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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rise (1995), Before Sunset (2004)

posted Dec 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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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다

연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좀처럼 빼놓기 어려운 영화가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이다. 9년의 간격을 두고 로맨틱 드라마의 속편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진기록이다. <Godfather>의 2편과 3편 사이에 16년의 세월이 있고, <Rambo> 제3편이 나온지 10년이 지나 4편이 제작된 일도 있지만, 멜로물에선 이런 일이 아주 드물다.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1966)의 끌로드 를로슈 감독이 그때 그 배우들(아누크 애메와 장루이 트리티냥)을 기용해서 20년만에 속편을 제작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런데 20년이라는 세월의 낙차는 지나치게 커서, 세대교체가 되어버린 극장의 주소비층에게 일관성 있는 호소력을 갖긴 어려웠다. 진정한 의미의 속편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기념물처럼 되었다고나 할까.

<Before Sunrise>로부터 9년 후에 만들어진 <Before Sunset>은 전편의 소비자였던 바로 그 관객층의 감성을, 너무 늦지 않게 다시 한 번 자극한다. 이 두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9년의 세월은, 마치 한 연극 속의 계산된 암전(暗轉) 또는 중간휴식시간처럼, 영화 속 현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적 장치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9년이 짧지 않은 세월이긴 하지만, 다시 만난 남녀 주인공들은 아직도 매력적인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그러므로 영화의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는 상태였다. 1952년 <High Noon>이 85분간 벌어지는 사건을 85분의 러닝 타임 속에 담아냈던 것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실시간 영화체험’을 제공하는 실험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후편의 제목이 After Sunrise인지, Before Sunset인지, After Sunset인지 매번 헛갈린다는 점만은 개인적으로 좀 짜증스러운 부분이다.

유럽을 여행중이던 미국 청년 제시(에단 호크)는 기차에서 프랑스 처녀 셀린(줄리 델피)을 만난다. 제시는 비엔나에서 여정을 마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고, 셀린은 할머니를 찾아가는 중이다. 제시는 셀린에게 비엔나에서 함께 내려 새벽 비행기 시간까지 벗해달라고 제안한다. “10년 또는 20년 후에 다른 남자를 사귀어봤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당신이 하게 될는지 누가 아느냐”는 서툰 수작으로 미루어 그는 선수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녀는 제안을 수락한다. 잠시 후 영영 헤어질 사람에게가 아니라면 아마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속얘기들을 나누던 두 사람은, 비엔나의 석양을 배경으로 입맞춤을 나눈다. 함께 밤을 지샌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 서로에 대한 호감을 고백하고, 기차역에서 헤어지면서 6개월 후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특별한 줄거리랄 것도 없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수다를 끊임없이 비춰줄 뿐인데도, 영화는 감미롭다. 두 사람이 밤을 지새며 나누는 인생과 종교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즉흥적이고, 사적이고, 치기 어린 내용이지만, 진솔하다. 덕분에 이들의 연애는 실감난다.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 그러나 거짓은 아닌 말들. 맞아 맞아, 처음 만난 연인들은 저렇게들 굴지. 에릭 로머(Éric Rohmer)나 홍상수 작품의 청소년판 같다고 해야 할지.

관객들은 두 주인공이 6개월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나름대로 상상하며 극장문을 나섰다. 그리고 9년이 흘렀다. 속편인 <Before Sunset>에서, 제시는 셀린과의 하룻밤 추억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다. 그는 유럽을 순회하고 마지막 여정인 파리에 와서 사인회를 가지는데, 셀린이 거기 나타난다. 9년 전 그들은 재회하지 못했던 거다. 제시는 비엔나에 다시 갔지만 셀린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약속을 못 지켰다고 말한다. 제시의 출발 비행기 시간까지 두 사람은 파리를 거닐며 추억을 나눈다. 제시는 결혼을 해서 아들을 두고 있고, 셀린은 사진기자와 교제중이다. 둘 다 9년전의 하룻밤을 인생 최고의 경험으로 여기고 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재회의 시간마저 자꾸 흘러가는데, 두 사람은 '영화 같은' 멋진 대사 대신 객쩍은 얘기만 자꾸 주고받는다. 그녀가 말한다.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어요." 그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한다. "알아요."

제목이 말해주듯이, 전편이 밤중의 대화인 반면, 후편은 낮의 대화다. 밤의 언어와 낮의 언어는 다르다. 어린 시절의 연애가 몽롱하고 감미로운 밤의 언어로 이루어진다면, 어른들의 연애는 일상의 언어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감상적이 되기엔 뻘쭘한, 그런 나이란 게 있는 법이다. 그래서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은 그 제목만으로도 ‘어른되기의 어려움’을 잘 요약해 준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의 목록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징성 강한 간결한 영화제목 조차 곧잘 헛갈려 하는 일도 거기 포함되나보다.) 제시와 셀린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전편에서처럼, 상상은 여전히 관객의 몫이다. 사랑을 쟁취하는 것도, 지키는 것도, 화답 받는 것도,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도, 다 뜻대로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 자체를 비관하거나 저주할 필요는 없다. 맘먹는 대로 어쩌지 못한다 해서, 사랑이 사랑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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