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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2001)

posted Jan 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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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망각과의 싸움이다 -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형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다. 영화 <Iris>는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다가 1999년 80세의 일기로 사망한 진 아이리스 머독 여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일랜드 태생인 머독은 영국에서 작가이자 철학자로 활동했다.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녀는 영국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하는 젊은 시절의 머독은 옥스포드에서 만난 존 베일리와 결혼을 한다. 1956년의 일이다. 그녀는 지적인데다 사교적이고 활달하면서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베일리는 신사적이지만 서툴고 소심하고 외모도 그저 그런 책상물림이다. 케이트 윈슬렛은 어찌 보면 예쁘고, 어찌 보면 촌스럽다. 그녀는 꾸밈없는 활력을 지닌 자연미인의 역할에 잘 어울린다. 이 영화에서 윈슬렛은 악의 없이 남편의 속을 태우는 똑똑한 미인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그 둘의 사랑에는 어딘가 지배와 복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녀의 사랑은 베푸는 것이고, 그의 사랑은 헌신하는 것이다. 저 남자 참 속도 좋다 싶었다.

그들의 이런 관계는 머독이 사망하기 직전에야 역전된다. 1995년, 그들 부부가 40년을 해로하던 끝에 그녀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는 것이다. 노년의 머독은 쥬디 덴치가 연기한다. 영미인들은 쥬디 덴치를 부를 때 ‘여사(Dame)’라는 칭호를 붙인다. 그녀는 그 칭호에 걸맞는 대배우이고, 이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처음 알츠하이머 증세가 시작되었을 때 머독은 작가로서의 스트레스(writer's block)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많은 단어의 뜻을 잊어버리고, 가까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치료차 찾아간 서포크의 바닷가에서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만 증세를 호전시킬 길은 없다.

베일리는 자기보다 카리스마도 있고 유명인이기도 한 아내를 긴 세월동안 숭배하듯이 도우며 지내왔다. 머독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딴 소리를 해대면서 유난히 어렵게 구는 어느 날 밤, 그는 처음으로 그녀를 원망하며 눈물 흘린다. 가슴 저린 장면이었다. 이제 그의 사랑은 누구로부터, 무얼로 보답 받는단 말인가! 노년의 베일리 역할을 맡았던 짐 브로드벤트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깝지 않은 수상이었다.

사랑은 잊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가 나를 잊고 있을까봐, 이미 잊었을까봐 잠에서 소스라치게 깰 만큼 괴로워본 적이 있으신지. 인기와 인지도를 먹고 산다는 연예인들과 정치인들도 자기 팬과 지지자들에게서 잊혀질까봐 걱정을 많이 하긴 한다더라. 그러나 ‘사랑은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의 기억은 그런 것과는 다르다. 사랑은 영원히 떠받들여지거나 숭배의 대상이 되려는 욕심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내 사랑을 기억해주기만 한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이다.

‘기억한다’는 동사의 속성은 잔혹하다. 그것의 목적어 자리에 놓이는 순간, 무슨 일이든 과거지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동사를 현재형으로 써도 마찬가지고, 장차의 일에 관해 쓰더라도 그렇다. 이 동사는 자기와 맞닿는 모든 목적어를 과거로 산화(酸化)시켜 떠내려 보낸다. 추억의 모래톱으로. 그리고 결국은 서서히 망각의 대해로. 그러므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욕심은 실은 매우 작고 초라한 욕심일 뿐이다. 하지만 베일리씨의 눈물이 보여주듯, 기억조차 되지 못할 때의 고통은 결코 간단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사랑하는 일도, 사랑받는 일도, 따지고 보면 모두 망각과 벌이는 힘겨운 싸움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망각’과 ‘투쟁’이라는 두 단어가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벗이여,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기억한다고 말하진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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