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een

posted Mar 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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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1974년 태국을 여행하다가, 태국이 1930년대에 혁명을 겪었지만 국민투표에서 다시 왕정을 선택했다는 설명을 듣고서 기행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통이 있다는 것은 길을 잃고 헤매었을 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돌아갈 곳, 기댈 곳, 자랑할 곳이 되어주는 전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부터 선사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 내는 것이죠, 한 사람이 한 땀씩 바느질을 하듯이, 한 세대가 한 뼘씩 위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리듯이.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위대함의 본질은 그 무던한 참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대한 믿음에 있습니다. 전통의 위대함을 믿는 사람들은 당대에 완결되지 않을 거대한 무언가를 건설하는 일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는 일을 졸속으로 마무리하고 자기 이름을 간판에 새겨버리는 짓을 되도록 삼가지요. 자신의 삶은 자기 사진에게는 전부이지만, 보다 큰 전체를 이루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고, 다음 세대가 그 작업을 이어 나가리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새 출발이 있을 따름이지요.


    자신의 전 존재가 깃든 자기 삶의 업적을 이어달리기의 바톤처럼 후세에 넘겨주는 신뢰는 크나큰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 깃든 신뢰감의 원천이 됩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믿음도 결국 남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에, 그것은 동시대를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타인에 대한 믿음과 뿌리가 같습니다. 자연히,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전통을 귀히 여기는 사회가 흔들리는 동요의 폭은 작습니다. 김현의 표현을 빌리면, 어지러울 때 돌아갈 곳을, 그들은 압니다.


   전통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전통이 보답으로 주는 선물은 겸손입니다. 프랑스의 지성인 앙드레 모로와는 그의 저서 영국사에서 “과거에 해보지 않았던 현명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늘 해오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는 볼퍼 백작의 경구를 인용했습니다. 전통에 대한 영국인들의 집착은 좁은 해협의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던 프랑스인에게도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영국인이 죄다 볼퍼 백작만큼 보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백작의 경구는 전통 앞에서 스스로의 현명함을 과신하지 않는 영국적인 겸허함을 잘 드러냅니다. 영국인들에게 전통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 공동체에 집적된 쓸모있는 지혜의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더 크고 의미 있는 뭔가의 일부로 여기는 사람들은 커다란 용기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열성적인 추종자들에게서 흔히 발현되는 초인적인 용기가 그런 사정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전통은 신앙이나 사상보다 겸허한 것이라서, 전통이 주는 용기는 단호하면서도 수수합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용기의 색깔이 고동치는 붉은 색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의 공습에 맞서는 영국민들이 보여준 것은 강철 같은 회색의 용기였습니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영화 The Queen은 이런 수수한 용기를 섬세하게 포착했습니다. The Queen은 좋은 영화지만, 작품상이나 감독상의 재목이 되기 어려울 정도로 수수했다고나 할까요. 실존인물을 소재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 인물이 아직도 현직에 있는 국가원수일 때는 더더구나 그렇죠. 그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 The Queen도 그 수수한 겉보기 보다는 어려운 일에 도전한 용감한 영화인 셈입니다. 용기는 반드시 떠들썩하고 화려한 일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언론이 뭐라고 비난하더라도 버킹검 궁에 걸렸던 적이 없는 弔旗를, 더구나 여왕의 부재중에 걸지 않겠다는 고집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고리타분한 고집쟁이 노인네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당시 19세이던 그녀는 아버지를 졸라 군에 입대했고, 운전병으로 계급장을 달고 군복무를 했지요. 영화 속에서 멋지게 자가운전으로 시골길을 달리는 여왕의 모습은 실은 전쟁중 운전병으로 복무한 제대군인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영국 왕실이 생긴 이래 여성으로서 군대에 복무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는 유일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프리어스는 블록버스터 대작을 만드는 감독은 아니지만, My Beautiful Laundrette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이래 줄곧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가 존 말코비치를 주연으로 기용하여 만든 Dangerous Liason(1988)은 동일한 18세기 프랑스 원작소설에 바탕을 둔 Valmont(1989, 밀로스 포먼 감독)이나 Cruel intention(1999, 로저 컴블 감독), 스캔들(2003, 이재용 감독, 배용준/전도연 주연) 같은 다른 영화들보다 더 단아하고 중후하면서 차분합니다. 그런 그가 다이애너비의 죽음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쩐지 좋은 영화가 되기엔 너무 센세이셔널한 소재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실존인물에 관한 영화는 단지 그 인물에 관한 영화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기도 했죠.


    그러나, The Queen은 왕궁의 일상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다이아나비나 엘리자베스 여왕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영국이 왜 영국인지를 보여주는 몇 편의 영화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밀도 있게 빚어졌습니다.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reigns but does not rule)영국왕실이 어떻게 영국적 전통의 구심점이 되어 왔는지를,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왕실이 가장 큰 국내적 비난에 처해 있던 순간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다이아나비라는 인물 자체도 그러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세간의 반응은 어딘가 기괴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왕족의 사생활을 소재로 한 일종의 리얼리티 쇼였고, 전세계의 대중이 그 방청객이었던 셈이죠. 그녀의 죽음을 대하는 매스컴과 대중들의 반응은 야비한 파파라치의 호기심과 진심어린 애도가 야릇하게 뒤섞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없던 현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왕실과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여왕은 새로운 형태의 위기 앞에서도 전통에 의지하는 전형적인 영국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동당 신임내각의 핵심인사들과 왕실 인물들의 행동과 반응만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현장감과 재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극적인 긴장감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망원경 못지않게 현미경도 도움을 주는 법인가 봅니다.


    헬렌 미렌은 외로운 통치자의 용기를 기품 있게 연기하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가 상을 받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훌륭한 배우는 과거 두 번 후보에 지명되었지만 주연상은 커녕 조연상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워낙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기 때문에 작품성이 들쑥날쑥한 여러 작품에 조역으로 캐스팅되고 있는 그녀가 언제 또 이 정도 수준을 갖춘 영화의 빛나는 주인공 자격으로 아카데미에 입성할지 점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카데미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이 여배우에게 헌상할 기회를 영영 갖지 못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이 영화에서 보듯이,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의 파국에서 그녀의 죽음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왕실에 대한 반감이 작지 않았습니다. 영국 타블로이드 언론의 자극적인 머릿기사에 현혹된 외국의 언론들은 (우리 국내언론을 포함해서) 더러 영국 왕실이 언제 폐지될 것인지에 관해서 성급한 추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회의 전통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한낮 낡고 부질없는 격식과 습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없어질 왕실이었다면, 영국왕실은 아마도 벌써 오래 전에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