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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truck (1987)

posted Dec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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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달빛의 농간이다

프랑스 영화  <Neuf Mois>를 각색한 1995년 미국영화 <Nine Months>는 휴 그란트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었다. 이 영화에는 로빈 윌리엄즈가 코세비치라는 이름의 돌팔이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하는데, 주인공 내외가 출산하러 찾아간 산부인과 응급실은 지하철 역처럼 붐비는 아수라장이었다. 의사 코세비치는 소리친다. "오늘 아이 받느라 너무 바빠요. 보름달이거든요."

보름달이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보름에 출산하는 산모들은 실제로도 많다. 못 믿겠거든 주변 사람들의 음력 생일을 물어보고 다녀도 좋다. (나로 말하자면, 보름 중에서도 왕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날 태어났다.) 왜 그럴까? 일설에 의하면, 그 이유는 인간이 다른 맹수들에 비해서 어둠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단다. 아이와 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름이 다가올 무렵에 출산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보름 무렵에 출산을 하자면 여자의 몸이 달의 주기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월경주기는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28일 정도와 대체로 일치하게끔 진화했다는 것이다.

달은 이태백과 방아 찧는 토끼의 놀이터일 뿐 아니라, 지구의 자전과 공전궤도를 붙들어주는 균형추이기도 하고, 바다와 여자의 몸을 부풀리기도 가라앉히기도 하는 신비한 장치인 것이다. 지금 달은 매일 지구로부터 4센티미터씩 멀어져 30억년 후에는 떠돌이 위성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아, 그러면 그때는 썰물도 밀물도 사라지겠지. 길잡이를 잃은 여자의 몸은 무엇에 기대어 출산을 가늠할 건가. 하긴, 30억년 후에도 인류가 살아남으리라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위대한 달이 여자의 몸에만 영항을 미칠 리는 없다. 예로부터 달은 사람의 정신을 일상이 아닌 다른 어떤 상태로 고양시킨다고 여겼다. lunatic이라는 단어는 그런 믿음을 모태로 탄생했다. 만월이 되면 변신하는 늑대인간의 전승은 하나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요즘 서점가에서 판매부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하는 얘기다.

   "insane은 아마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야. 그에 비해 lunatic은 달에 의해, 즉 luna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긴 것. 19세기의 영국에서는 lunatic이라고 판정받은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를 한 등급 감해줬어. 그 사람의 책임이라기보다 달빛에 홀렸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법률이 실제로 존재했어. 즉 달이 인간의 정신을 어긋나게 한다는 걸 법률적으로도 인정했던 거야."

lunatic과 흡사한 표현으로 moonstruck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1) 미친, 발광한 (점성학에서 미치는 것은 달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였음) (2) 감상적 공상에 빠진, 멍한, 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또한, 이 단어는 노련한 대가 노먼 주이슨이 감독한 1987년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Moonstruck>은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수 겸 배우 셰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뉴욕 브루클린 근처의 이태리계 미국인들의 거주지가 무대다. 로레타(셰어)는 이 동네에서 회계사 노릇을 하는 서른 일곱살의 노처녀다. 그녀의 오랜 남자친구 조니(대니 아옐로)는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그녀는 기꺼이 수락한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 이탈리아 여성답게도 - 만일 상대방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결혼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조니는 결혼준비를 위해 이태리로 떠나면서, 로레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좋지 않은 일로 의절하다시피 한 자기 동생 로니(니콜라스 케이지)를 결혼식에 참석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그런데 로니를 찾아간 로레타는 그를 설득하다가 그만 그에게 반해 동침을 하고 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걸려 있었다는 것 말고는. 다음날 아침, 로레타는 어젯밤을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한다. 며칠 후, 다시 그녀를 찾아온 로니는 그녀를 오페라 공연에 초대한다. 만일 그녀가 응해준다면 그 다음날로 조용히 떠나주겠다며.

그녀의 마음과 그녀의 의지가 서로 싸운다. 결국 로레타는 오페라 극장에 나타난다. 그냥 나타나는 게 아니다. 머리를 염색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서다. 셰어가 사랑의 열병에 빠져 설레는 여인을 연기하는 대목이다. 이 표정과 몸짓 연기만으로도 그녀는 여우주연상 감이었다. 그녀는 극장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옳았다. 그녀도 그걸 알았다. 그런데 왜 거기 왔을까? 그날도 하늘에는 보름달이 부푼 자태를 뽐내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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