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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convenient Truth

posted Mar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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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미국 제 45대 부통령 앨 고어에게 위대한 대통령으로서 경륜을 펼 기회를 부여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 대선때 박빙의 승부로 선거제도 자체가 쟁점이 되던 와중에 추한 싸움을 길게 끌지 않고 법원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던 그의 모습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퇴장하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는 게 본인에게는 종내 가슴 저린 사실이겠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미국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는데 결코 작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것은 없습니다. 사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제도에 승복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제도를 훌륭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거죠. 존중 받을만한 제도가 존중 받는다기보다는, 존중을 받는 제도만이 존중 받을만한 제도가 되는 것이랄까요.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An Inconvenient Truth는 정치에서 은퇴한 후 기후온난화 방지의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는 고어의 강연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에 최우수상을 선사한 것은 일종의 ‘주인공 섭외상’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강연 사이사이에 고어의 개인적 술회를 끼워 넣은 이 영화의 완성도는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환경보호라는 주제와, 석패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라는 영화외적인 요소가 지닌 매력을 헐리우드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트로피를 받아 들고 연설하는 앨 고어는 마치 고교 동창회에 돌아온 최고인기 졸업생(Homecoming Queen)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릇 대통령은 부분적인 과제만을 강조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어도 선거에서 이겼다면 지금처럼 신명나게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설파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2000년 미국 대선결과는 어쩌면 인류에게 정력적이고 영향력이 큰 환경운동가 한 명을 선사하려는 역사의 장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까운 박빙의 승부에서 깨끗이 물러났기 때문에 떳떳한 모습으로 갈채를 받으며 강단에 오를 수 있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었었습니다.(I used to be the next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농담을 할 때 별로 구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높은 인지도를 십분 활용해서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강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번 연습한 덕분인지, 그의 영화 속 강연솜씨나 청중에게 접근하는 호소력은 오히려 대선 TV 토론에서보다도 진일보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강연의 주제는 온실가스라는 한정된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문제를 보여주는 데 치중합니다. 그런 종류의 연설에서는, 지적이고, 조금은 잘난 체 하고, 청중을 가르치려 드는 그의 태도는 정치인이었을 때와는 반대로 큰 자산이 됩니다.


    고어의 강연은 설득력 있고, 내용도 잘 정리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대기오염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아카데미 상 따위가 아까울 이유도 없죠. 지구상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미국이므로, 이 영화는 미국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좀 더 친환경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컬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입만 열면 주장하듯이, 미국이 국내 석유가격을 상향조정한다면 그것은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감소에도 도움을 주고, 미국의 대중동정책에도 힘을 실어줄 뿐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자금의 흐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면에서, 고어의 논지보다 프리드먼의 논지가 더 설득력이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비 형태를 바꾸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흔히 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환경파괴의 부담을 후세에 물려주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표현을 합니다만, 어쩌면 환경적 재앙이 우리 당대에 닥칠 것이 확실하더라도, 우리가 무책임한 소비 형태를 바꿀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소비형태란 좁은 의미의 문명이고, 문명은 어느 날 자동차처럼 급제동, 급회전하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전반적 환경문제로 시야를 넓히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체기술의 개발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과 가벼운 정치적 의지만 가지고도 막을 수 있는 환경피해는 많기 때문이죠. 숲과 공기와 물과 생물다양성은, 못사는 나라에서일수록 더 가파르게 훼손되고 함부로 파괴됩니다. 한 가지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자명한 것 같은 온실가스 문제도, 사실은 선택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해야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환경보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지나쳐서는 안 될 선이 있습니다. 그 선은, 사람보다 자연을 더 중시하는 지점에 걸쳐 있습니다. 거칠게 말해, 자연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길은 전 인류가 한 날 한 시에 다 같이 죽어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려는 것은 대체로 인간이 살기 위해서 환경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던가요? 인간보다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환경보호는 목적을 잃어버린 강박관념이 됩니다. 그런 생각은 사실 턱없이 오만한 것이기도 하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지구는 행성으로서의 천문학적 수명을 다 할 테니까요.


    어린이들을 교육하면서 환경보호는 마치 무조건, 무제한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인 것처럼, 또는 기술진보나 경제개발은 환경보호와 대립되는 개념인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경제를 개발하든지 환경을 보호하든지, 또렷한 인류애에 기초할 때에만 인류는 스스로를 제일 잘 보전할 것입니다. 식량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아프리카에 장차 유일한 희망이 될 지도 모르는 유전자 조작 농작물 연구 같은 기술진보를 사악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처럼 인구가 많고 넓은 나라들이 일정한 수준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야 비로소 거기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환경을 보살필 수 있으리라는 점을 부인하고 그들의 모든 경제개발 노력을 ‘반환경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94년 칸느영화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은 Lemming Aid라는 뉴질랜드 영화가 있었습니다. 레밍은 가끔 집단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이상한 습성을 가진 설치류입니다. 몇몇 동물보호가들이 레밍떼의 자살을 막아보겠다고 노르웨이 절벽 끝으로 모입니다. 레밍 보호에 관해 논란을 벌이던 주인공들은 서로를 죽입니다. 물론 레밍들도 죽죠. 사람 목숨보다 레밍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켜낼 수 있을 만큼, 또는 그래야 할 만큼 자연은 한심스런 존재가 아닙니다.


    환경보호론에서 말하는 ‘신중의 원칙’은 환경보호에 관한 이론에 비록 허점이 있지만 만일의 경우에 치러야 할 값이 너무 크므로 일단 훼손을 막는 행동을 하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은 일응 당연하게 들리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을 놓치면 기회가 없으니 당장 계약서에 서명하라는 외판원의 독촉이라든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만약 실현되면 너무 피해가 크니 당장의 독재는 참으라든지 하는 것과 비슷한, 정치적으로 불건전한 논리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저의 아이들이 환경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쓰기를 원합니다만, 그로 인해서 인류의 다른 경제활동의 의미를 섣불리 폄하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기르기는 원치 않습니다. 환경은 개인적 차원에서 성실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개인은 환경을 좀 더 낫게 보호할 수 있는 공동체의 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동물 한 종(種) 전체의 보존도 저와 같은 종(種)인 인간 한 사람의 목숨과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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