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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mega Man

posted Apr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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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밤하늘에서인가, 별 하나가 스러졌을 겁니다. 5년간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던 찰턴 헤스턴이 지난 4월 6일 향년 84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모세였고, 세례요한이었으며, 벤허였고, 미켈란젤로였으며, 엘 시드였고, 안토니우스 장군이었죠. 그를 빼놓고는 50년대와 60년대 헐리우드의 대형 서사극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근엄하면서도 장중한 그의 표정과 몸짓은 언제나 영웅적 비장미를 풍겼기 때문에 그는 최소한 두 편의 히트 영화에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마 가장 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진 영화들 중 하나일 <Planet of the Apes>(1968)가 그 하나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The Omega Man>(1971)이 다른 한 편이죠.


    191cm 장신에 굴곡이 뚜렷한 얼굴, 진지한 표정을 지닌 그에게는 ‘최후의 인간’ 역할이 사뭇 잘 어울렸던 게 틀림없습니다. 전설이라는 관념을 체화하고 있었으므로, 찰턴 헤스턴의 이미지는 하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줄곧 비극적 군인, 고독한 지도자, 또는 천재적 예술가였죠. 그래서 벤허의 전차경주 장면은 삶이 주는 역경과 거기 지지 않으려는 인간 사이의 싸움을 동영상으로 포착한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그랬기 때문에 이를테면 <Almost an Angel>(1990) 같은 영화에서처럼 사람이 ‘신’을 연기할 필요가 있었을 때, 그가 신의 역할로 나오면 관객들은 놀라기 보다는 안심을 했던 것이지요.


    영화 <The Omega Man>의 원작소설인 리처드 매더슨의 소설 <I Am Legend>는 지금까지 세 번 영화화 되었죠.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1964년 영화 <The Last Man on Earth>, 1971년의 <The Omega Man>, 윌 스미스 주연의 2007년 영화 <I Am Legend>. 그 중 <The Omega Man>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중국과 소련 사이의 생물무기 전쟁이 발발한지 2년이 지난 1977년, 지구상의 인구는 거의 절멸됩니다. 군사과학자였던 로버트 네빌 대령(헤스턴)은 실험용 백신을 투여한 덕분에 생물무기에 의한 파멸로부터 살아남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는 그 말고도 일군의 생존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세균에 감염되어 정신상태가 공격적이고 망상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도 백색증(알비노)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빛을 무서워하는 변종인간들이 된 것이죠.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전직 TV 리포터를 리더 삼아, 그들은 집단적으로 행동하면서 현대과학과 그 상징물들을 모두 파괴합니다. 스스로를 가족(The Family)라고 부르는 그들은 이른바 ‘바퀴 사용자’인 네빌 대령을 죽이려 들지요.


    네빌은 낮이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구하고 밤이면 요새화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족’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어쩌다가 사로잡혀 화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그를 또 다른 그룹이 구출해 줍니다. 이들 제3의 집단은 세균에 상당한 면역을 지닌 어린 아이들 덕분에 병세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이 그룹의 지도자는 리사라는 여성입니다. 네빌은 자신의 면역력을 이용한 백신을 만들어 병세가 진행중이던 청년에게 투여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덕에 치유된 청년은 열정에 들떠서 ‘가족’의 우두머리를 찾아가 함께 치료를 받자고 권유합니다. 두목은 청년을 네빌의 첩자라고 부르며 처형하고 말죠. 그를 찾아 나섰던 네빌은 어둠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피난처로 돌아오지만, 그새 병세가 악화되어버린 리사는 그를 배신합니다. 치료혈청이 완성되면 네빌은 리사와 함께 먼 곳으로 도망칠 참이었습니다. 피난처에서 기관총으로 ‘가족’들에 대항하려던 네빌은 창에 찔리고 맙니다. 다음날 아침, 그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네빌은 죽어가며 자신의 혈청을 건네줍니다.


    창에 찔린 채 피를 건네는 네빌의 모습은 이 영화가 기독교적 구원신학의 알레고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해줍니다. 모세, 벤허, 세례요한 등의 역할로 기독교 서사극에 자주 출연했던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그런 인상을 더 짙게 해 줍니다. 오메가(Ω)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최후’를 의미합니다. 오메가가 ‘최후’를 뜻하는 기호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성서 덕분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사도 요한이 적은 계시록에는 ‘알파요 오메가’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이것은 오메가라는 기호가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무렵 살인죄로 기소된 찰스 맨슨이라는 자는 6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맨슨 가족(Manson Family)’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을 이끌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영화 속 집단의 명칭에는 맨슨 사건으로부터 전해진 울림도 포함되어 있었을 터입니다. 마치 <The Omega Man>의 ‘가족’ 처럼 맨슨이 이끌던 단체는 종말론적 인종청소 전쟁을 공언하고 있었으니까요. 맨슨의 신앙은 그가 전과자로서 여러 교도기관들을 떠돌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는군요. 요즘도 사이비 종교집단들의 추문은 종종 뉴스를 장식합니다.


    매더슨의 50년대 원작소설은 좀비 영화와 흡혈귀 영화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The Resident Evil>, <28 Days Later> 같은 영화들은 매더슨의 소설에 매우 가까이 근접하고 있어서, 윌 스미스를 주연으로 기용해 소설을 세 번째로 영화화한 <I Am Legend>는 이들 좀비 영화들을 흉내 낸 것처럼 보일 정도죠. 영화 <I Am Legend>에 등장하는 세균감염 생존자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움직이고, 울부짖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이들 감염자들은 민첩하고 박력있는 좀비들로 재탄생한 것이죠. 이 영화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그려낸 황폐한 맨하탄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대단히 인상 깊습니다. 윌 스미스는 날렵하고, 섹시하고, 비관주의와 외롭게 싸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죠. 찰턴 헤스턴처럼 최후의 인류를 대표하는 듯한 종말론적 비장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70년대의 냉전적 대치상황과 강대국간 핵전쟁의 공포를 반영하던 <The Omega Man>은 21세기 영화인 <I Am Legend>에서는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불안감에 대한 비유로 바뀐 셈입니다. 오늘날은 그런 시대입니다. 익명의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의 불행에 대한 화풀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섞여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백색증 따위의 알아보기 쉬운 표식을 지니지도, 자외선에 거부반응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던 이웃이 어느 날 비행기를 납치해 건물로 돌진하고, 남대문에 불을 지르고,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어린 여학생을 폭행하기도 하는 것이죠. 우리 속의 맹수들을 치유할 혈청은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모두 오메가 맨이 되는 심정으로 도덕이라는 항체를 몸속에 키워 이웃에게 나눠주는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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