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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2009)

posted Dec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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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있을 때 잘하는 것이다

박진표 감독은 어눌한 말버릇과 선량하고 커다란 눈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작품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이나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이 연기한 주인공들은 박감독 자신을 연상시키는 구석을 적잖이 가지고 있다. 박감독은 90년대에 sbs 방송국의 다큐멘타리 PD로 감독에 입문했다. 그런 덕분인지, 그는 노인들의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화제의 대뷔작 <죽어도 좋아>에서부터, AIDS 문제(너는 내 운명), 유괴 사건(그놈 목소리), 루게릭 병(내 사랑 내 곁에)과 같이 르포 기사의 소재로서 눈길을 끌 법한 실화에 집착하고 있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의 중환자 6인 병실에 대한 세심한 스케치와 같은 대목에서, 그의 장점은 잘 발휘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른 그가 앞으로는 실화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좀 더 편안하게 상상력을 펼쳐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배우 김명민의, 김명민에 의한, 김명민을 위한 영화다. 루게릭 병에 걸린 환자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하느라 무려 20kg을 감량한 그에게,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들조차 이젠 좀 그만 하라고 달랬다는 후문이다. 김명민의 그런 압도적인 열연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은 하지원이 대단하다 싶을 정도다. 모르긴 해도 배우들의 열연도 상대역과 상승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지수(하지원)는 결혼에 실패한 경험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어느 장례식 준비과정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랐던 종우(김명민)를 고객으로 만난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고, 그는 루게릭 병을 1년째 앓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다. 장례식을 마친 뒤 그가 그녀에게 사귀자고 한다. “나, 몸이 굳어가다 결국은 꼼짝없이 죽는 병이래. 그래도 내 곁에 있어줄래?” 그로부터 1년 뒤 성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병실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병실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Waterdance>(1992)에서 척추신경마비로 입원한 에릭 스톨츠와 그를 간호하는 헬렌 헌트가 다른 환자들의 눈을 피해 서로를 애무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들이 서로의 몸을 느끼는 행위는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더 힘찬 삶의 의지의 표현이다.

병마에 시달리는 종우의 몸은 점점 그의 굳센 투병 의지를 배반한다. 자기는 꼭 나을테니 두고보라며 지수에게 호언장담하던 연인 종우는 점점 사그러들고, 지쳐가는 병자 종우는 지수에게 잔인한 폭언을 퍼붓기도 한다. 사법시험을 보겠다며 병실에 갖춰둔 법률서적들은 이제 그의 비참함을 더 잔혹하게 일깨워주는 바깥세상의 표식일 뿐이다. 뇌신경 손상으로 감정조절이 어려워지던 종우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결국 생명의 불꽃을 놓는다. 지수는 그의 시신을 정성스레 수습하며 한 번 더 눈물을 흘린다. 김명민이 직접 부르는 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가 엔드 크레딧과 함께 흐른다.

장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최근 영화로는 모토키 마사히로(本木雅弘)와 히로스에 료코(広末凉子)가 주연하는 일본영화 <보내는 사람(おくりびと)>(2008)이 있었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했던 이 영화는 일본인 특유의 절제된 슬픔을 단아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죽음은 언제나 살아남는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내는 사람>과 <내 사랑 내 곁에>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수는 종우가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비록 부질없지만 그를 ‘보내지 않으려는’ 싸움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동안, 산 자들끼리 나누는 온기가 사랑이라고, <내 사랑 내 곁에>는 말하고 있다.

종우를 만난 직후 지수는 사무실에서 루게릭 병에 대해 검색해 보고는 그 병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응? 정말로 죽네.” 그러고서도 그와의 연애를 시작하는 지수의 심정을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힘이 들더라도 전력을 기울여 사랑을 불태울 상대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나 오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랑은 불태우는 거라고. 죽음의 코앞에서도 삶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이런 태도는 건강해 보이고, 그것이 이 영화가 지닌 호소력이다.

죽은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다. 죽은 사람은 짜증을 부리지도 않고, 물을 달라 등을 긁어라 요구하지도 않는다. 좀 극단적인 줄거리지만, 시신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다룬 영화가 하나 더 있다. 1996년 만들어진 캐나다 영화 <Kissed>의 주인공 산드라(몰리 파커)는 죽은 사람들의 침묵과 평정에 매료된 나머지 시신을 사랑하는 네크로필리아의 경지에 다다른다. 살아 있는 남자친구와 동침을 하던 그녀는 그에게 불평한다. “네 몸이 너무 뜨거워.” 산드라의 사랑이 이기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이라면, <내 사랑 내 곁에>의 지수의 사랑은 절박하고도 구체적인 사랑이다.

<Kissed>만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망자에 대한 사랑을 다룬 작품들은 많다. 그 사랑의 기억이 애틋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동안의 사랑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던 일본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 두 여자(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穂의 1인 2역)는 등반사고로 사망한 한 남자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며 편지를 주고받는다. 희미해져가는 옛 애인의 기억을 간직하려고 잔인한 시간과 싸우는 것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죽은 자와의 사랑이 가지는 모순은, 만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애틋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러브레터>의 주인공 히로코의 사랑은 어쩌면 생전의 애인과 불태우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산에서 동사한 애인을 기억하며 그녀는 눈 덮인 산을 찾아가 죽은 이를 향해 건강하냐며 소리친다. 시간을 거스르고 싶어하는 그녀의 사랑은, 기억 속에 냉동된 사랑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와 연애를 시작하는 <내 사랑 내 곁에>의 줄거리가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인다면, 그것을 하나의 비유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은 예외 없이 죽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기한을 알지 못하는 시한부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면, 사소한 일로 다투고 헤어질 연인들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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