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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e Le Bienheureux

posted Jul 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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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기도 하고,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에도 일합니다. 삶의 에너지가 충일할 때에는 마치 달리기 선수들이 ‘러너즈 하이(runner's high)’를 느끼듯이 즐거움 속에서 일할 때도 있는가 하면, 가끔은 독약을 삼키듯이 괴롭게 일할 때도 있지요. 일상에 마취되어 지내다 보면 때로는, 술이 술을 마시듯이 그저 일을 위한 일을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를 쳐다보면 지금 내가 이 일을 대체 왜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일도 있는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유럽의 어느 성공한 사업가 부부가 모처럼 시간을 내서 브라질 해변으로 휴가를 갔었답니다. 한적한 어촌 해안을 산책하다 보니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어떤 어부가 그늘에 그물을 걸어두고 그 위에 누워 자고 있더랍니다. 사업가가 참지 못하고 어부에게 훈계를 했다는군요. 남들 다 열심히 고기 잡을 때 이렇게 게으름을 부려서 언제 돈을 벌겠느냐고 말이지요. 어부가 되묻기를, 돈 벌면 뭐하냐고 했대요. 사업가는 기가 막혀서, 돈을 벌어야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릴 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부가 말하기를, 당신이 돈 벌어서 간신히 찾아온 이곳에서 나는 이미 여유 있게 잠을 자고 있는데 왜 나를 방해하느냐고 했다지요.


    도저히 딴생각이라고는 할 수도 없을 만큼 바쁘고 힘든 날, 퇴근하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필립 느와레의 젊고 우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1967년 프랑스 영화 Alexandre le Bienheuruex입니다. 오래전 국내 TV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던 영화입니다. 필립 느와레요? Nuovo Cinema Paradiso(씨네마 천국)의 늙은 영화기사 할아버지 말입니다.


    사람 좋고 힘도 좋은 농부 알렉상드르는 매일 졸음에 시달립니다. 깜박 졸라 치면 어느새 그의 아내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내어 튕기면서 그에게 다음 일거리를 지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장례식을 마치자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침대에 눕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알렉상드르를 볼 수 없습니다. 그가 기르는 강아지가 메모지와 돈이 든 바구니를 들고 식료품점이나 정육점을 순례하며 장을 보아 나르는 것입니다. 그는 소시지며 포도주 같은 음식은 물론, 악기와 보면대 까지 침대 위 천장에 끈으로 매어두고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침대를 한 발짝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의 이런 게으름에 분개한 마을사람들이 그를 찾아가지만 그의 사냥총 세례를 받을 뿐입니다. 하나 둘씩, 그에게 감화되어 일손을 놓는 사람들이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씁니다. 알렉상드르의 개를 잠시 납치해서 그를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죠. 강아지를 애타게 찾으며 집밖으로 나온 알렉상드르에게, 마을 사람들은 잠만 자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여기에 설득 당해(?) 앞으로는 잠만 자지 않겠다고 선언한 알렉상드르는, 이번에는 강아지와 함께 들로 냇가로 놀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알렉상드르를 보면서 초조해 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브라질 어부를 나무라는 사업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희극적입니다. 저 사람들이 왜 저토록 알렉상드르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 안달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영화는 왜 하는 지도 모르면서 일을 하곤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됩니다.


    이 마을에서 알렉상드르의 휴식을 이해하고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여성은 외지에서 흘러온 식품점 점원입니다. 알렉상드르는 자연스레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요. 그러던 그녀가 그의 죽은 아내를 점점 닮아가더니만, 급기야 딴생각을 하던 그의 귓가에 손가락을 딱!하고 튕기는 장면은 가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풍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닌 겝니다. 삶이 변하고 관계가 변하는 것이죠. 결국, 알렉상드르는 그녀와의 새장가를 못마땅해 하는 강아지의 의견을 따르기로 합니다.


    몇 년 전에, 리차드 래어드라는 영국 LSE 대학교수가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1) 연봉 5만불을 받고 남들은 2만5천불을 받는 상태와 (2) 연봉을 10만불 받고 남들은 20만불 받는 상태 중 어느 것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응답자가 (1)번이 더 좋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절대액수를 덜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많은 상태를 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런 건 굳이 하버드까지 찾아가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고 봅니다만.


    래어드 교수는 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1) 자기는 2주 휴가를 얻고 남들은 1주만 쉬는 경우와 (2) 자기는 4주를 쉬고 남들은 8주나 쉬는 경우 중에서 더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다수 학생들이 (2)번을 선택했습니다. 래어드 교수는 이 실험들로부터, 돈은 경쟁적인 재화이고 휴식은 비경쟁적인 재화이기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이 평균적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쉬면 전반적인 행복의 수준(즉, 사회적 효용)이 높아질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사회 전체의 평균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개인의 행복감을 증가시키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경쟁적으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세금 인상이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휴식의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행복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깔끔한 논리지요. 그런데 가만 있자.... 뭔가 좀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저는 래어드 교수의 실험이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두리뭉실한 결론을 뒷받침해 준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 실험이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참는” 인간의 못된 속성을 드러낸다고 결론짓는다면 그 또한 너무 성급한 일일 것입니다. 연봉이라는 것은 조직의 구성원이 그 조직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나타내는 저울의 눈금자와도 같습니다. 래어드 교수의 실험은 “누구나 남들보다 못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이치의 동어반복일 따름입니다. 오히려, 이 실험에서 우리는 때로 영문도 모르면서 열심히 일에 몰두하게 되는 까닭의 단서를 한 가닥 엿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재미나면서도 직관적인 실험이긴 합니다만, 위의 실험은 휴가가 (연봉과는 달리)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만일 유능한 사람에게 긴 휴가를 주는 제도가 보편화 된다면, 누구나 남들보다 짧은 휴가를 얻는 낙오자가 되기를 필사적으로 꺼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휴식의 부족이 도리어 유능함의 상징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을 찾았던 사업가는 허허 웃어버리고 자기 하던 일을 계속 하러 돌아갔을 테지요.


    영화 속에서 개와 벗삼아 저 멀리 사라져가는 알렉상드르가 몹시 부러울 뿐만 아니라 위대해보이기까지 했던 것은, 저의 속좁은 시기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렇게 달콤한 휴식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워야 할 상대는 남들이 아니라, 세간의 평가를 중시하는 알량한 자기자신이라는 점을, 알렉상드르가 느긋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휴식이 비경쟁적 재화라고요? 천만에요, 휴식은 “자기와 자기 사이”에서 다투어 얻어내야 하는, 억세게 경쟁적인 재화일 겝니다.


화사첨족. 


1. 브라질 어부에게 면박을 주는 유럽 사업가의 일화는 실제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원하는 것을 뭐든지 말해보라”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햇볕이 가리니 좀 비켜나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답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윤색한 듯한 느낌이 좀 들기도 합니다. 참고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랍니다.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었고, 살았던 연대 자체가 어긋난다는군요. 아무렴, 시대를 뛰어넘는 발상을 가지고 새로운 문명 하나를 창조하다시피 한 알렉산드로스가 유명한 노철학자를 앞에 두고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는둥 어쩌구 하면서 동화 속의 무식한 임금님 흉내를 냈을 리도 만무하겠습니다. 설사 그 일화가 역사적인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의 휴식을 부러워한 나머지 해외원정을 포기하고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았음은 확실합니다. 범인도 영웅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것이기에, 브라질 어부나 디오게네스, 또는 영화 속 프랑스 농부의 휴식은 더욱더 달콤하고 부러워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 평균적으로 한국인들은 워낙 부지런히, 또 효율적으로 일하는 근로윤리를 체득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 자체는 아마도 바람직한 일이겠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을 다소 함부로 ‘게으르다’고 폄하하는 버릇도 몸에 익은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좋은 본을 보이면서,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겠으나, 그 과정에서 알렉상드르의 휴식에 심기를 상한 마을사람들처럼 품위를 잃는다면 그것은 딱한 일이겠습니다.


3. 돌이켜 보니, 영화에서 교통사고사를 이만큼 밝게 다루고 있는 영화도 드문 것 같습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밀란 쿤데라 소설을 영화화한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프라하의 봄)의 라스트씬도 ‘밝은 교통사고사’ 장면으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자고로, 영화의 감동이 소설을 넘어선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필립 카우프만이 1988년 감독한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의 라스트씬에 만큼은 소설의 결말보다 점수를 더 주고 싶었습니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느낌을 영화는 전하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토마스와 테리자가 현실의 굴레 너머 저 편의 행복을 찾아 떠난 것 같은, 모순되고 슬픈 느낌 말입니다.


4. Alexandre le Bienheureux에서, 알렉상드르의 아내는 그를 간드러진 목소리로 “mon cheri(내 사랑)”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노예처럼 부려먹습니다. 그처럼 호칭과 내용이 괴리되는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알렉상드르는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인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습니다. 끝까지 “le chien(개야)”라고 부르지요. 그것은 재미난 반어법입니다. 마치 자식 사랑이 유별난 요즘 엄마들이 이름대신 “아들-”이라고 부르듯이 말입니다.


   침대에 누워 개를 하인처럼 부리는 주인, 주인보다 영리하면서도 충직하게 밥벌이를 해 오면서 주인의 곁을 지키는 개.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개와 주인.... 다른 어디에선가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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