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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ing Helena (1993)

posted Nov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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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남자의 소유욕이다

<Boxing Helena>는 제니퍼 린치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녀가 누구냐면, <Eraserhead(1977)>, <Blue Velvet(1986)>, <Wild at Heart(1990)> 등등 괴상스런 영화들을 줄줄이 만들어온 데이빗 린치 감독의 딸이다. <Boxing Helena>라는 제목은 여자 권투선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헬레나를 상자에 집어넣거나, 심지어 헬레나를 상자 모양으로 만든다는 섬뜩한 뜻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여자라는 건 이상하지 않다. 페미니스트의 성난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닉 캐버너(줄리언 샌즈)는 독신으로 사는 외과의사다. 그는 헬레나(셰릴린 펜)라는 자유분방한 미인에게 홀딱 반했지만, 애정을 고백할 주변머리도 없다. 어느 날 그녀가 그의 집 근처에서 뺑소니 차에 치인다. 떨어진 과일을 줍듯, 부상당한 헬레나를 아무도 몰래 자기 집에 데리고 온 닉은 그녀를 치료하면서 두 다리 절단수술을 감행한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어딘가 미심쩍다. 그녀가 계속 그를 조롱하고 냉랭하게 대하자 닉은 헬레나의 멀쩡한 두 팔마저 수술로 절단해 버린다. 헬레나는 닉을 무시하고 미워하는데도, 닉은 팔다리가 잘린 헬레나를 지극정성 보살핀다. 그녀도 결국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품어준다. 그녀가 마음을 바꾸는 이유가 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다 깨보니까 다 꿈이더라, 뭐 그런 내용의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전성기의 셰릴린 펜이 보여주는 섹스어필한 매력 정도를 제외하면 볼 것도 별로 없는 영화랄 수 있다. 줄리언 샌즈는 <A Room With A View(1985)>에서는 제법 인상적인 남성미를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에선 어찌나 한심하게 나오는지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사이먼과 가펑클'로 유명한 아트 가펑클이 주인공의 친구 역할로 나오는 대목도 웃음이 난다. 그의 전작 <Bad Timing>처럼, 그는 B급 에로틱 드릴러에 찬조출연하는 묘한 취미라도 있는 걸까.

<Boxing Helena>는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진부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여인의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남자들의 욕망! 당신은 묻고 싶을 지도 모른다. 팔다리를 다 절단해서 무력하고 추해진 여자를 정말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내가 있을까? 그러면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말할 거다. 니들 남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멀쩡한 여자를 사회적 불구로 만들어 들어앉혀 놓고는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계속하지 않느냐고.

남자들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여자도 연인에 대해 소유욕을 드러내긴 마찬가지니까. 원래 사랑이란 것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므로, 과도한 집착을 그냥 소유욕이라고만 표현해버리면 하나마나한 얘기가 되고 만다. 남자의 소유욕에 어떤 특징적인 경향이 있다면, 그게 여자의 집착과는 어떻게 다른지 따져봐야 비로소 의의가 있을 거 아닌가. 남자의 소유욕이 만약 보편적인 특질이라면, 거기엔 생물학적 뿌리가 있을 법 하다.

첫째, 유전자 복제의 게임에서 영원한 패자가 되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여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복제된 개체, 즉 자기 자식의 양육에 필요한 남성배우자의 투자(이걸 male parent investment라고 부른다)를 일부 또는 전부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이것은 자원배분의 문제다. 하지만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 복제 기회 자체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이것은 존재의 문제다. 세상 모든 수컷들의 최악의 악몽은 남의 씨를 제 자식인 줄 알고 키우게 되는 상황이다. 이런 두려움은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을 개연성이 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는 유전자들만 자연선택 과정에서 멸절되지 않고 성공적 복제를 이어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여자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른다든가 시집살이를 하는 식으로 시댁식구들의 감시체계 속에 놓이도록 고안된 제도들은 남성들의 이런 두려움을 해소하는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둘째, 영장류의 수컷들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계서적(hierarchical) 질서에 순응하려는 본성이 강하다. 자기보다 강한 개체에게 순응하고 약한 개체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데 익숙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면 무슨 잇점이 있냐고? 첫 대면에서 서로의 힘을 의례적으로 비교해본 다음 그 우열을 피차 장기적으로 인정하면 불필요하게 사사건건 투쟁함으로써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을 매순간 안고 살 필요가 없어진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도록” 만드는 질서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흉내 내자면 “폴리스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질을 남성들이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여자들은 인위적 위계질서 없이도 서로 잘 협동하고 화합하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남자들은 그러지 못한다. 구애(courtship)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남자는 밖에서 늘 하던 대로 자기보다 연약한 상대인 여자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습성을 저도 모르게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소유욕이라는 건 세 가지가 뒤섞인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첫째, 사랑이라는 감정에 본질적으로 포함된 내밀한 일대일 관계에 대한 열망. (이건 남녀공통이다.) 둘째, 머리로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유전자 차원에서 본성이 조장하는 불안감. (자기 여자가 다른 멋진 남자에게 친절하게 교태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남자들은 거의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지 않던가? 유전자의 사전에 “필요 이상으로”란 없다!) 셋째, 무리생활을 통해서 유전된 강제-복종의 습관이 저도 모르게 자기보다 연약한 배우자에게 투영되는 부분.

나도 알고 있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내가 유전자 운운하는 건, 그게 뿌리 깊은 거니까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집착의 뿌리가 본능적인 거라면 이성(理性)으로 다스릴 수 있을 거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거다. 영리한 여성독자라면 이쯤에서 알아챘을 거다. 그와 더 원만하게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그의 두려움을 다독여주고 그의 지배욕을 잠재워주는 거겠구나, 라고.

쓸 데 없이 그의 질투심을 자극해 보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그와 다투어 이기겠다는 자세도 어리석다. (물론 싫어하는 남자에게는 그래도 된다, 얼마든지.) 여자도 권위나 완력을 동원하거나 이치를 따져가면서 남자를 복종시킬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야단맞는 거다. 자기를 줄창 야단치는 상대를 사랑하는 남자는 변태일 가능성이 많다. 남자의 로망은 서툴게 질투심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즉 믿음이 가면서도) 구애의 긴장감을 유지할 줄 아는 (즉 함부로 지배할 수 없는) 여자다. 뭐 그렇게까지 고단수는 아니더라도, 남자에게 말과 표정으로 믿음을 심어주는 여자, 견해차가 생기면 ‘우리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같은 편’임을 일깨워줌으로써 남자를 조종할 줄 아는 여자가 지혜롭다. 그건 여자가 본능적으로 잘 해낼 수 있는 일이고, 돈 드는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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