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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Hard, Collateral Damage

posted Oct 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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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라는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듯, 테러리즘의 원인을 간단히 규명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테러의 규모가 커지고, 장소나 대상이 무차별한 양상을 갖도록 기여한 몇 가지 배경을 꼽아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 세계화입니다. 세계화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자기 불행의 원인이 세계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카플란의 지적처럼, 후진국에서 빈민 청년층의 증가는 ‘서아프리카의 살인적인 10대 군인들, 러시아와 알바니아 마피아들, 남미의 마약상인들, 팔레스타인 자살폭탄병, 이메일로 연락하는 빈 라덴의 추종자들처럼 전에 볼 수 없던 잔인하고 한층 잘 무장된 전사계급’을 탄생시켰죠. 둘째, 기술의 발달입니다. 현대의 반자본주의 혁명가들은 결코 러다이트들은 아닙니다. 인터넷, 이메일, 휴대폰 등 첨단기술의 혜택을 누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죠. 셋째, 민주주의의 확산입니다. 전국민이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된 뒤로, 민주주의 사회의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일은 왕정체제에서 관리를 살해하는 일에 필적하는 정치적 효과를 갖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匹夫匹婦에게 권리와 아울러 위험도 나눠준 셈이랄까요. 넷째, 초국가적 권력으로 성장한 대형 언론의 존재입니다.


    현대 언론은 테러리스트들이 전파하고자 하는 테러(공포)를, 과거 상상할 수 없던 속도로, 상세히, 그리고 널리 전파해 줍니다. 로버트 카플란은 현대 언론이 ‘신속한 반응, 대답을 요구할 권리, 심판하고 비난할 권리,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권리’를 거의 견제받지 않고 누리는 점을 들어, 전제적 권력의 특성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언론은 이런 권력을 주로 정부, 의회, 군대 등 현존하는 권력기구를 대상으로 휘두르죠. 오늘날 언론의 가치는 국익이 아니라 무한정한 도덕과 정의감입니다. 결과적으로, 현대 언론은 약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왜곡된 ‘피해자의 신화’를 드라마틱하게 전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테러사건이 발생하면, 희생자를 애도하는 짧은 기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언론은 문명사회의 자성론과 아울러 테러리스트들의 주의주장에 동정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보도들을 쏟아냅니다.


    싫고 좋음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 오늘날 이런 제반 여건이 테러리스트들에게 테러가 예전보다 더 쉬울 뿐 아니라 매혹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는 점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얼른 알아채기 어려운 문제는 다른 쪽에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테러리즘인지에 관해 적잖은 혼란이 존재한다는 점, 그 혼란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연혁 속에 내재되어 왔다는 점, 그 때문에 테러에 대한 국제적 공동대처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스 그루버 일당의 예를 보죠. 한스는 Die Hard에서 존 멕클레인(브루스 윌리스)과 싸우던 악당입니다. 그는 다국적기업 나카토미 상사에 진입하여 인질을 잡고 지사장을 협박합니다.


       - 한스 : 당신네 컴퓨터엔 관심 없어. 창고 속의 6억불어치 회사채 증서에 관심이 있지.

       - 지사장 : 돈을 원해?  당신 도대체 뭐하는 테러리스트야?

       - 한스 (웃으면서) : 우리가 테러리스트라고 누가 그러던가?


    한스 일당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면, 왜 아닌 걸까요? 테러는 수법과는 무관하고 동기에만 관련된 걸까요? 그 동기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할까요? 한스의 동기는 예컨대 ‘유나바머’보다 덜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대상이 무차별할 때만 테러일까요? 그렇다면 1881년 짜르 암살이 테러라고 불리는 까닭은 뭘까요? 수법과 관계된 거라면 과연 요인암살, 인질극, 항공기 폭파 사이에는 필연적 유사성이 있나요? 그간 테러리즘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날 테러에 대한 느슨한 정의는 제각각 따로 존재하는 총 12개의 국제협약 속에 흩어져 있을 뿐, 포괄적 반테러협약에 포함된 정의 따위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정부가 왕당파를 무자비하게 암살, 고문, 처형하던 ‘공포정치’를 테러리즘이라는 기호의 연원으로 봅니다. 그건 성격상, 스탈린이 반혁명파에게, 히틀러가 유태인에게, 세르비아가 코소보 주민들에게, 러시아가 체첸에,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 인도가 잠무카슈미르에, 시에라리온 혁명연합전선 및 콩고 반란군이 시민들에게 저지른 잔학행위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19세기말에 와서는 혁명전투원들의 암살 및 파괴활동을 테러라고 부르기 시작하죠.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14년 세르비아 열혈청년 프린키브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살해하여 1차대전을 촉발했던 사건일텐데, 이런 의미전환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사조를 배경으로 합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들의 차리스트 요인암살, 우익 시온주의자들(Stern Gang)의 1944년 영국 국무장관 암살, 안중근 의사의 히로부미 암살 등이 여기 해당되죠.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는 칼리굴라 황제의 잔혹한 통치방식 비슷한 무언가와, 부르투스의 카이사르 암살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겁니다. 참고로, 누군가가 행한 일 때문에 그를 죽이는 것과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것 사이에는 윤리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 정치적 암살자들은 - 고대 팔레스타인의 열혈당원이건 중세 이슬람의 Hashashin이건 안중근 의사건 - 그 차이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 반면, 알카에다 같은 현대 테러리스트들은 되도록 그 도덕적 경계선을 흐리기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간혹 알카에다가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지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안중근 의사가 무덤을 박차고 일어날 일이죠.


    2차대전후 북아일랜드, 팔레스타인, 사이프러스, 알제리 등지의 민족주의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민간인과 민간시설까지 살상과 파괴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60년대 PLO의 수많은 항공기 납치가 무차별성을 투쟁패턴으로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이래, 독일 적군파, 이태리 붉은 여단, 미국 Weathermen 등 다양한 사회혁명을 추구하는 도시게릴라들이 테러를 널리 유행시켰고, 최근에는 일본의 옴 진리교나 유나바머로 알려진 카친스키 교수 등 온갖 단체 및 개인이 테러리스트의 대열에 합류했죠. 요즘 와선 국가테러리즘(state terrorism)이라는 개념도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인도와 파키스탄, 미국과 알카에다는 서로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의 기호학적 싸움입니다. 결과적으로,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는 마치 여러 종류의 범죄를 하나로 취급하는 것 같은 기호학적 오류 속에 빠졌습니다. 테러리즘이라는 말은 “굉장히 못된 짓”이라는 말로 바꿔치기해도 될 만큼이나 헐거워져버린 거죠. 이제부터라도 테러를 가급적 좁게 정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Collateral Damage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콜롬비아 게릴라의 건물폭파 테러에 가족을 잃은 소방관 존 브루어로 출연합니다. 이 영화에서 테러리스트 엘로보(늑대)는 “sangre o libertad(피 또는 자유)”라는 구호를 쓰는데, 이것은 미국의 급진파 독립운동가였던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志士的 선언의 뒤집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자유’와 ‘죽음(피)’의 자리가 뒤바뀌어 있고, 엘로보의 구호는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피)을 주마”라는 의미로 물구나무 선 것이죠. 존 브루어는 단신으로 엘로보의 정글 속 은신처에 잠입하다가 생포됩니다.


  - 엘로보 : 자네나 나나, 대의(cause)를 위해 살인을 하려 하는군.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이 뭔가?

  - 존 :  다른점은, 난 단지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점이지.


    아무리 진지한 대사라도 일단 슈왈제네거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좀처럼 사려 깊은 선언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지만, 제가 하려는 이야기도 그 비슷한 것입니다. 테러리즘이라는 기호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열쇠는, 존 브루어가 지적한 것 같은 구분에 있고, 심지어 ‘이런 구분에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 낙수


    Die Hard는 테러리즘의 도구로 전락하는 부정적인 언론의 이미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긴박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국민의 알 권리는 조금 기다려도 좋겠다는 점을 Die Hard의 뉴스기자 리처드처럼 실감나게 증명해 주기도 어렵습니다. 이 영화의 테러리스트 한스 그루버 일당은 자신들의 왜곡된 이미지를 착실하게 전파해 주는 TV 뉴스를 바라보며 차갑게 비웃죠. TV는 그들의 눈과 귀이자 입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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