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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tebook (2004)

posted Dec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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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가능한 선택이다

나는 영화를 사랑하지만, 음악도 사랑한다.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다. 대학교 때는 합창써클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뮤지컬 <루나틱>의 작곡가 권오섭군이 그 써클의 후배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홍대 앞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참 아늑하다. 한 켠에는 녹음을 할 수 있는 방이 있고, 다른 쪽엔 소파와 서가를 갖춰놓았다. 야근을 마치고 그냥 퇴근하기 심난한 날이면 나는 가끔 예고도 없이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야, 정말 부럽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너는 정말 좋겠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가끔씩 득도한 사람처럼 굴곤 하는 이 후배가 자기는 도리어 내가 부럽다고 말하는 거였다. 엥? 내가? 넥타이 매고 아침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가 뭐가 부러워?

   “형은 자주는 못하시겠지만, 후배들하고 가끔 밴드 연습하고 노래 부를 때 즐겁고 행복하시죠? (뭐... 그렇지.) 저는 이제 음악이 밥벌이가 되고 나니까 어렸을 때만큼 즐겁지가 않아요. 음악이 스트레스가 되다니, 큰 행복 한 가질 잊어버린 거 같아요.”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다. 실은, 어떤 일의 좋은 점은 바로 그 일의 나쁜 점이기가 쉽다. 사람으로 치자면, 어떤 사람의 장점이 바로 그 사람의 단점인 거다. 온유한 사람은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은 독선적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줄 줄 아는 사람은 귀가 얇고, 공정한 사람은 가혹하기 마련이다. 빠른 사람은 경솔하거나 부정확한 법이고, 정확한 사람은 느리거나 편협하기 일쑤다. 쾌활한 사람은 덜 진지하고, 진지한 사람은 덜 쾌활한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나? 사람끼리 하는 것이므로,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건 언제나 선택의 문제다.

<The Notebook>이라는 2004년 영화가 있다. 사실 이 영화의 더 큰 주제는 ‘기억’인데, 기억에 관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쪽에 <Iris>를 가지고 해버렸으니까 그 주제에 관해서는 덮어두겠다. <The Notebook>은 아마도 레이첼 맥아담스가 가장 매력적으로 나오는 영화일 거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고, 그녀를 가까이서 돌보는 노인(제임스 가너)과, 그녀를 방문하는 아들딸들이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앨리고, 회상 속에서 젊은 날의 앨리는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한다. 1940년 여름, 부자집 딸 앨리는 동네 카니발에 갔다가 멋진 청년 노아를 만난다. 청년은 벌목장 인부인데, 둘은 여름 내내 뜨거운 사랑을 불태운다. 하지만 둘의 결합을 결사반대하는 앨리의 부모 때문에 둘은 헤어진다. 앨리 가족이 이사를 간 뒤에도 노아는 계속 편지를 쓰지만 앨리의 어머니는 그 편지를 숨긴다.

2차대전이 터지고, 노아는 군에 입대한다. 앨리는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던 중에, 매력적인 청년 론을 만난다. 론은 부자집 아들이고, 양가 부모의 축복 속에 둘은 약혼한다.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노아는 여전히 앨리를 그리면서 예전에 그녀에게 약속했던 둘만의 집을 짓는다. 결혼을 앞두고 드레스를 고르던 앨리는 신문기사에서 노아의 집 이야기를 읽는다. 충격 속에 고향을 찾아간 앨리는 거기서 노아를 만나고 두 사람은 이틀간 함께 머물며 예전의 사랑을 확인한다. 노아가 집을 비운 사이, 앨리의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의 실패한 옛사랑 얘기를 들려주며 현명한 선택을 내리라고 충고한다. 론도 앨리를 데리러 고향 마을로 내려온다. 노아는 앨리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약혼자 론을 다시 만난 앨리는 말한다. “당신 앞에 있을 때의 나와 노아 앞에서의 나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 같아요.”

영화는 감질나게도, 할머니 앨리를 돌보는 남편(제임스 가너)가 과연 누구인지를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앨리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노아를 택하고 나중에 만난 사랑을 떠나보냈을까? 아니면 론에게 돌아가고 노아에 대한 기억을 덮어두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녀는 버거운 선택을 포기하고 나중에 만난 다른 누군가와 여생을 보냈을까? 과연 누가 더 나은 상대였을까? 영어 속담에 “케익을 먹기도 하고 갖고 있기도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선택이 두려워서 적령기를 놓쳐가는 후배들에게 내가 해 주는 얘기가 있다. 완벽한 상대를 찾으려는 욕심은 버리라는 거다. 남자다운 게 좋다면 욱하는 성질도 참아줘야 하고, 해맑아서 반했다면 세상 물정 모른다고 화내지도 말아야 한다. 다정해서 좋다고? 그렇다면 너한테만 친절할 리가 있겠니? 여성스러워서 끌린다면 그녀더러 소극적이라고 짜증내지도 말 일이고, 지성미가 그녀의 매력이라면 그녀의 잘난척도 받아주는 수밖에.

앨리의 선택은 옳았을까?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며 지냈을까? 그럴 리가. 그 어떤 선택에도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다. 후회는 선택의 본질에 속한다. 우리는 후회하고 있는 스스로를 다잡을 때에만,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프로스트 식으로 말하자면, 갈라진 두 길 중 어디로든 우리는 걸어야 하고, 가지 않은 길을 궁금해 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인 거다. 따지고 보면, 인생사 전체가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자기 의지로 내린 선택의 약속을 지키며 사느냐, 또는 후회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만드느냐는 당신 자신의 몫이다. 저는 날더러 부럽다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작곡가 후배가 부럽다. 그래도, 이제 와서 내가 그가 될 도리는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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