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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ary Road(2008)

posted Nov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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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만 아름답다


이루어진 사랑, 결실을 맺은 연애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읊어대는 노래나 시를 보신 일이 있으신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긴 사연과 후일담은 옛날부터 무수히 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시, 소설, 가요, 오페라, 연극, 영화.... 예를 굳이 나열하기가 난감할 정도다. 하지만 두 연인이 결합한 지점부터 시작하는 얘기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루어진 사랑은 사람의 가슴을 덩덩 울리는 힘이 없는 걸까? 아니면, 연인의 결합이 인생의 찬란한 클라이막스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내리막 밖에 없기 때문인 걸까?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지금껏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았던 게 뭐였나요?"라는 질문을 즐겨 한다.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단골로 고르는 영화들 중에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97년 작품 <Titanic>이 들어 있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 레너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타이타닉 선상에서 뜨겁고 충동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남자의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다.

<Titanic>에서 맺어지지 못했던 이 두 커플이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케이트 윈슬렛의 남편인 영국인 감독 샘 맨데즈의 2008년 영화 <Revolutionary Road>다. 리처드 예이츠의 1961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나는 소설을 미리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첫머리에서 두 사람이 달착지근한 연애를 나누다가 결혼에 이르는 걸 보면서 어쩐지 <Titanic>에서 꾸어준 뭔가를 되챙겨 받은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웬걸! 그런 게 아니었다. 근년에 본 적지 않은 영화들 중에 내게 이 영화만큼 불편한 앙금을 남긴 것도 없었다. 어찌나 뒤숭숭한지 잠도 잘 오지 않더라.

프랭크(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윈슬렛)은 어느 파티장에서 만난다. 에이프릴은 연기자 지망생이다. 둘은 결혼한다. 에이프릴은 주연을 맡았던 연극에서 혹평을 받는다. 연극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서 심기가 뒤틀린 그녀와, 그녀를 서툴게 위로해 보려던 그는 격렬한 언쟁을 벌인다. 그 싸움이 어찌나 실감나는지, 영화의 후반부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묵지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난 뒤, 프랭크와 에이프릴 내외는 코네티컷 교외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아담한 집을 장만한다. 프랭크는 기계판매회사에 취직해 있고, 둘 사이에는 두 자녀가 있다. 에이프릴은 배우의 꿈을 접은지 오래다. 이 둘은 이웃의 시샘을 사는 선남선녀 커플이지만 정작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그는 가정에서 채우지 못한 허전함을 밖에서 채우려 들고, 그녀는 꿈을 접고 살아가는 살림이 갑갑하기만 하다. 어느 날, 그녀는 그에게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이민을 가자고 제안한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그들의 새로운 꿈이 현실 앞에 좌절당하면서 이들 부부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멘데즈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상업적으로도 비교적 성공했고, 개봉 당시 평도 비교적 좋았다. 두 주연배우의 호연도 돋보였는데, 특히 케이트 윈슬렛은 여우주연상감의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아카데미 후보 지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녀가 같은 해 아카데미 시상에서 <The Reader>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상을 두 개 줄 순 없잖은가.)

아마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중산층의 평범한 결혼생활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좌절을 그린 영화라면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American Beauty> 같은 영화도 있고 (공교롭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이 영화 또한 샘 맨데즈 감독의 작품이다!), 국산 영화 중에도 <바람난 가족> 같은 것이 있긴 하다. 하지만 <Revolutionary Road>만큼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커플이 <Titanic>에서 미리 만들어 놓았던 화학작용을 이어간 점이 그런 공감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었을 터이다. 더구나, <Revolutionary Road>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징그러운 거다.

누구나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 같은 달콤한 연애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게 남들 보기에 괜찮을 정도로 우리 삶을 포장하는 법을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밥벌이의 일상에 숨막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저마다 접어버린 꿈에 대한 아쉬움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각자 그 나름의 ‘갈 수 없는 나라’, 저마다의 ‘프랑스 파리’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행복한 결혼생활이라도 그 속엔 - 정도의 차이가 있을 망정 - 사랑의 환상을 팍삭 깨 버리는 부부싸움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확실히는 몰라도 아마 그럴 거다.)

결혼생활의 총체적인 견적이 한심스럽고 서글프기만 한 것일 리야 없겠지만, <Revolutionary Road>는 서로 사랑해서 맺어진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서로의 삶 속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너무나도 샅샅이, 그리고 큰 소리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낯선 갈등을 거쳐 가면서 서로에 대한 기대를, 또 자기 스스로를 적당히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만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건지도 모른다. 또는, 처음 만나서 연애하는 동안에는 저절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던 둘 사이의 애정은 결혼생활에 접어든 이후부터는 어른스런 절제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아주 느리고 완만하게 완성도를 높여 갈 수 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험난한 인생을 배우자와 함께 헤쳐 나갈 저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충격을 성숙하게 소화할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최소한 결혼을 앞두고 있는 후배들에게는 보지 말도록 권하자고 결심했다. ‘이루어진 사랑’의 말로가 이토록 험상궂기만 할 거라고 지레 겁을 먹을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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