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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Poppins

posted May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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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라는, 이름조차 괴상한 미국발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공된 주택자금 대출을 의미하는데,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일면서 너도나도 대출을 받고, 은행도 경쟁적으로 원금 유예기간을 연장해 주는 등 대출을 늘이다 보니 부실채권이 쌓이고 쌓였던 거죠.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대출 증권들을 안전성이 높은 다른 금융상품들과 묶어서 수익률이 높은 파생상품으로 재탄생시켜 전세계에 판매해왔는데, 부동산 대출의 부실이 커지면서 서브프라임 채권과 묶여서 판매된 상품들이 큰 손실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용평가기관들도 파생상품의 위험도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위기를 예방하기는커녕 조장하는 역할을 했죠. 위험을 분산시킨다던 선진 금융기법이 도리어 위험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알 수 없는 위험이 증가했으므로 세계적으로 신용이 경색되고 ‘위험의 가격’인 실질금리는 상승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금융시장의 붕괴를 우려한 정책당국은 금리를 낮추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부실의 전모를 아무도 알 수 없고 그 여파가 어떤 모양으로 국경을 넘나들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서브프라임’이라는, ‘몹시 완곡한(euphemistic) 이름’을 가진 새로운 위기는 여전히 세계경제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얼마 전, 영국에서도 제5위 대출은행인 노던록이 중앙은행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소식이 알려진 후 수천명의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려고 은행 앞에 장사진을 쳤다고 보도되었더군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충격파가 런던에 상륙했다는 이 기사를 접했을 때, 저는 영화 <Mary Poppins>를 떠올렸습니다. 대량인출사태를 희극적으로 그린 한 장면이 떠올랐던 겁니다.


    <Mary Poppins>는 여류작가 P.L. 트래버스의 동화를 디즈니가 1964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뮤지컬 배우였던 줄리 앤드류스의 영화 데뷔작이었습니다. 그녀는 데뷔전 브로드웨이 연극 <My Fair Lady>의 주인공으로 성가를 높였는데, 막상 영화의 배역은 오드리 헵번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Mary Poppins>와 <My Fair Lady>가 경합을 벌였던 1965년 아카데미 시상에서 다른 상들은 죄다 <My Fair Lady>가 휩쓸어 가는 와중에도 여우주연상을 줄리 앤드류스가 차지함으로써 그녀는 헵번과의 경쟁에서 탈락한 수모를 딛고 달콤한 승리를 쟁취하긴 했죠. 헵번은 훌륭한 배우지만 노래로는 앤드류스와 경쟁이 안된다고 봅니다. 줄리 앤드류스는 제가 여지껏 본 모든 직종의 인간, 아니, 모든 종의 생물들 중에서 가장 또렷한 발성과 발음으로 말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Mary Poppins>의 배경은 1910년,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여 ‘지난번 세계화’를 정점에 올려놓고 있던 무렵입니다. 우산을 펴들고 구름 위를 떠다니는 신식 요정 메리 포핀스(앤드류스)는 뱅크스씨네 가정교사로 들어옵니다. 그녀는 엄격한 가장의 슬하에서 주눅이 들어 지내는 아이들에게 자상하면서도 따뜻한 보모가 되어줍니다. 어느 날 뱅크스씨는 진지한 세계를 교육시킬 목적으로 아이들을 자신이 일하는 은행으로 데려갑니다. 탐욕스러운 고령의 은행장은 저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아이의 동전을 빼앗다시피 하려 들죠. 아이는 동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데, 이걸 보고 은행에 돈이 부족한 것으로 오해한 고객들은 너도나도 저금을 인출하는 아수라장이 벌어집니다.


    은행은 영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는데, 이 일로 인해서 징계를 당하게 된 뱅크스씨는 마침내 아이들의 동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집을 나서는 뱅크스씨에게 아이는 죄송하다며 자기 동전을 내밉니다. 아버지는 고맙다고 미소 지으며 그 동전을 받아들죠. 뱅크스씨는 “1773년 보스턴 티 파티 사건 이후 처음으로” 은행의 영업중단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해고됩니다. 그러나 그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메리 포핀스로부터 들었던 농담을 은행장에게 던지고는 쾌활하게 은행 문을 나섭니다. 다음날 뱅크스씨네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연을 날리기 위해 공원으로 나가고, 단란한 그들의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며 메리 포핀스는 짐을 꾸립니다. 공원에서 그들은 은행장의 아들을 만나는데, 그로부터 은행장이 어젯밤 사망했으며,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복한 웃음을 웃으며 임종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은행장의 아들은 뱅크스씨를 다시 고용합니다.


    과연 금융강국의 동화답지 않은가요?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무척 낯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첫째, 아이들을 살갑게 대하지 않고 일부러 엄격하게 거리를 두는 에드워드시대 영국 부모들의 육아 방침이 낯설었습니다. 자상하기로 이름난 메리 포핀스조차 우리네 식모 누나들처럼 아이들을 업어주고 닦아주는 유모와는 거리가 먼, 사랑을 엄격함 속에 꽁꽁 포장한 가정교사였으니까요. 둘째, 당시 최첨단 산업화 수준을 자랑하던 영국사회의 문물과 풍경이 신기했습니다. 비록 재미난 줄거리와 환상적인 특수효과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길거리 잡상인, 굴뚝 청소부,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 참정권을 얻지 못해 불평하는 여성들, 엄격한 사회제도에 짓눌린 아이들 등 20세기초 대영제국의 그늘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화이긴 했어도, 그곳은 한 번쯤 가서 살아보고 싶은 세상은 아니더군요.


    무엇보다, 은행이 고객들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대목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심오한 부조리처럼 보였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때도 저는 이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Fidelity Fiduciary Bank(충실신탁은행)’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영화 속 은행은 제 마음 속에 대량인출사태로 문을 닫는 모든 은행들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케인즈가 통찰한 것처럼, 경제에서 기대(expectation)는 스스로를 실현하는 힘을 가집니다. 낙관이건 비관이건, 경제적 기대는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이 되는 거죠. 그러니, 경제적 위험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공포감은 그 공포를 현실화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화로 인해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커지고 복잡해진 금융시장 속에서 무책임한 손실이 은밀히 남에게 전가되지 못하게끔 정교한 감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한편, 이왕 발생한 위험 앞에서 우리가 과도한 공포감에 휩쓸리지 않고 조심스러운 낙관을 공유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동전을 둘러싼 실랑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은행으로 쇄도하지는 않을 만큼 말이죠. 메리 포핀스는 일이 잘 안될 것 같을 때 외울 주문을 한 가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걱정이 너무 커진다면 한 번쯤 외어 보시죠.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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