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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ter's Ball

posted Jan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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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살아있다는 확인이다 -

중세시대 영국에서는 사형을 기다리는 수형자들을 ‘괴물(monsters)’이라고 불렀다. 사형집행 전날, 사형수들은 날이 밝으면 처형될 동료를 위한 송별회로 ‘괴물들의 잔치(monster's ball)’를 벌여주었다고 한다. 영화 <Monster's Ball>은 미국 루이지애나의 형무소에 간수로 근무하는 사나이와 거기에 복역중인 사형수를 남편으로 둔 여인의 이야기다. 2002년 이 영화로 할리 베리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이 되었다.

행크(빌리 밥 쏜튼)는 죄수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간수다. 그의 아들(히쓰 레져) 쏘니도 같은 형무소의 간수로 근무한다. 행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상하건만, 유독 죽은 아내를 닮은 아들 쏘니는 차갑게 대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던 쏘니는 행크와 심하게 다툰 뒤 권총으로 자살한다. 레티샤(할리 베리)는 과식 습관을 가진 아들을 둔 흑인 여성이다. 그녀의 남편은 행크가 근무하는 형무소에 사형수로 복역하다가 결국 유서를 한 장 남기고 사형을 당하는데, 사형을 집행한 사람은 행크였다.

평생 근무하던 형무소를 그만두고 간수복을 불에 태운 뒤에도 자책감으로 괴로와하던 행크는, 삶의 의지를 잃고 절망의 늪에 빠진 레티샤를 우연히 만난다. 폭우 속에서 레티샤의 아들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들을 병원에 데려다준 건 우연이 그 옆을 지나던 행크였다. 그날 밤 레티샤는 결국 아들마저 잃는다. 슬픔 속에서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레티샤를 행크는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격렬한 슬픔 속에서, 두 남녀는 몸을 섞는다. 이들은 분명 뭔가를 나누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처절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들이 함께 보듬어 안는 격한 슬픔은 목적 없는 격정을 닮아 보이기도 한다.

술에 취해 섹스를 나누며, “나 좋고 싶어, 나를 좋게 해줘요(I wanna feel good. Make me feel good.)”라고 절규하는 할리 베리의 대사는, 신기하게도, <극장전>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눌 때 엄지원이 내뱉던 대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 주인공들에게, 몸으로 나누는 쾌락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성행위 장면들은 가식적인 안무나 기교적인 촬영으로 미화되어있지 않다. 그것은 가엾은 두 마리 동물들의 몸부림 같다.

이건 역설이다. 혹시 아시는가?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성행위에 몰입하는 동물은 지구상의 수 많은 종들 중 인간이 ‘거의’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 점을 신기하게 여긴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경로를 연구했다. 그 책의 제목은 <왜 섹스는 즐거운가?(Why is Sex Fun?)>다. 다이아몬드의 설명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간의 경우 여성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자신의 배란기를 널리 알리지 않는 방식의 짝짓기 전략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로써 여성들은 상대방 남성에게 자녀양육에 대한 보다 큰 투자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임기간을 모르면서도 번식이 가능하자면 불가불 ‘번식기’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섹스가 고되기만 한 작업이라면 그것이 수시로 가능하지 않을 터이므로, 유독 인간에게는 섹스가 즐겁게끔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욕정에 불타는 짐승처럼 보이던 행크와 라티샤의 동침은, 실은 이들이 인간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행위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둘의 서로에 대한 탐닉이 여기서 끝났다면, 그건 인간다운(?) 그 어떤 짓거리일 수는 있겠으되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 터이다. 행크는 레티샤 덕분에 인종적 편견을 극복할 뿐 아니라, 그에게 세상에 대한 미움을 심어주었던 병든 아버지와도 결별한다. 그는 그녀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그래서 그녀는 행크가 자기 남편의 사형집행인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그의 곁에 남기로 한다. 함께 현관 앞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던 행크는 레티샤에게 말한다. “우리, 이제 괜찮을 거요.” 여기서부터는 사랑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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