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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대한민국?

posted Dec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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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관한 글을 써서 책을 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가졌던 건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영화를 봤고, 본 영화가 많아지니까 헛갈려서 대학시절부터 습관처럼 조금씩 메모를 해두었을 뿐이다. 일껏 돈 내고 영화를 봤는데, 지나고 나면 그런 영화를 봤다는 사실까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이젠 가끔씩 영화 이야기에 관한 잡지사 원고 요청이나 심지어 강연 요청도 들어오곤 하니, 인생이 재미있지 않은가.

서울에 있을 때, 잡지사를 통해 은행 소식지에 영화를 소개하는 경험을 가졌다. 잡지사에서 그 달의 주제를 정해주면 내가 거기 어울리는 영화를 추천해 주는 코너였다. 기사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DVD 대여점 등을 통해 찾아보기 너무 어려운 영화는 곤란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를테면, ‘아이디어, 성공의 창공을 날다’라는 주제를 받으면 <Tucker>, <Big>, <Tampopo> 같은 영화를, ‘나눔의 첫걸음, 용기’라는 주제로는 <Painted Veil>, <Erin Brockovich>, <Dangerous Minds>를, ‘문화, 변화하기에 존재한다’라는 주제에는 <All That Jazz>, <Bird>, <Pollack>을 추천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호 주제는 ‘나의 사랑,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에요. 다음 주까지만 추천해 주시면 돼요.”
  “그러죠.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을 하고 출퇴근 길 지하철 속에서 영화들을 꼽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추천할 영화를 고를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되거나 찾기 어려운 영화는 안된다니, <빨간 마후라>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추천할 수도 없고, 허술한 구성에 치기 어린 국수주의적 발상을 담은 <한반도> 같은 영화를 추천할 수도 없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를 생각해 봤지만, 이 영화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공동체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멸시와 냉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인간승리를 담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국 적당한 영화를 단 한 편도 찾아내지 못했다. 잡지사에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이번엔 추천작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말 제가 생각해봐도 적당한 영화가 없더군요. 그럼, 대신 ‘국제영화제에서 대한민국을 빛낸 영화’로 해보죠.”

상 받은 영화라면야 얼마든지. 결국 그 달의 잡지에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취화선>, <빈 집>, 이렇게 세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던 문제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 한 편도 추천할 수 없었다는 건 새삼스러운 충격이었다. 좀 생각을 해볼 문제였다.

6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영화는 다른 어느 아시아 국가에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문화정책이 펼쳐진다. 그때부터 한국영화는 물을 안 준 화초처럼 시들어간다. 대한민국 영화는 <바보들의 행진>처럼 일탈을 통한 암시적 저항이거나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선정주의적 배설의 수단이 되고 만다. 지금이라면 B급 애로물 대여점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영화들이 마구 양산된다. 주인공들은 억압받고, 불우하고, 따라서 우울하다. 우리는 그러면서 80년대말 민주화를 맞았고,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예전의 좌절감에 대해서 한풀이를 하겠다는 듯이, 대한민국 영화계는 과거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재정의가 바람직한 현재나 미래에 대한 조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데 있다.

<JSA 공동경비구역>은 튼튼한 영화적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의 뿌리와 현실을 몹시도 부끄럽게 여기는 영화다. 야수적 에너지를 분출하며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북한군 하전사(송강호)에 비해, 대한민국 군복을 입은 청년들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하나는 자살하고, 하나는 실성한다. 표현은 자유로와지고 매끄러워졌지만, 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70년대처럼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화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하사탕>을 봤다. 이 영화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기법을 통해 한 사나이의 삶이 무너진 인과관계를 추적하는데, 그 뿌리에는 광주항쟁사건이 있다. 마치 이 영화는 주인공의 비참한 말로가 광주사태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정작 가구점 사장노릇을 하면서 호황을 누릴 때는 바람을 피우고 함부로 지내다가 궁핍해지자 ‘돌아가고 싶어’라며 자살해 버리는 주인공처럼, 이 영화는 원망을 담았을 뿐, 반성을 담고 있지는 않다. 광주항쟁사건이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불행한 역사라는 사실과, 그것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모든 비행의 책임을 거기에 전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 식의 책임전가는, 불행을 극복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진지한 노력에 대한 조롱이고 모독이다.

오늘은 많은 어제가 쌓여서 이루어지는 법이라던가. 우리 영화의 정서는 대한민국이 엄청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고 난 뒤에도 70년대처럼 억압받고, 불우하고, 따라서 우울하다. 경박한 코미디 영화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불특정 다수를 증오하고, 남을 탓하며, 냉소적인 자조를 일삼는 영화들이 너무나 많다. 해외에서 <올드보이> 식의 폭력을 한국영화의 독특한 양식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결코 <올드보이> 혼자만의 성취가 아닌 것 같다. <친절한 금자씨>나 <바람난 가족>은 이웃과 중산층을, 사회를, 우리 공동체를 대책 없이 미워한다. <태극기를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은 우리 부모 세대가 목숨 바쳐 지켜낸 체제의 가치에도 냉소를 보낸다. 영화가 진지하면 할수록, 주인공들은 공동체의 안녕에는 무관심하고 사적인 불운과, 슬픔과, 복수를 향해 치닫는다.

정말 그럴까?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를 위안해 보고 싶었다. 마치 “꽁트는 꽁트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이라고 외치는 유재석의 말처럼, 영화들이 좀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실제로 불우해지는 건 아니지 않을까? 또는, 영화라는 매체가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건강하고 자연스럽지, 영화를 무슨 체제선전의 도구처럼 만들어서야 곤란하지 않을까?

미국 영화들을 생각해봤다. 미국도 영화계는 리버럴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좀처럼 정부 선전물 같은 영화가 양산되진 않는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정부를 비꼬고 비판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를 잃는 법은 없다. <Erin Brokovich>는 미국 공해산업과 정치의 유착을 폭로하는 영화지만,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보상받는 미국의 체제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최전선 부대 안에서 벌어진 추악한 살인사건과 그것을 덮으려는 군당국의 음모를 파헤친 <A Few Good Men> 같은 영화도, 그걸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미국적 가치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아니라 자부심과 신뢰다. 냉혹한 자본주의 질서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길거리에 나앉은 흑인의 고생담을 그린 <The Pursuit of Happiness>의 주인공은 둘이다. 재기에 성공하는 흑인남자와 그런 재기를 가능케 하는 체제.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고, 예를 더 들 필요도 없겠다.

김희갑이 나오던 <아름다운 팔도강산> 같은 영화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정치색 짙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찬양하는 영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런 건 그만두고, 우리 영화도 국민 개개인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함께 이루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알아야 마땅하는 얘기일 뿐이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난 수십년간 참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외국의 친구들에게 추천해야 하는 한국의 영화들은 정작 대한민국 공동체를 자랑스러워하긴 커녕, 증오하거나 수치스러워하고 있다. 나와 내 이웃이 이루고 있는 우리의 공동체가, 정말로 그렇게 불의하고 부당하고 부끄럽고 더럽기만 한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미움과 수치심을 주입하는 영화는, 자기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어떤 모순 못지않게 우리 삶에 해를 끼치는 게 아닐까? 영화는 종합예술이기도 하지만 대중이 소비하는 상품이기도 하므로, 어느 쪽으로 치우쳐도 사회적으로 해롭다.

사랑을 받을 만한 공동체가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는 공동체만이 사랑을 받을 만한 공동체가 되는 법이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 후대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지금보다는 좀 더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래도 좋을 만큼 먼 길을 힘들게 걸어왔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누구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 무책임한 해외언론이라면 모를까, 우리 중 누구도 우리의 공동체를 반성 없이 질책하고 저주할 자격은 없다. 잡지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서 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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