에는 이 영화의 티파니 역할로 덜커덕 여우주연상을 받아버린 겁니다. 시상식때 22살이었으니까, 21세의 말리 매틀린이 <Children of Lesser God>(1986)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역대 수상자 중 두 번째로 어리다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런 선남선녀가 연기하면, 웬만큼 미친 사람의 배역도 매력이 있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대신, 정말로 사업가와 매춘부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풍기는 사람들이 출연했다면 <Pretty Woman>이 과연 그렇게 로맨틱하게 느껴졌을까요? <Indecent Proposal>에서 남의 젊은 아내와 잠자리를 하고 싶다며 100만불을 내거는 부자 영감 역할을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지 않았더라면 주인공들이 느끼는 심리적 갈등과 도덕적 딜레마에 관객이 동참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Silver Linings Playbook>의 영리한 속임수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관객은 기꺼이 속기 위해, 설득당하고 공감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니까요. 매력 넘치는 두 배우가 나약하고 비루한 역할을 잘 소화해준 덕분에,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저도 가슴 따뜻한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칭찬해줄 부분을 딱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역시 제니퍼 로렌스라는 여배우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메소드 액팅(method acting)을 배운 적도 없다는데 배역 속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걸걸한 목소리와 꾸밈없는 태도로 천연덕스럽게 인터뷰한 내용을 들어보니, 연기 수업 같은 것은 받을 생각도 못해 본 켄터키 시골 출신 처녀이더군요. 그녀의 강점은 “겁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강심장인 것 같습니다. 모처럼 미국 영화계에 괴물 하나가 나타난 겁니다. 화려한 꽃이 너무 일찍 만개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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