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Come September

posted Jan 21,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남자들이 거실에 모여 각국의 음식과 요리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남편(부엌을 향해) : 여보, 내가 좋아하는 그 이태리 것 이름이 뭐지?

        아내 : (심드렁한 목소리로) 지나 롤로브리지다 -

                                                    - 80년대 어느 날, 리더스 다이제트스


    모린 오하라, 레슬리 앤 다운, 셀마 하옉 등 숱한 여배우들이 ‘노트르담의 곱추’의 집시 에스메랄다 역할을 거쳐 갔지만, 지나 롤로브리지다만큼 어울렸던 배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저에게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영화는 Come September였습니다. 에스메랄다나 시바의 여왕 같은 미의 現身으로 등장할 때보다 노처녀로 나오는 그녀를 더 화사하게 기억하는 제가 좀 특이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로버트(록 허드슨)는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입니다. 그는 매년 9월 이태리에 있는 자기 별장으로 가서 오래된 연인 리자(지나 롤로브리지다)를 만나 휴가를 즐깁니다. 그것이 그의 질서이고, 그는 그런 정연한 자기만의 질서를 통해 성공을 거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올해 따라 예년보다 일찍 도착한 별장에는 반갑지 않은 일이 그를 기다립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그의 별장지기는 그가 없는 내내 별장을 호텔로 꾸며 뒷돈을 챙기는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투숙해 있던 미국여학생 샌디(샌드라 디) 일행에게 별장지기는 로버트가 과대망상 증상을 보이는 단골손님이라고 설명합니다. 여학생들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남학생(바비 다린) 일당도 로버트의 신경을 긁습니다. 게다가, 애인 리자는 올해 따라 담판을 지으려 듭니다. 결혼은 안할거냐고.


    로버트는 이런 상황에서 애인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휴가도 되찾고 신사의 품위도 지키려고 애씁니다. 인상적인 점은, 록 허드슨이 로버트의 이런 노력을, 애처로운 꼴이 될 지경으로는 연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점이 Come September의 매력 포인트 되겠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저물어가는 남성이 자신의 남성성을 품위 있게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부질없는 일인지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줍니다. 로버트는 아직 젊고 (아직도 젊다, 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실은 젊지 않습니다), 멋을 부릴 수 있는 체력과 재력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졸지에 가장 노릇을 해야 할 처지에 빠집니다. 그의 별장에 투숙한 10대 소녀들과, 그들을 쫓아다니는 남학생들의 보호자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로버트를 보고 있노라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저절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한테서 어른이 되기를 강요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논어 위정편에는 “나는 열다섯이 되어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이 되어 뜻을 세웠으며, 마흔이 되어서는 현혹되지 않았고, 쉰이 되어서는 천명을 알게 되었고, 예순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졌으며,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더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전엔 이것이 공자님의 광오한 자기 자랑인줄 알았는데, 세월을 겪으며 새김질 해 보니 공자님이 내준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른이 되어서도 장래의 포부를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싹수가 없고, 마흔은 유혹에 약해지는 시기니 흔들리지 말 것이며.... 예순이 되면 아무리 너그럽던 사람이라도 참을성이 고갈되어 싫은 소리 듣기를 싫어하고 짜증이 늘기 마련이니 귀를 순하게 다스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일흔쯤 먹어서나 종심소욕이라도 불유구할 수 있으리라, 라고 새기는 편이 공자님의 뜻에 충실한 것이라고 봅니다.


    불혹이 마흔에 저절로 다다르는 경지일 리 만무합니다. 공자님은 거꾸로, 사십대가 겪는 유혹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경고를 하셨던 것이죠. 돈의 유혹, 출세의 유혹, 떳떳하지 못한 지름길로 들어서고 싶은 유혹, 익숙한 일에 안주하거나 탐닉하고 싶은 유혹.... 사십대를 혹하게 하는 덫은 많습니다. 남자에게 40대란, 사내에서 어른으로 변신을 해야 하는 때인 것입니다.


    마흔줄의 남자들이 겪는 유혹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사내로 남고 싶은 유혹입니다. 앞뒤를 재지 않고 저돌적이고, 즉흥적이며, 자기 행동에 책임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 ‘사내’의 특징이라면, ‘어른’의 특징은 그 반대의 것들입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유혹을 넉넉하게 이겨내는 사나이들의 모습은 가슴에 깊은 발자국을 남깁니다. 모든 고수들이 그러듯이, 쉽지 않은 일을 쉽게 하는 것은, 실은 겉으로 그것이 쉬워 보이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Lonesome Dove에서 거스 대위(로버트 듀발)는 작부의 처지에 빠진 로레나(다이안 래인)를 구해주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녀를 지켜줍니다. 다이안 레인을 보호하는 로버트 듀발의 모습은 Come September에서 샌드라 디의 보호자 노릇을 (조금은 덜 기꺼이) 맡았던 록 허드슨의 모습과도 겹칩니다. 거스는 그녀를 자신의 친구이자 연인인 클라라(안젤리카 휴스턴)의 집에 데려다 주는데, 클라라는 척 보고 대번에 그녀가 거스에게 깊은 연모의 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거스 자신도 모를 리 없건만, 그는 자신을 연모하는 젊은 미녀를 친구에게 맡겨두고, 세월을 삭이는 미소만 남긴채 혼자 길을 떠납니다.


    Come September의 록 허드슨에게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있고, Lonesome Dove의 로버트 듀발에게 안젤리카 휴스턴이 있었다면, 와호장룡의 주윤발에게는 양자경이 있습니다. ‘와호장룡의 샌드라 디’, 즉, 젊고 재능 있고 스크린 밖에서도 더 인기 있는 미녀 히로인 장쯔이(옥교룡)는 주윤발(이모백)에게 발칙한 연모의 정을 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정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모백은 유수련(양자경)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우정 같은 사랑에 충직합니다. 유수련이 결혼도 못해보고 저세상으로 보낸 정혼자는 이모백의 사형이었거든요.


    연정을 실현할 길 없는 옥교룡은, 오히려 이모백에게 대들고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악당 벽안호는 남편(이모백의 사부)을 주살하고 독랄한 邪功을 익힌 외로운 -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 - 아줌마입니다. 자기 제자라고 여기던 옥교룡의 무공이 자신의 전승이 아닌 것을 발견하자, 그녀는 치를 떨며 - 배신을 해본 사람들이 배신에 더 치를 떨지요 - 제자인 옥교룡을 미향으로 중독시킵니다. 이모백은 그녀를 구하려고 자신의 장심을 그녀의 등에 대고 가부좌로 앉아 그녀에게 眞氣를 유입시켜 줍니다. 이런 무방비의 순간, 벽안호의 독공이 그에게 날아듭니다. 옥교룡을 치료하느라 공력을 소진한 그는 평소라면 가볍게 튕겨냈을 독침 하나를 피하지 못하고 횡사합니다.


    ‘보호자인 남성’의 이미지라면 Up Close and Personal의 로버트 레드포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워렌(레드포드)은 풋내기 제시카(미쉘 파이퍼)를 일기예보에 기용하고, 앵커로 육성하고, 성공의 발판이 되어줍니다. 그는 왕년의 인기를 잃고 그녀는 일류 앵커가 되지만, 그는 그녀의 곁에 사내로 남기보다 그녀를 성장시켜 주는 보호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 위험지역으로 취재를 떠나는 쪽을 택하고, 결국 평기자로서 취재중 죽음을 당합니다. 이 영화의 짙은 여운은 그의 선택이 주는 비장감에서 나옵니다. 워렌의 죽음은, 와호장룡에서 장쯔이를 살려주고 목숨을 잃는 주윤발의 모습보다 훨씬 현실적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어딘지 모르게 흡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좌우지간, 미쉘 파이퍼, 양자경, 장쯔이, 안젤리카 휴스턴, 다이언 래인을 다 합친 것보다, 제게는 Come September의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훨씬 더 멋져보입니다. 면사포를 쓴 그녀(리자)와 그(로버트)의 결혼으로 끝나는 Come September는 해피엔딩입니다. ‘해피’하게 어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으로 옛 영화가 다시 보고파져서, 어제 미국 사는 후배에게 DVD를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별로 어른스럽지 못하게스리.


 

 

 

 

 

■ 落穗


1. 록 허드슨이 에이즈에 걸린 후 그의 동성애 행각이 그토록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의 절반은, 아직도 에이즈와 동성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시절에 그의 비밀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가 Come September나 Giant에서 보여준 남성성이 그토록 멋지고 건강하고 설득력 있는 것이었으므로 팬들의 배신감이 곱절의 실망으로 더해졌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 Come September에 출연했을 때는 이미 ‘피서지에서 생긴 일’로 십대들의 우상이었던 샌드라 디는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가수 바비 다린과 촬영중 떠들썩한 염문을 뿌리며 결국 결혼에 골인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없는 십대 커플은 Come September의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봤는데도 이 젊은 커플에 대해 별 매력을 못느꼈던 것은, 제가 샌드라 디에 대한 시대적 열광을 모른 채 영화를 접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 어머니는 이 영화를 ‘록 허드슨과 산드라 디가 나오는’ 영화로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50 2001: A Space Odyssey file 2007.01.24 1178 20
49 컴 셉템버 2007.01.21 1391 20
48 흠... 2007.01.21 1116 17
47 스타워즈 2007.01.21 1071 13
46 Star Wars file 2007.01.21 1174 10
45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file 2007.01.21 1635 18
» Come September file 2007.01.21 1418 55
43 바로 이 장면입니다. file 2007.01.18 1547 25
42 Marathon Man file 2007.01.10 1071 12
41 이 장면 말입니다 file 2006.12.29 1423 21
40 잉그리드 버그만 file 2006.12.27 1596 31
39 그냥 편지 2006.12.26 1058 13
38 언포기븐 2006.12.26 1066 11
37 A Room with a View file 2006.12.25 1077 14
36 외화제목의 우리말 표기에 관해서 2006.12.24 1576 6
35 Unforgiven file 2006.12.22 952 13
34 귀신같은 녀석 2006.12.12 1100 14
33 옳은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이다. 2006.12.12 1100 9
32 There was a crooked man file 2006.12.09 1241 31
31 두 벗들의 관심에 감사하며, 2006.12.07 1056 13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