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Page
    • drawing
    • photos
    • cinema
    • essay
    • poems
    • music
    • toons
    • books
    • mail

McGyver

posted Feb 13,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요즘 주말은 아이들과 함께 DVD로 McGyver 시리즈를 다시 보는 재미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시죠? 최근까지 Stargate에서 오닐 대령(내지는 장군)으로 나왔던 리처드 딘 앤더슨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80년대 TV 액션물 McGyver. Stargate는 97년에 시작한 이래 미국 SF 시리즈물로서는 최장기간 방영되는 기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참고로 Star Trek의 경우는 66년부터 최근까지 명맥을 잇고 있지만 공백기간도 있었고,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국에는 Red Dwarf(11년)나 Dr. Who(44년)처럼 훨씬 오래 방영된 SF물이 있고, 미국에도 SF가 아닌 시리즈물 중에는 Lassie(20년), Law & Order(17년), MASH(11년) 같은 기록들이 있긴 합니다. 이런 기록들에는 못 미치지만, McGyver도 85년부터 92년까지 무려 7년 동안 롱런한 시리즈였습니다.


    McGyver가 방영되던 7년간은, 베를린 장벽 붕괴(89), 천안문광장 사건(89), 남아공 인종차별 종식(90), 제1차 걸프전(90), 소련의 해체(91) 등, 세계의 질서가 탈냉전이라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갈림길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McGyver가 방영되기 시작한 85년은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기에 앞서서 세계사가 드라마틱한 몸부림을 치던 무렵이기도 했었죠. 79년의 러시아의 아프간 침공, 중동에서의 전투적 지하디즘의 형성, 사담 후세인의 집권(79), 이란 인질사건(79), 폴란드 자유노조 설립(80), 레이건 미대통령의 취임(80), 대처 영국수상의 취임(83) 등 80년대 초 국제정치적 상황은 맥가이버에게 많은 일거리를 제공해주는 풍성한 첩보전의 배경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냉전질서가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증거들이거나 그렇게 된 원인들이기도 했습니다.


    시리즈의 앞부분에서, 맥가이버는 아프가니스탄에 잠입하여 소련군을 (네, "소련군"입니다!) 따돌리면서 추락한 위성의 데이터를 회수하고, 중국 반체제 인사들의 탈출을 돕고, 동독에 잠입하여 KGB 간첩들의 명단을 구해오고, 미국의 첨단기술을 훔쳐내려는 동독 간첩단을 체포하는 등 명실상부한 007급 스파이 역할을 합니다. 그는 폭발물해체 부대원으로 복무한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했죠. 마흔줄에 접어든 나이에 걸맞게 배도 좀 나오고 턱선도 무뎌지고 동작도 둔해진 그가 환경보호, 멸종위기동물보호, 과학영재발굴, 가출청소년보호, 총기사용 반대캠페인, 인종차별 반대, 빈민층 지원 같은 사회사업에 매진하는 것은 80년대 말에 들어서입니다. 그는 처음엔 자원봉사자 같은 스파이였다가 나중엔 스파이 같은 자원봉사자가 되는 거죠. 그가 정규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로서 일하던 휘닉스 재단의 정체도 처음에는 국가정보기관 같더니만 나중에는 사설 보안업체처럼 보입니다.


    종영이 가까운 92년 무렵, 맥가이버 자신도 존재를 몰랐던 그의 열아홉 살짜리 아들이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그가 “지나간 시대”의 영웅이었음을 실감합니다. 그는 스물두 살 때 중국에서 여기자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고 자신도 모르는 채 아빠가 되었던 겁니다. “이제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겠다”며 은퇴를 선언하는 맥가이버의 모습이 별로 처량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유난히 젊은 아빠였던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모험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피터 쏜튼에게 늘상 “이제 일거리 좀 제발 그만 가져오라”고 투덜대면서 낚시나 하키를 즐기고 싶어 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는 국가에 기여할 수 없게 변해버린 시대에 등을 떠밀려 은퇴한, 전직 스파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90년대 초에 쓴 유명한 책 제목처럼 그는 “The End of History”의 “the Last Man”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늙어서 한적한 산 속에서 손자와 낚시를 즐기더라도 그가 “내가 어렸을 때는...” 어쩌구 하면서 기발한 손재주를 발휘하는 일을 그만둘 리는 없겠지만 말이죠.


    이런 시대적 변화가 지금 와서 다시 보았을 때야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연속극이 맥가이버가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지 ‘무엇을 하느냐’에 관한 것이 별로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맥가이버는 미국적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절묘한 결합’이거나 ‘엉터리 잡탕’ 둘 중 하나였습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고정적인 직업도 없이 살면서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빈민들을 대변해 악덕 건물주와 싸우는가 하면, 환경보호에 앞장서는가 하면, 인기 TV 시리즈물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총기에 대한 반감을 보기 드물 정도로 드러내던 그가, 실은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악의 제국인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을 상대로 국익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자발적 국가공익요원이기도 했던 거죠.


    그러니까 맥가이버가 무슨 일을 했느냐 보다는, 그가 그 일들을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대단히 영리하게 해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는 어려움이 닥쳐도 정직하고, 성실하며, 친절하고, 명예롭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지금 봐도 McGyver가 맥빠진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은 신통합니다. 제 아이들은 “아빠, 독일(동독)에서 나오는데 왜 관 속에 몰래 숨어서 나오나요?” 등의 질문을 하더군요. 동서독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아는 세상과 너무 다른 광경을 보기 때문이죠. 저는 저대로, 핸드폰이나 이메일이 없던 세상에서 인간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 저토록 지금과 달랐었다는 사실이라든지, 9-11 이후라면 스위스 칼이 저렇게 아무 데나 반입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점 따위를 새삼 깨달으며 놀라지만, 그런 사실들이 이 연속극의 재미를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맥가이버의 손재주는 영어사전에 ‘McGyverism’이라는 새로운 낱말을 추가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극중에서 ‘그저 재미로’ 물리학을 전공한 것으로 되어 있는 그는, ‘도구를 쓰는 인간(Homo Faber)’의 진화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바로 그 점은 사내아이들에게 엄청난 매력과 흡인력을 가집니다. 이 드라마는 숱한 남성들에게 자신의 아날로그적 손기술(dexterity)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 평생 기억에 남을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맥”의 임기응변능력과 손재주, 그리고 종종 실수하면서도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다음 행동을 생각하는 그의 빠른 적응능력이 남성 팬들에게 호소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짐작컨대, 여성 팬들에게는 그가 총을 극도로 혐오하는 건강식품 애호가라는 설정, 그의 유머감각과 낙천적 성격, 무엇보다 그의 귀여운 얼굴과 ‘털털한 체 하는’ 캘리포니아식 패션 감각이 사랑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네요. 매번 매력적인 여성 상대역의 키스를 사양하진 않지만 제임스 본드처럼 느끼하게 치근덕대지 않는다는 점도 여성들에게 점수를 딴 부분일 겁니다. 물론 1981년 AIDS의 발견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있었던 탓이겠지만 말이죠.


    우연의 산물이건 (성공한 방송드라마는 흔히 여러 가지 운 좋은 우연의 결합입니다) 아니면 치밀한 기획의 성공이건 간에, 또는 냉전이 종식된 것이 그와 같은 용사들의 활약 덕분이건 아니면 그와 같은 부류들이 은퇴한 덕분이건 상관없이, 저와 저의 두 아들들은 이 오래된 드라마를 재미나게 함께 봅니다. “저렇게 편리한 물건들이 우연히 옆에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빠?” 제가 80년대에 투덜거리던 불평을 아이들 입에서 들으면서 말이죠. 이 시리즈물은 저의 아이들에게도 McGyverism의 마법을 걸었습니다. 작은 녀석은 제가 20년째 열쇠고리로 애용하고 있는 작은 스위스 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판국이죠. 맥가이버의 추억을 아이들과 공유하면서, 아이들의 기억에 남으면 좋겠다고 제가 바라는 교훈이 있다면 그건 손재주의 매혹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그것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람에게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어렴풋한 각성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0 사족 2007.02.21 1108 10
69 People under the stairs file 2007.02.20 1070 16
68 Star Trek file 2007.02.16 1259 15
67 Steinbeck & Tolkin on Journeys 2007.02.18 1726 96
66 고맙다, Trekkie로서. 2007.02.16 1069 11
» McGyver file 2007.02.13 1006 21
64 The Others file 2007.02.01 1075 15
63 Rain Man file 2007.02.01 1014 14
62 An excerp from "Fawlty Towesr" 2007.02.22 1439 13
61 sex, lies, and videotape file 2007.02.01 1246 19
60 Terminator 2: Judgement Day file 2007.01.28 1040 14
59 슈워제네거, 세월의 무게에 쇠약한 모습 file 2007.01.28 1020 9
58 Shall we dance? file 2007.01.26 1178 14
57 괴물(The Host) file 2007.01.25 1067 17
56 괴물을 보고 2007.02.26 1091 13
55 2001: A Space Odyssey file 2007.01.24 1178 20
54 Star Wars file 2007.01.21 1174 10
53 스타워즈 2007.01.21 1071 13
52 흠... 2007.01.21 1116 17
51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file 2007.01.21 1635 1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