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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posted Jan 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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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파일방(九派一幇)을 아시나요? 무협지를 들춰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림의 정파를 구성하는 아홉 개 파벌과 개방(丐幇)을 가리킨다는 것쯤은 알 테지만, 정작 아홉 유파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림(少林), 아미(峨嵋), 무당(武當), 화산(華山) 등 4대 유파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파벌에 관해서는 굳어진 법칙이 없기 때문이죠. 대체로 곤륜(崑崙), 점창(點蒼), 청성(靑城), 공동(崆峒), 종남(終南), 장백(長白), 형산(衡山), 태산(泰山), 전진(全眞) 중 일부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가의 취향에 불과하다는 설이 아마 옳겠습니다만, 더러 모든 걸 설명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파가 열개 이상의 유파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초창기 무림전통에 따라 9파라는 표현을 쓸 뿐이라거나, 아니면 4대문파를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매년 순위를 정해, 또는 무림의 판도에 따라 돌아가면서 책무를 수행한다는 식의 해설을 내놓기도 합니다.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무협소설도 여느 환상소설처럼 가공의 세계의 세세한 사정에 굳이 설명을 달고 싶어 하는 열성적인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거죠.


    말이 나온 김에 4대문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소림사는 북위 효문제때 하남성 숭산(嵩山) 소실봉 계곡에 건립된 사찰입니다. 6세기경 천축에서 온 달마대사가 여기서 9년간 면벽하고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죠. 그는 단지 깨달음을 얻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림의 무술도 창시했답니다. 특히 백팔나한진은 내공과 외공은 물론, 장(掌), 권(拳), 검(劍), 도(刀), 신법(身法)을 망라한 소림무예의 집대성으로, 동물들의 특징을 본뜬 소림오권(少林五拳)과 함께 무수한 영화와 무협지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소림의 절기를 가장 절도 있게 구사한 영화배우는 이연걸이라는군요.


    아미파(峨嵋派)는 도가와 불가가 어우러져 여승들의 유파로 발전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4대문파를 표기하는 순서와 관련해서, 소림이 중원무림의 태두라는 데는 이견이 없고, 그 다음으로 무당과 중원오악파의 수장격인 화산을 치고 아마조네스처럼 여성고수들로 이루어진 아미파는 넷 중에 제일 뒤에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곽정의 차녀 곽양이 훗날 무당의 조사가 될 장삼봉에게 소림 무술의 비의를 깨우쳐주어 그가 무당파를 창시하는 길을 터주었으므로, 곽양이 창건한 아미파가 무림 배분상 무당파보다 앞선다"는 현대건설 김관언 소장님의 학설이 타당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화산파(華山派)는 섬서성 화산에서 속가와 도가가 어울려 발전한 정통 검파(劍派)죠. 무협영화에 자하신공, 옥녀심공, 매화검법 등의 표현이 나온다면 그건 틀림없이 화산파 이야기입니다. 화산 연화봉 정상에 옥녀지라는 한담(寒潭)이 있고, 매화검법의 극의를 터득하면 무형의 강기가 매화향과 아울러 붉은빛 안개를 뿌린다 하여 화산파 본당건물 이름도 자하각(紫霞閣)이니까요.


    무당파(武當派)는 호북성 무당산에 본거지를 둔 도가무학의 본류이며, 소림무예와 더불어 중원무학의 2대지류를 이룹니다. 소림 무술이 강한 발력(發力) 위주의 외가공부(外家功夫)인데 반해 무당파의 무학은 발경(發勁) 위주의 내가공부(內家功夫)랍니다. 무예의 비의를 터득한 장삼봉 조사는 만년에 태극신공(太極神功)과 태극신권(太極神拳)을 창시하는데, 오늘날 공원에 모인 중국 남녀노소가 부드럽게 원을 그리면서 하는 권법체조가 여기에 뿌리를 둔 태극권이죠.


    프랑스의 지성이자 양심인 기 소르망은 2005년 중국을 직접 돌아보고 쓴 책에서 무당산의 서글픈 근황을 들려줍니다. "무당산에는 5세기 동안이나 속세를 피하는 은자들을 받아들여 온 유명한 수도원이 있다. 옛날에는 그곳에 가려면 오솔길들을 따라 여러 개의 숲을 가로질러, 수천 개의 계단을 기어 올라가야 했었다. 지금은 케이블카가 관광객들을 그곳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그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이제 그림엽서와 종교적인 싸구려 잡동사니들을 파는 장사치들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모습은 머리에 쓴 노란 모자로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최후의 순례자들이 몇 명 있기는 하다. 카메라를 든 소란스런 관광객들 무리에 둘러싸여 그들은 신에게 기도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 보시오. 중국에서 이제 다시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허용되고 있는지!"(중국이라는 거짓말, 문학세계사)


     무당파 도사들의 전성시절을 상상하고 싶으시다면 오늘날 무당산의 몰골을 구경하기보다는 차라리 영화 와호장룡(臥虎裝龍)의 짐짓 장엄한 비장미를 감상하는 쪽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주인공 이모백(주윤발)은 무당의 장문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수련도중 득도하고 무당산을 떠난 절세 초고수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윤발은 以柔制强하는 무당의 보법, 신법, 검법을, 거의 제이미 폭스가 레이 찰스 흉내를 구사하는 수준으로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주윤발은 성냥개비를 씹는 총잡이로 유명해졌지만, 과연 왕년에 무협영화로 잔뼈가 굵은 홍콩배우였더군요. (주윤발이라고 표기하면서 장쯔이라고 쓰려니 앞뒤가 안 맞지만, 그렇다고 초우연팟이라고 쓰긴 싫군요.) 와호장룡은 왕도려(王度廬)의 5부작 소설 학경곤륜(鶴驚昆侖), 보검금채(寶劍金釵), 검기주광(劍氣珠光), 와호장룡(臥虎藏龍), 철기은병(鐵騎銀甁) 중 제4권을 영화화 한 것으로, 주윤발이 연기했던 이모백(李慕白)은 3-4권에, 장쯔이가 분한 옥교룡(玉嬌龍)은 4-5권에 등장합니다.


    청조 광서제 무렵 신강지방에는 도적 나소호(羅小虎, 장진 분) 일당이 출몰합니다. 옥서대인의 딸 옥교룡은 이들의 습격을 받지만 뛰어난 무예로 위기를 넘깁니다. (그녀의 글공부 사부인 고낭추가 남몰래 무공을 전수해 주었던 거죠.) 옥교룡은 나소호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는 신강 사막에 포로처럼 남아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 깨달은 바 있어 무당산을 떠난 이모백은 왕부로 찾아가 자신의 보검인 청명검을 바칩니다. 그는 유수련(兪秀蓮, 양자경 분)과 다시 해후하는데,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맺어질 수 없는 사이지요. 그런데, 왕부에 보관된 청명검이 사라집니다. 모두들 사악한 노파 벽안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잠입한 복면인과 손수 겨뤄보았던 유수련은 내심 옥교룡을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이모백이 옥교룡을 찾아갔을 때 이미 청명검은 벽안호의 수중에 들어가 있습니다. 벽안호는 제자인 옥교룡을 질시하여 미향으로 중독시키고, 이모백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방심한 틈을 타 그마저 처치하죠.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선입견, 자신의 재능이나 미모를 탐내는 모든 주변사람들을 거부하고 반항을 일삼던 옥교룡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자였습니다. 권위에 대항하고 반발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사람에게 결국 타자성(otherness)이란, 마치 자신이 기대고 선 벽과도 같은 것이죠. 그런 사람은 정작 자신의 소망조차 순조롭게 성취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와호장룡의 마지막 대목에서 옥교룡은 무당산 절벽에서 몸을 날려 세상에는 죽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후속편인 철기은병에는 외롭게 늙어가는 그녀가 혼자 자식을 키우며 간난신고를 겪는 모습이 나오죠.


    무협지는 한자문명권에서 드물게 살아남아 번성하고 있는 환상소설의 분야입니다. 서양에서 환상소설이 한 편으로는 과학소설과, 다른 한 편으로는 주류문학(카프카, 포우, 보르헤스 등)과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수준을 높이고 독자를 넓혀온 데 비해, 무협지는 대만작가 김용의 금자탑 같은 성취 이래 이렇다 할 발전 없이 싸구려 오락물로 전락해버린 아쉬움이 있죠. 대만인 이안 감독은 오리엔탈리즘의 틈새를 영리하게 파고든 이 영화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한 4개의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무협영화로서 최고의 경지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동양적 환타지의 명맥이 서구 영화시장을 파고드는 데 산뜻하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저는 와호장룡에 큰 박수를 보낼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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