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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Good As It Gets

posted May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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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비열하고 건방지고 무례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랜 세월동안 섹시한 남자 배우로 군림해 왔다. 이상한 조합이다. <Easy Rider>나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등의 영화에서 니콜슨은 자신의 섹시함을 한껏 과시하기도 했다. 50세가 되던 해에도 <The Witches of Eastwick>에 악마로 등장해서 젊은 세 여인을 농락하는 역할을 능글맞게 해냈다. 비록 그의 개성을 하나씩 분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비열하고 무례하기 때문에 그가 섹시해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섹시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은, 그만이 누릴 줄 아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여유로움이 아니었을까.

<One Flew Over the Cookoo's Nest>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처럼, 잭 니콜슨은 무리에 속하지 않는 것 같은 여유만만한 태도가 잘 어울린다. 그런 자신만만함의 근거는 그의 거대한 자아(ego)인 것처럼 보인다. 비록 ‘사이즈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거대한 자아는 어쩔 수 없이 색다른 매력을 내뿜기 마련인가보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있으랴. 자신의 독특한 매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던 잭 니콜슨도 환갑이 되면서부터는 자신의 추한 면모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진 것처럼 보인다.

최근작인 <The Departed>에서 건달 두목으로 출연한 니콜슨은 거의 연기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연로했지만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하급장교를 향해 “너는 진실을 다룰 자격이 없어!(You can't handle the truth)”라고 사자후를 토하던 <A Few Good Men>에서의 모습조차 간 곳이 없어져 버렸다. 37년생인 그가 흐르는 세월을 달관하기로 결심한 것은 환갑을 맞던 1997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 해에 그는 <As Good as It Gets>에서 심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소설가 멜빈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그는 마치 작심한듯, 모든 가식적인 매력을 벗어던져버린다. 이 영화의 멜빈은 행여나 실생활에서 마주치게 될까 두려운, 비열하고 건방지고 무례하고 공격적인 성품의 노친네다. 이런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영화로 그는 76년 <One Flew Over the Cookoo's Nest>에 이어 두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로서는 22년만의 성취였다.

멜빈은 성공한 소설가지만 성격이 괴팍해서 친구도 없는데다 강박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고령의 독신남이다. (로멘틱 코메디 주인공으로서 가장 부적합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매일 똑같은 레스토랑의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웨이트레스의 시중을 받아야만 한다. 그의 담당 웨이트레스가 되어버린 캐롤(헬렌 헌트) 입장에서는 성마르고 신경질적인 그가 단골이긴 하지만 반가운 손님일 수는 없다.

멜빈은 집에서 글을 쓰는데, 그의 이웃인 사이먼은 그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동성애자인데다가 그가 지독히 싫어하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다. 어느날, 사이먼은 강도를 당하고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이먼은 파산 상태가 되어 간호사나 가정부를 고용할 수도 없고 아파트도 내놔야 하는 처지가 된다. 멜빈의 출판 에이전트인 프랭크는 이웃으로서 사이먼을 도와줄 것을 멜빈에게 권한다. 사이먼도 애처로운 표정으로 멜빈의 도움을 구한다. 멜빈은 사이먼을 여전히 싫어하지만 그의 개와는 점점 정이 들어간다. 멜빈의 입장에서 보자면, 생활의 질서가 갑자기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레스토랑에 찾아간 멜빈은 캐롤이 일하러 나오지 않은 걸 발견한다. 미혼모인 캐롤은 아들의 천식발작을 간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멜빈은 자신의 강박증 치료를 위해서는 일정한 웨이트레스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핑계로 캐롤의 아들 치료비를 부담한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캐롤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느날 비에 흠뻑 젖은 채 다짜고짜 멜빈을 찾아온 그녀는 “당신과 결코 동침할 생각은 없다”고 소리친다. 이제야 이들 둘 사이의 진정한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남들에게 험담만 일삼던 멜빈은 그 동안 내심 좋아하던 캐롤에게도 크고 작은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그녀에게 바칠 찬사가 있다고 말한다. 캐롤은 “난 당신이 또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할까봐 겁부터 나요”라고 말한다. 멜빈은 뜬금없이 의사가 자기에게 강박증 치료를 위한 약을 강권하고 있다는 이야기며, 그 약의 치료효과에 관한 의사의 견해며, 또 자기가 얼마나 약을 먹기 싫어하는 지를 두서없이 길게 늘어놓는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멜빈 : 내 말은, 당신이 나한테 찾아왔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내가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거요.
  캐롤 : 그런 얘기가 어째서 저에 대한 찬사가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멜빈 :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그동안 애간장을 녹일 듯한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을 봤지만 이보다 더 깊이 심금을 울리는 사랑 고백을 들어본 일이 나는 없다. 영어에서 Man이라는 단어는 남자라는 뜻도 되고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이 문장은 “당신 때문에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다”와 동시에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중의적인 뜻을 가진다. 가령,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le 이라든지, a better person이라고 둘 중 어느 한 쪽만을 의미하는 단어를 썼다면 감동은 오히려 줄었으리라.

사랑에 빠진 남자의 가슴 속에서, ‘그녀를 위해 더 나은 배필이 되어주고 싶다’는 욕망은, ‘그녀가 자랑할 수 있도록 더 훌륭한 인간이 되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과 겹친다. 사랑이 우리를 고양시키는 이유, 사랑을 하는 동안 인간이 고상하게 변하는 비밀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당신 주변의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당신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라.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이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As Good As It Gets>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비루한 처지에 빠진 주인공들을 선택했을 터이다. 환갑에 접어든 잭 니콜슨은 그 역할에 멋지게 부응했고, 더없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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