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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inator 2: Judgement Day

posted Jan 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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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징크스는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의 속편은 전편에 대한 평가와 기대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정의상 참신할 수가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전편과의 계속성을 충실히 유지하면서도 태생적인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해낸 속편영화가 있다면, 그만한 성과로도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겠습니다. 그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인 만큼, 박수가 아깝지 않은 속편이란 드물지요. 셈 레이미 감독의 Evil Dead 연작의 경우, 3편이 가장 호평을 받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1, 2편이 저예산 호러물인 반면, 3편은 넉넉한 자본을 바탕으로 전편과는 판이한 분위기의 주류영화로 변신한 경우라서 진정한 속편이라고 부르기가 좀 뭣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빼어난 속편으로 얼른 꼽을만한 영화는 Godfather 2와, Terminator 2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Godfather 2는 1편에 흐르는 우수 어린 간결함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1편만 못하다는 사람들도 많긴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Godfather 2가 1편의 시간대를 앞뒤로 오가면서 내용상 그 전편(prequel)과 속편(sequel)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는 점, 1편보다 더 극적이고 장중한 느낌으로 돈 콜리오네 가족사를 완결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을 높이 삽니다. 시대를 오가는 편집도 뛰어났고, 코폴라 감독이 담아낸 메시지의 일관성도 원작소설의 힘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만큼 탁월했습니다.


    이 영화는 2대에 걸쳐 전혀 다른 경로로 매우 닮은꼴이 되어가는 두 부자(父子)의 인생역정을 마치 관객이 자신의 낡은 앨범을 뒤적이며 회한에 젖는 것만큼이나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려냈습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 두 명배우의 섬광 번득이는 연기가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은 물론이죠. 처음에는 미스캐스팅인가 싶더니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말론 브란도보다 더 말론 브란도스럽게' 변해가는 저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는, 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Godfather 2는, 더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는 어렵다는 속편의 대기권을 벗어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속편은 오히려 관객들이 전편에 대해서 품은 그리움을 탄력삼아 더 멀리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제가 뛰어난 속편으로 기꺼이 꼽는 또 하나의 영화는 Terminator 2입니다. Terminator가 개봉하던 1984년, 저는 입시를 치른 후 마지막 겨울방학에 친구들과 부산에 여행을 갔습니다. 그때 광복동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본 것이 이 영화였습니다. 드문 해방감을 만끽하던 중이라서 그럴까요? 이 영화를 본 기억은 유난히 생생합니다. 극장 앞 거리 풍경이나, 우리가 지껄이던 실없는 대화까지도. 그때 한 친구는 이 영화를 이미 보았던 터라 '무릎과 무릎 사이'를 보자고 우기다가 졌는데, 그가 적당한 대목에서 재미있는 변사노릇을 했던 것도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을 더 훈훈하게 만듭니다. 워낙 재미있게 본 영화여서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기다려 보았지만, 3-4년이 속절없이 흘러간 즈음부터는 Terminator의 속편은 만들 수 없거나, 적어도 너무 늦어버렸다는 쪽에 내기를 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의 근거는 이런 거였습니다.


    첫째, 80년대 후반 불과 3-4년 동안에만도 특수효과는 전에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Terminator의 특수효과와 거기에 등장했던 최첨단 살인기계들이 구닥다리로 보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미래에서 온 기계인간이 저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SF 는 긴장감과 놀라움을 주기는커녕 우스워 보일 터였습니다.


    둘째, 광복동 극장에서 무릎을 치며 도대체 저런 배우를 어디서 구했을까 감탄했던 (로봇 배역에 딱 들어맞는 그 영어 억양이라니!), 이름도 발음 못하겠던 근육 덩어리의 유럽 육체미 선수는, 불과 3-4년만에 실버스타 스탤론을 젖히고 미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기용하지 않은 Terminator 속편은 맥빠진 사기극 같아 보일 것이고, 그가 또다시 기계인간으로 등장하면 이젠 관객들이 그에게 박수를 칠 판이었습니다. 만일 84년 겨울 광복동에서 오뎅국물을 나눠먹던 우리 중 누군가가 저 사내가 훗날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의 주지사가 될 거라고 했다면, 그는 과도하게 실없는 소리를 한 벌로 오뎅국물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셋째, 슈왈제네거의 변화는 단지 액션 스타로 유명세를 탄 것만은 아니고, 그도 사람인지라 나이를 먹었고, 육체미 선수들이 늘상 그러하듯이 운동을 접은 후 근육의 사나움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인상은 Kindergarten Cop이 되어 웃음을 선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드러워졌던 것이죠.


   그런 연유로, 무려 7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에 Terminator 2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혀를 찼으며, 기대보다는 걱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았더니, 제임스 카메룬은 슈왈제네거의 역할을 뒤집어 "재프로그램되어 주인공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과거로 파견된 구닥다리 로봇"으로 변신시켜 버렸더군요. 제가 안될 거라고 돈을 걸었던 모든 이유들을 일거에 장점으로 역전시켜버린 거였습니다. 입을 다물 수 없었죠. 그리고 그 놀라움은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T-2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풍성한 서사구조의 저수지로 삼아버렸습니다. 예컨대, 자기를 지켜주러 온 로봇이 '그때 그놈'인줄 알고 주인공이 도망다님으로써 긴박감을 더한다든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원천기술은 전편에서 부서진 로봇의 팔에서 회수한 칩에서 비롯되었다는 SF적 시간역설(time paradox)을 더해 넣는 식으로 말이죠.


    Back to the Future 2에 전편의 장면들을 짜깁기해 넣어 풍성한 잔재미를 준 것도 영리했지만, T-2만큼 세월이라는 장애물의 반탄력을 멋지게 활용한 경우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T-2의 서사구조는 존 코너와 사라, 그리고 터미네이터 3자관계의 발전에서 그 활력을 얻습니다. 아빠 없이 자란 존은 로봇에게서 보호자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사라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러다가 결국 셋은 화해에 이르는 것이죠. 존은 예전의 악당 로봇을 말로만 들었을 테지만, 관객들은 사라와 함께 일찌감치 그 생지옥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터미네이터와 장난치는 아들을 바라보는 사라의 착잡한 심정을 존보다 오히려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속편의 잇점을 이보다 더 모범적으로 살린 드라마투르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T-2의 설정은 당연할 뿐이니 놀랍지 않다고요? 콜럼부스가 퍽! 세워놓은 달걀을 쳐다보던 구경군의 머릿속에 떠올랐음직한 그런 생각은,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속편의 가능성을 생각해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수효과가 발달한다고 아무나 더 그럴듯한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2편으로부터 무려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제임스 카메룬 없이 만들어진 Terminator 3의 악당 로봇은 훨씬 더 신형이지만 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던가요? 성공한 속편이 이룩한 성취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속편은 어디까지나 속편이죠. 속편의 독창성(originality)이란, 애당초 전편이 '본래적(original)'이라는 의미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니까요. 공들여 잘 만든 속편들을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이 낮게 드리워진 한계 속에서 도전을 기회로 역전시키는 쾌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로 겪는 작지만 뜻깊은 성공사례들과 닮아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속편들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잔재미만 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뻔하고 지긋지긋한 조건들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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