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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間道, The Departed

posted Mar 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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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79번째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시상식이 있기 전에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여우주연상(헬렌 미렌)과 남우주연상(포레스트 휘타커)은 알아맞혔는데, 작품상은 Little Miss Sunshine이 받게 되지 않을까 하고 틀린 추측을 했었죠. Little Miss Sunshine을 예상했던 건, 실은 제 영화취향을 반영하는 희망 섞인 응원이었고, 속으로는 Babel이 수상할 가능성이 더 많긴 하겠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Babel 같은 영화는 과대평가되기 쉽다는 편견을, 저는 가지고 있거든요. 간단히 말해서, The Departed가 편집상과 각색상 둘 중 하나라면 몰라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네 개 부문을 휩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우선, 잘 만들어져 흥행기록을 세웠던 홍콩영화의 번안물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줄 만큼 아카데미가 자존심을 팽개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던 것은, 대감독 마틴 스코세즈에게 “여태까지” 한번도 감독상을 한번도 주지 못했다는 아카데미의 초조감이 그만큼이나 컸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코세즈 감독의 최고의 작품들은 Taxi Driver와 Ragin Bull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도 입봉 이래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는 감독들 중 한 명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상을 안주면 다음엔 어떤 영화를 들고 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초조감을 더한 것이었을까요? 올해 작품상 후보작들 중에는 군계일학처럼 두드러지는 수작이 없었다는 사정도 있어서, 아카데미가 애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밀린 숙제를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무간도>의 무간(無間)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뜻하는 불교용어로, 무간지옥은 불교에서 말하는 18층 지옥 중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을 뜻한다고 합니다. The Departed는 ‘사망한 사람’이라는 뜻이고요. 번안계약의 내용이 그랬었기 때문이었는지, The Departed는 헐리우드의 번안물 치고는 원작의 플롯을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간도가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The Departed는 살아서 고함치고 뛰어다니되 영혼은 ‘죽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릅니다. 이 두 영화의 차이점은 사실 그 제목에 다 들어 있는 셈이죠. 무간도에서 폭력조직에 간자로 투입된 양조위는 그 큰 눈망울과 느릿한 태도(pace)로 뚝뚝 흐르는 우울함을 전해줍니다. 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치 성난 우디알렌처럼 짜증내고, 불안에 떨면서 서성대지요.


    무간도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과거 홍콩 느와르에 뿌리를 둔 비장미 넘치고 과장된 우수가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무간도를 좋은 영화이게끔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과도한 비장감이 용서받을 수 있는 장르적 전통과, 홍콩이라는 좁고 닫혀진 무대, 그리고 비겁함과 용기를 동시에 담은 내면연기를 펼칠 수 있는 양조위와 유덕화라는 두 명의 배우였습니다.


    The Departed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완성도가 높다는 표현이, 제가 이 영화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자, 유일한 찬사이기도 합니다. 스코세즈 감독은 빌려온 플롯이 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번안물을 자기만의 색채로 칠하는 데 성공했고, 그 색깔은 Mean Street, Taxi Driver, Good Fellas, Gangs of New York 등 여러 편을 거치면서도 변색치 않았던 그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데 무간도의 플롯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됩니다. 스코세즈가 보여준 더럽고 비열한 폭력의 세계를 말하려면 줄거리도 차가운 현실감을 가지는 편이 더 유리할 것입니다. 경찰이 폭력조직의 내부에 그런 식으로 첩자를 둔다는 설정이 홍콩 땅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오니까 마치 진지하게 강의하는 만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스코세즈의 영화에서,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두 젊은이가 정반대의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걷는다는 설정은 불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실은 불리하기도 한 거죠. 매트 데이먼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나이차가 훨씬 더 많이 났어도 좋았고, 둘 중 한 사람이 첩자가 아닌 조직의 배신자였어도 상관없었을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 둘이 하필이면 한 여자에 대한 애정을 공유한다는 설정도 스코세즈의 영화에서는 감점요인이 되겠습니다.


    The Departed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그것이 과제로 주어진 원작을 각색한 번안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의 알맹이와 줄거리가 서로 더 멀리 겉도는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사정은 그대로 남습니다. 대거 출연한 스타급 배우들은 하나같이 잘 어울리는 자리에 캐스팅 되었지만, The Departed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마크 월버그 한 사람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연기한 Dignam이라는 인물은 무간도에 없는, 칭찬해줄 만한 유일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가 그러했던 듯, 나머지 배우들은 다들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특히 잭 니콜슨은.


    제가 동양인이며, 무간도를 먼저 보았다는 사실까지를 감안해서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영화팬으로서 무간도가 The Departed보다 평점이 높은 영화라는 생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올해 아카데미는 정성껏 잘 만들었으되 안 어울리는 옷을 걸친 희한한 영화에게 4개부문 상을 안겨준 것입니다. 어쩌면, 후보작품을 다 볼 시간조차 없다는 아카데미 회원들 중 여럿은 The Departed가 홍콩영화의 번안물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휴일인 오늘, 시상식 재방송을 하길래 봤습니다. 막상 시상식을 보니까 The Departed의 수상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죄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상을 받는 마틴 스코세즈 본인이 이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작품이 편집상을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하던 그가, 막상 감독상을 거머쥐자 많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그가 밝힌 일화처럼, 그는 가는 곳마다, 심지어 동네 이웃이나 이발소나 가게 점원들로부터도 “이번만큼은 꼭 당신이 상을 받아야 할텐데”라는 동정어린 관심표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겉으로 말은 안했지만, 그것이 참 피곤했다는 투였습니다. 아마도 아카데미 회원들 대다수가 스코세즈의 동네사람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던 모양이고, 그래서 그는 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시상자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셋이 나와서 펼친 개그는 많은 내막을 짐작케 했습니다. 코폴라와 스필버그가, 자신들 셋이 시상자로 결정된 이유는 막상 상을 받아본 감독만이 이 상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루카스가 머쓱하게, ‘잠간만’ 하면서 자기는 상을 못받았다고 합니다. 코폴라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정정합니다. 이중에서 자기와 스티븐 둘만 그 상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고. 루카스는 입을 비쭉이면서, 자신은 언제나 상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보람있는 것으로 여겨왔다고 말합니다. 코폴라와 스필버그가 이구동성으로 답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이것은 마틴 스콜세즈한테서 아카데미 7수의 딱지를 떼어주는 장난기어린 예식이었습니다.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였는데, 오히려 그래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하필이면 The Departed로 상을 받아야 했던 스콜세즈 본인의 입장을 생각하면 좀 안됐긴 하지만, 그 업계에서 그렇게 한 목소리로 “꼭 챙겨줘야 될 사람”으로 여겨지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주변의 동정을 받는 일은,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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