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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of the Roses (1989)

posted Nov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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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결혼이 아니다

영어제목만 보면 <War of the Roses>는 15세기 영국에서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간 30년 넘도록 피비린내 나게 싸웠던 장미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전쟁에서 이긴 랭카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는 이후 116년간 영국을 지배한 튜더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이 전쟁을 제목으로 패러디한 <War of the Roses>는 로즈씨 내외의 막장 부부싸움을 그린 블랙 코메디다.

어느 영화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배우들이 짝을 이루어 다른 영화에 출연하면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할 때도 있지만, 그 인상의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슬린 터너는 <Romancing the Stone(1984)>과 그 속편인 <The Jewel of Nile(1985)>에서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이었던 덕분에, 이들이 부부로 출연해서 싸움을 해대는 <War of the Roses>에는 어쩐지 해피엔딩으로 끝난 동화의 뒷얘기를 들춰보는 것 같은 아이러니컬한 재미가 가미되었다. (데니 드비토까지 세 영화에 다 출연한 걸 보면 이건 잘 계산된 캐스팅이었던 게 틀림없다.) <Titanic>의 비련의 주인공들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Revolutionary Road>에서 두 사람의 비운의 결말이 한층 더 씁쓸한 느낌을 준 것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고 하겠다.

올리버 로즈(더글라스)는 변호사고 바바라(터너)는 웨이트레스다. 그들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아 기르고, 벼르던 저택도 사들였다. 이들은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부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서로에게 데면데면하게 함부로 군다. 서로에 대한 불만의 농도도 짙어진다. 어느 날 그는 심근경색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가는데, 그날 밤 그녀는 잠든 그를 깨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죽으면 내가 드디어 자유로워지는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게 겁났어요. 우리 이혼해요.” 그러나 집과 재산을 조금도 서로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는 두 사람의 싸움은 정말로 도시게릴라 전쟁처럼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 서로를 잘 아는 두 사람은 서로 질세라 상대방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부터 차례로 박살낸다. 온 집안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둘 다 지쳐 숨질 때까지.

전쟁에서 따온 제목이라든지, 마지막 장면에 미 의회 건물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이 영화의 진의는 정치 풍자에 있는 걸로 짐작된다. (이 사람들, 우리나라 국회를 봤다면 슬래셔 호러물이라도 만들었겠다.) 어쨌든, 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가장 심하고 악독한 부부싸움을 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세상 모든 부부들은 다툰다. 신혼의 설렘이나 열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부부는, 감히 단언컨대, 없다. 있다면 비정상이다. 갈수록 많은 커플들이, 갈수록 단기간 내에 이혼에 이르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게 정녕 사랑의 종착점인가? 정말로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란 말인가?

사랑은 결혼이 아니다. 결혼이 곧 사랑인 것도 아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사랑을 잘 유지하고 숙성시키는 게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사랑이 식은 것 같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저절로 끝나야만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사랑이고 결혼은 결혼이다. 식어버린 사랑이 아쉽다고 결혼생활의 지루함을 원망하는 건 반편 같은 짓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예전의 눈먼 사랑을 뉘우치는 것도 비겁하다.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불시에 오기도 하고, 낙엽처럼 덧없이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약간의 통증을 인내할 수만 있다면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를 길게 짓지 않을 수도 있고 (전혀 짓지 않을 수도 있는진 잘 모르겠다),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꺼져버린 줄로만 알았던 불씨를 되지필 수도 있다. (그 불길이 이팔청춘처럼 활활 타오를 거라곤 말 못하겠다) 요컨대, 사랑은 감정이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의지로 좌우할 여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란 말씀이다.

결혼은 다르다. 결혼은 전적으로 선택(choice)의 문제다. 특히 요즘엔 예전보다 훨씬 더 선택적(optional)이 되어가는 제도다. 또한 사랑과는 달리,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결혼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집안과, 친구집단과, 배경과, 관습과, 문화와, 규칙의 결합이다. 영어로는 결혼을 holy matrimony(거룩한 짝짓기)라고도 부른다. matrimony는 holy한 정도가 아니고서는 성사되고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주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혼을 유지하는 중요한 동력이지만, 가장 중요한 동력은 따로 있다. 약속을 지키는 성실, 즉 커밋먼트(commitment)다. 그러므로 결혼은 가장 격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상대와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킬 의욕이 나는 상대와 하는 거다. 나는 후배들에게 되도록 자신과 비슷한 상대방을 배우자로 택하라고 권한다. 금실이 좋은 부부들은 공통적으로 서로를 ‘친구사이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 같은 순간을 전혀 안치를 도리는 없는 게 결혼생활이다.

결혼을 족쇄라고 저주하는 페미니스트나,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한탄하는 로맨티스트에게 동의하는 건 경솔한 짓이다. 문화-유전자 공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이라는 제도는 오랜 세월에 걸친 양성간의 자발적 거래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양성 모두에게 또렷한 생물학적 이득을 갖다주었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가정이라는 요새를 제공했다.

문명은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보다는 조금 느리게 사고방식도 변하고, 문화도 변한다. 그러면 그 결과로서 제도도 변화해 갈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변화들 사이에는 다소간의 지체현상이 불가피하다.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불평하는 건, 제도가 현상을 따라잡는 속도에 대해 불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장차 결혼이라는 제도는 늘어난 여성의 권리와 사회참여, 그에 따라 여성이 지게 된 이중부담, 육아에 관한 가정의 줄어든 역할, 상대적으로 줄어든 남성의 부양책임, 늘어난 성적 방종의 기회 등을 반영하며 변천되어갈 것이다. 이미 오늘날의 결혼은 우리 부모 세대에게 결혼이 의미했던 것과 똑같은 걸 뜻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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