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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Kong

posted Jan 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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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미녀와 야수 사이의 스캔들이다 -

미녀와 야수의 오리지널 버젼은 그리스 신화다. 에로스(큐피드)는 사랑의 화살로 남들을 맺어주거나 남의 가슴에 애타는 사랑의 불길을 지피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데, 하루는 자기 화살촉에 스스로 찔리고 만다. 그는 프쉬케라는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프시케는 괴물에게 시집을 갈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숲 속으로 간다. 숲 속의 궁전에서, 에로스는 밤마다 찾아와 한없이 친절한 신랑 역할을 한다. 단 하나의 규칙은 신랑의 얼굴을 절대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시샘에 젖은 언니들이 프쉬케를 부추킨다. 네 신랑은 실은 너를 속여서 결국 잡아먹으려는 괴물일 거라고. 정말로 그가 너를 사랑한다면 왜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느냐고. 언니들의 말에 설득당한 프쉬케는 램프를 켜고 잠든 신랑의 얼굴을 보고 만다. 괴물은커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내가 거기에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에로스는 프쉬케의 불신을 원망하며 이별을 선언한다. 프쉬케는 에로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이승과 저승을 헤매며 시련을 겪는다.

프쉬케는 영어로 말하면 영혼 또는 정신을 의미하는 싸이키(Psyche)다. 그녀의 신화는 묘한 사랑의 역설을 잘 말해준다. 우리가 가슴으로 나누는 정열적인 사랑은 이성이 불을 끈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 이성(싸이키)이 등불을 지피고 사랑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사랑(에로스)는 원망어린 결별을 선언하며 우리 곁을 떠나가 버리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야 할 나이에 우리 신체가 과다한 호르몬을 분비해 우리 정신을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전설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달리 번안되었다. 야수와 벨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설화를 포함한 유럽 지역의 유사한 전래동화들은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두었다. 브로드웨이에서 장기공연되고 있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도 그 번안물에 해당한다. 미녀와 야수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변태적인 번안물로는 역시 <King Kong>을 꼽아야 할 것이다.

전설의 해골섬에서 백수의 제왕 노릇을 하던 킹콩은, 생뚱맞게도, 금발의 미국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바람에 킹콩은 결국 사로잡히고 인간세상으로 붙들려와서 미녀를 납치해서 고층건물을 오르다가 추락사하고 만다. 76년의 킹콩이 제시카 랭을 손에 들고 기어오르던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이제 지구상에서 흔적을 감췄지만, 피터 잭슨이 리메이크한 2005년의 킹콩은 원작에서처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포효한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마치 예쁜 여자를 물색 없이 좋아하면 결말이 비참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짜 괴물이 등장해 미녀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장면은 좀 너무 징그러운 감은 있지만, 킹콩의 러브스토리도 남녀간의 사랑의 어떤 국면에 대한 알레고리인 셈이다. 자기 남자가 점잖고 똑똑해서 좋다는 여자도, 그가 ‘남자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건 좀처럼 참아주지 못하는 법이다. 남자답다는 건 과단성 있는 결단력이나 희생적인 헌신 따위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대게의 경우 그것은 상대를 리드하고 지배하는 능력을 뜻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짐승만도 못한 놈’ 대접을 받느니 차라리 ‘짐승 같은 놈’ 취급을 받는 편을 택하지 않을까? 한편, 사랑하는 여자를 손아귀에 쥐고 최고층 빌딩으로 올라가는 킹콩의 모습은 이성에 대한 남자의 소유욕, 지배욕, 출세욕 따위를 상징하는 광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덮어두자. 사랑의 이러한 내막을 너무 낱낱이 해부한다면 사랑은 매력 없는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니까. 정체를 보아버린 싸이키의 곁을 에로스가 떠나듯,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죽음이 킹콩과 미녀를 갈라놓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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