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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ar

posted Oct 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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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0년대 한국영화를 빈사상태에 빠뜨렸던 것은 혹독한 정치적 검열, 출구가 없는 작은 시장, 새장 속에 보호되면서 체념과 안일에 빠진 제작풍토, 방화를 폄하하는 관객의 고정관념 따위였습니다. 한국영화가 부흥기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민주화, 시장개방, 외화와의 경쟁에 도전하는 패기와 실력을 갖춘 제작진의 등장, 새로운 세대의 관객층의 출현 등을 기다려야 했죠. 90년 <장군의 아들>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 뒤에는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유려한 화면과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에 더해서, 홍콩 액션영화에선 볼 수 없던 한국적 사실감을 담고 있던 <장군의 아들>은 관객동원기록을 68만명으로 가뿐히 갱신했습니다. 그 전까지 최다관객수 기록은 공식적으로는 <겨울여자>(77년, 58만 명)가 보유하고 있었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한 가지는, 비공식적인 관객동원기록을 <영구와 땡칠이>(89년, 서울 70만, 지방 200만 이상)가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13만명을 돌파한 <서편제> 이후로도, <영구와 땡칠이>의 기록이 깨지려면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을 뿐 아니라, 270만이라는 관객 수는 요즘도 보기 드문 ‘대박’에 해당합니다. 개그맨 심형래는 한국 영화계가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용가리>로 실패의 쓴 잔을 마신 뒤, <디워>를 들고 나왔습니다.


    큰 기대 없이 봤건만, 제가 본 <디워>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얼른 봐도 돈이 너무 한 곳으로만 몰린 영화더군요. 상식적인 제작자라면, 특수효과, 캐스팅, 스탭, 시나리오, 소품, 로케이션 등에 소요되는 예산 을 가급적 균형 있게 배분하려고 애쓸 터입니다. <디워>는 현란한 그래픽과 그럴듯한 배우 두어 명만 있으면 영화가 된다고 생각했다는 혐의를 피할 수가 없겠더군요. 마치, 70년대 한국영화 지방 배급업자들이 시사회장에서 잠만 자고 나오며 “신성일 나오고, 엄앵란 나오고, 비 좀 뿌려주고 그러면 영화 된다”고 하던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영화의 테마가 짐승에 대한 인신공양이었던 점은 아쉽습니다. 악당은 물론, 주인공(protagonist)인 좋은 이무기도, 나아가 ‘역사적 필연성’도 젊은 여성 주인공의 인신공양을 요구하고 있더군요. 이것은 이 영화가 딛고 서 있는 무딘 감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세계시장의 관객들, 특히 이 영화가 목표로 삼은 미국의 관객에게도 혐오감을 일으킬 소재입니다.


    기자인 주인공이 사건현장의 폴리스 라인을 대수롭지 않게 침범하고, 경찰이 그를 별로 제지하지 않는 장면도 초현실적입니다. 주인공이 반드시 착할 필요는 없지만, 그쯤 되면 주인공이나 경찰이 멍청해 보이는 거죠. 종합병원 의사가 기자의 팬이라며, 면회가 금지된 격리수용 환자에게 데려가는 장면도 - 비록 그 의사가 주인공의 보호자가 변신한 모습이라 해도 - 실소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역사상 실체적 정의에 대한 견해차는 거의 언제나 두 이무기의 싸움 같은 추악한 무제한의 전쟁을 초래했기 때문에, 인류는 절차적 정의에 의존하는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하지만 <디워>가 절차적 정의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두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나쁜 이무기가 승리한들 뭐가 달라지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선악의 대결을 그리려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이해(stake)가 뭔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했습니다.


    심감독은 자신의 장기였던 유머감각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디워>는 기괴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기괴함 자체는 영화의 장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만, <디워>의 기괴함은 의도된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디워>는 독특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그 독특함은 영리하거나 고집스럽게 의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디워>가 <우뢰매> <영구 람보> <영구와 공룡 쭈쭈> 등 심형래 감독의 일련의 활동사진 작업의 분명한 연장선상 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워>에 얼마의 충무로 자본이 들어갔고, 몇 명의 제도권 제작진이 가세했느냐와 상관없이 이 영화는 심형래라는 개인이 제도권 밖에서 만든 것이라는 표식을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값비싼 특수효과 못지않게 신기한 현상이었죠. 팔백만 넘는 <디워> 관객 중 다수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그런 신기함이 아니었을까요?


    일부 언론처럼 “<디워>는 기존 주류에 맞서는 안티테제이며, 언론과 평단, 기존 충무로의 영화 문법에 식상한 관객과 네티즌들이 열광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고까지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었다고 봅니다. 영화관객도 대중이고, 대중이란 교통사고를 구경하러 모이듯 신기한 일이 벌어지면 언제나 모이기 마련이니까요. 유명 평론가가 네티즌들과 드잡이를 하면서까지 <디워>의 서사구조의 허술함이나 애국주의 마케팅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설사 그 주장이 틀리지 않다 할지라도, 가식적으로 보였습니다. 서사구조가 허술한 영화들은 얼마든지 있고, 한국의 대중이 민족주의적 휘발성을 드러낸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관객들에게 성을 내면서 바보취급 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니, 싸움이 안 붙는다면 이상한 일이었겠죠. 자기 같으면 제작비 700억이면 영화 350개는 찍겠다며 화를 낸 영화감독도 있었습니다. 350편이건 3천편이건, 찍으시면 됩니다. 제작비로 700억을 끌어 모을 신기한 재주가 있다면 말이죠. 그 감독은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고도 열변을 토했습니다. 바라옵기는, 이분은 월드컵때도 비슷한 환멸을 토로했을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실상은, 영화는 축구 못지않게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될 수 있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저는 <디워>의 독특함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티끌만큼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독특함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바람직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일 뿐이지요. 민족주의/애국주의 마케팅이나 한국 대중의 쏠림 현상은 02년 월드컵때 그 시장의 규모가 확인되고, 촛불시위때 그 파급효과가 경험된 이래로 한국사회가 줄곧 끌어안고 있는 위험요소입니다. 애국애족의 기치 아래 수천만 군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좋은 결과가 나왔던 적이 드물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기 때문이죠. 한국사회 속을 불끈불끈 흐르는 이 에너지를 여하히 선용할 것이냐는 주제는 <디워>라는 영화의 맥락 속에서만 논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영화감상에 한정하더라도, 최소한 <쉬리> <공동경비구역>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웰컴투 동막골> 등에 대한 관객의 반응과 한 맥락에서 조망해 보아야 그 뜻이 드러날 터입니다.


    우리 영화풍토에 관해 제가 염려하는 부분은 좀 다른 데 있습니다. 갈수록 천박한 냉소와 비겁한 비아냥, 무기력한 남의 탓과 독기어린 피해의식이 자주 몰골을 드러내는 점이죠. 그것은 우리의 가난했던 영화적 자산이 길러낸 비뚤어진 자의식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느새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도덕적 상대주의나 역사적 피해의식의 소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소외라는 테마는 현대 서사구조의 중심적 소재입니다만, 소외의 원인과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보지 못하면 그 서사구조는 궁상맞은 신세타령이나 헐뜯기로 전락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영화는 “프로파겐다”이기도 하므로, 충무로가 냉소적 태도로 설득과 심판과 정죄와 용서의 권력을 누리는 것은 불길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냉소와 유머를 구분하는 저만의 방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극장문을 나설 때 <넘버 3> <살인의 추억> <강원도의 힘>처럼, 웃음이 제 가슴 속에 自省의 앙금을 남기면 저는 그것을 유머라고 여깁니다. 반면, <박하사탕> <친절한 금자씨> <바람난 가족>처럼, 분명치 않은 ‘그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찌꺼기로 남으면 저는 그걸 냉소주의라고 여깁니다. 예컨대, <친절한 금자씨>가 두 시간 남짓 짝다리 짚고 서서 관객에게 건네는 말은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었나,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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