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다

posted Dec 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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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되다.란 말은 어느 정도 비난이나 폄하의 의미가 있는데, 질다.라는 것은 그다지 그런 의미는 아닌 거 같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보니 된 밥의 반대가 진 밥도 아닌 거 같다. 된 밥의 반대는 맛나게 잘 지어진 밥이 아니겠냐.  그래서 밥들을 진 정도로 줄 세워 보면 된 밥 - 잘 지어진 밥 - 진 밥 - 죽, 이런 순서가 되는 거 같다. 그렇다면, 진 밥은 죽도 밥도 아닌 그 가운데 쯤에 있는 거라 치고, 메릴 스트립이 그렇다. 뭘 시켜도 잘하지만 그건 그 업계 이야기인 거 같고,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 여자에게선 에너지도 팬터지도 찾아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죽도 밥도 아니다. 


    세상에 있었다는 것도 이미 잊어버린 그 수많은 연기 잘하고 스탭들이 좋아하던 그런 여배우 중 누구랑 바꿔 놔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 같은, 그런 배우인 듯 싶다.  꽤 오랜 동안 영화 속에서 가장 멋져 보이던 남자 캐랙터 중의 하나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데니스였다. 그 만큼, 영화도 몹시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죽도 밥도 아님은, 데니스의 상대역이 기억이 안 나서 몹시 애를 먹었던 일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영화 속의 그 여자를 다시 보면 몹시 훌륭하고 안심되긴 한다. (다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듯이 영화를 본다면 몰라도 나한테는 영화는 밥이 아니라 별식이다. 최소한 별식이기를 바라면서 먹는 것이 영화이다. 진 밥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소화가 잘 안될 때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진 밥.이라고 하니 그 여자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구나. 난 진 밥이 생각나서 찾아 먹어본 적이 없다. 죽은 가끔 잘 먹지만.


     가장 최근에 본 그 여자의 영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이다.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funny face를 다시 한 번 쭉 본 게 잘못이었는지, 그 이후로는 kay tompson과 느낌이 겹쳐버려서 당최 기억이 잘 나지 않게 되어 버린 거 같다. 메릴 스트립이란 배우는 나에게는 늘 그런 식의 이미지의 복제였다.


    내가 가장 예뻐했던 Liz는 신부의 아버지와 젊은이의 양지에서였는데, 그러고 보니 둘 다 특별히 그 여자는 한 게 없는 그런 영화였던 거 같다. 영화를 좋아했던 건지 그녀가 좋아보였던 건지를 잘 모르겠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되 진다. 그리고 영화건 사진이건, 칼라에서의 그 여자는 더 된 듯 하다. 난 아이반호에서의 그 여자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거 칼라로 봤음) 그 영화자체가 그다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하나 기억나는 것은 인터넷이 없던 그 당시 로버트 테일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부부였다고 몇 달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는 것 정도이다. 인터내셔널 벨벳에서의 테이텀 오닐은 꽤 그립다. 지금 생각해보니 4반세기가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보기 겁날 정도인 것 같다.


    난 드뷔시와 라벨을 몹시 좋아하는데(드뷔시>라벨)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들이 훌륭하단 이야기를 무지하게 너희 앞에서 강변!했던 기억이 난다.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너와 P의 이야기에 반반 동의한다. 나의 느낌은 차이코프스키 정도로 악상과 멜로디가 강한 작곡가는 비틀즈나 버트 바카락 정도가 아닌가 싶다. 분명히 그는 그 현란한 악상들을 하나로 묶는데 빈곤하긴 하지만 (아 진짜 너무 빈약해) 악상의 유려함은 최고인 거 같다.  난 차라리 차이코프스키가 20세기 후반에 미국에 태어났다면 훨씬 더 좋은 곡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야. 미국에 진출하려는 비틀즈도 차이코프스키에게 곡을 받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 결점을 애교로 봐준다면 차이코프스키가 바하에 못할 건 없다. 바하의 곡들이야말로 직업적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닌 가 싶다. 직업적 기술을 넘어서는 천재도 분명히 있지 않냐.


     지난 여름 갑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은 거 같은데 그 영화의 리즈는 분명히 우리가 아는 리즈가 아니다. 리즈 테일러는 누군가가 되다고 하건, 말건 그 바닥(industry)에서 최고의 아이콘이었고, 그녀는 누군가가 뭐라고 하건 말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 당시의 리즈는 이미 너무 늙어서 우리가 상정하는 무언가 외의 무언가를 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리즈가 배우답게 보였던 최초의 영화는 sandpiper였는데 아무도 그 영화를 칭찬하지 않고 기억도 못한다. 나도 그게 서럽지 않다. 그 영화의 가장 좋았던 것은 음악이었던 것 같아서 그렇다.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봐라. 난 못찾겠어. 정말 좋았다고 기억한다. 이 기억은 틀리지 않을 듯) 아무튼, 젊었던 때의 리즈는 꽤나 부담스러웠나보다. 그리고 이런 옛날 배우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당혹스러운 부분은 어느 영화를 누가 언제 먼저 봤는지를 몰라서 그렇기 때문인데.. 내가 말했던 리즈의 영화는 모두 15세 이전에 봤던 거 같다.


    이렇게 주저리를 주고 받으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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