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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미술관, 그리고 영화

posted Apr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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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또는 미술관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부터 드시는지?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아하고, 고상하고, 품위 있다는 느낌이 있을 것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한가하고 (나는 바빠 죽겠는데), 허영에 차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역사와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인문주의적 교양과 지적 태도를 상징한다. 자연히,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장소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의 아름다움과 값어치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전지식과 연관 짓지 않고 상상하기란 어려운 곳이다.

영화가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략 세 갈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와 예술의 가치를 잘 안다고 가식적인 허영을 떠는 사람들의 얘기에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영화의 분위기 속에 예술과 역사의 높은 격조를 빌려오고 싶을 때도 등장한다. 물론 박물관의 으스스한 분위기 자체만을 빌려다 쓴 영화들도 있다.

<벨파고-루브르의 악령(Belphégor - Le fantôme du Louvre)>이라는 2001년 영화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벨파고라는 이집트 출신 귀신이 소피 마르소의 몸에 덧씌워지는 공간이다.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 울리는 한밤중의 텅 빈 루브르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장소를 파리에서 찾자면 장발장이 숨어 지내던 하수도(Les Egouts)정도 밖에 없지 않았을까? 영화 <레릭(Relic)>(1997)에서는 브라질에서 건너온 유물에 붙어 있던 괴물이 자라 시카고 자연사 박물관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미녀배우 페넬로프 앤 밀러가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고고학 박사 마고 그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 속에는, 대중적 인기가 시들어가고 있는 박물관 관계자들의 위기감을 드러내는 대사가 나온다.

마고 그린 박사 : 수상쩍은 물건을 가지고 사람들을 박물관에 끌어 모으는 건 마치 볼쇼이 발레단이 토플리스 도우미들을 고용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휘트니 프록 박사 : 나는 볼쇼이 발레단이 그랬으면 좋겠는걸. 그럼 나도 발레 좀 보러 갈 테니까.

오랜 동안, 규모가 큰 서구의 자연사 박물관들은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주는 놀이터 역할을 해 왔다. 천정에 매달린 집채만 한 고래 뼈라든지, 금세라도 관람객을 덮칠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육식공룡 뼈를 올려다보면서 경외감을 갖지 않는 어린이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그 경외감의 크기는 전자오락이 아이들의 관심을 쏙 빼앗아 가면서 줄어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볼쇼이 발레단이 토플리스를 고용하는" 식의 발상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박물관으로 끌어보려는 영화도 있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2006)에서 박물관 경비원으로 취직한 주인공 벤 스틸러는 해가 지면 떠들썩하게 살아나서 난장판을 만드는 전시물들을 돌봐야 하는 불쌍한 처지가 된다.

컴컴한 박물관이 으시시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면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명색이 박물관에 좀 어울리는 지성적인 태도로 박물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있다. <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가 지닌 지성의 함량은 소설가 댄 브라운의 깊은 연구 덕분이랄 수 있겠지만, 이 영화(또는 소설)이 품고 있는 지성의 정체는 사실 좀 모호하다. 기독교의 도그마와 싸운다는 점에서 인문주의적인 태도에 기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는데, 정작 주인공 로버트 랭든 박사(톰 행크스)가 찾아내는 진실이라는 게 막달라 마리아 숭배라는 또 다른 전설 또는 미신이다. 역시 신화의 매력을 탈색한 인문주의적 지성만으로 독자나 관객을 매료하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영화가 박물관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겼던지, 루브르측은 사상 최초로 루브르 내부에서의 촬영을 허용했다고 한다. 박물관이 휴관하는 화요일 밤에만 촬영할 것, 그림에는 절대로 조명을 비추지 말 것 등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음은 물론이다. <다빈치 코드> 속의 박물관은 비밀이 꽁꽁 숨겨져 있고, 심야에 사람이 살해당하는 공간이다. 이 영화가 박물관의 매력을 홍보하는 측면이 있다면, 그 홍보 전략은 실상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크게 다를 건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툴리치의 발랄한 (그러나 여전히 다소 난해한) 2003년도 영화 <몽상가들(Dreamers)>에 등장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달리기 시합 장소다. 마오이즘에 대한 동경, 혁명, 섹스, 마약 등 해방에 관한 모든 욕구가 뒤범벅이 되어 분출하던 60년대의 프랑스를 추억하는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권위와 통념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처녀성도 장난치듯 내버리는 여주인공 이자벨(에바 그린 분)이 두 남자(오빠와 친구)에게 제안한다. "<국외자들(Bande a Part)>의 기록을 깨는 거야!"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국외자들> 속에서처럼 이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관통해 질주한다. 그리고는 국외자들의 기록을 17초나 단축했다며 좋아라 한다. 이 영화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엄격하고 점잖은, 그러나 고리타분하고 억압적인 기성의 질서를 상징했다.

귀신이나 괴물이 나온다거나, 살인이 벌어진다거나, 또는 달리기 트랙을 제공하는 장소로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좀 더 매력적으로 다룬 영화들을 찾아보자면, 이곳을 연애 장소로 써먹는 영화들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맨틱한 연애의 장소로는 박물관보다는 미술관(art gallery)쪽이 더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회화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 덕분일지도 모르고, 서양인들이 미술에 대해서 품고 있는 낭만적인 감성을 반영하는 건지도 모른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히치콕 감독에 대한 오마주를 가득 담아 만든 영화 <드레스 투 킬(Dressed to Kill)>(1980)에서 일탈을 꿈꾸는 여주인공 케이트(앤지 디킨슨)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매력적인 남자와 마주친다. 그에게 추파도 던져보고 장갑도 슬쩍 떨어뜨려 보지만 남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남자를 뒤쫓아 미술관을 나간 그녀는, 결국 자동차 안에서 끈끈한 정사를 갖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배경인데, 촬영허가가 나지 않아 정작 촬영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거의 로맨틱한 영화 전용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에서도 주인공들이 센트럴 파크에서 즐기던 데이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에서 느끼하면서도 우아한 그림도둑 토마스(피어스 브로스넌)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훔쳐내고 보험수사관 캐서린(르네 루소)과 연애도 한다. (이 영화는 동명의 1968년 영화의 리메이크인데, 원작에서 스티브 맥퀸은 미술관이 아니라 은행을 털었었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우디 앨런의 영화 속 주인공들도 거의 홍상수 감독의 주인공들이 여관을 드나드는 것만큼이나 자주 예술품 주변을 맴돈다. <맨하탄(Manhattan)>(1979)에서 나이 어린 연인을 데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한 아이작(우디 알렌)은 친구의 애인인 메리(다이앤 키튼)과 작품들을 두고 허영심 가득한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휘트니 미술관에선 어느덧 연인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매치 포인트(Match Point)>(2005)의 불륜의 남녀 주인공은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재회하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2008)의 주인공들은 바르셀로나의 미술관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우디 앨런의 미술관은 지식인들의 가식적인 허영을 상징하는 장소처럼 보인다.

미술관이 좀 더 비중이 큰 역할을 해내는 영화들도 있다.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9 1/2 Weeks>(1986)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는 뉴욕 소호에 위치한 미술관 큐레이터다. 이혼녀인 그녀의 직업은 아름다움을 감식하는 일이다. 그녀 앞에 아름다운 남자 존(미키 루크)이 등장한다. (이 꽃미남이 훗날 위플레시라는 악당 역할을 할 만큼 망가져 버릴 줄 누가 알았으랴!) 그녀가 그와의 격정적이면서도 다소 변태적인 사랑에 빠져들 무렵 등장하는 그림들은 어두운 분위기의 반추상화들이다. 그녀가 화랑에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그림들이다. 엘리자베스는 사람을 짐승처럼 (또는 그 반대로) 표현한 기묘한 그림들을 슬라이드로 돌려보며 혼자서 야릇한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존과의 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계기는 자연주의풍의 노화가 판즈워즈씨의 작품을 접하게 되는 시점과 겹친다.

에구니 카오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냉정과 열정 사이>(2001)에서 주인공 준세이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이탈리아로 건너가 박물관의 고미술 작품을 복원하는 일을 한다. 그가 미술품 복원작업에 매달리는 건 그의 섬세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 상징적이다. 그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학창시절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항상 오늘이 아닌 어제에 살고 있는 남자기 때문이다. 결국 피렌체 성당의 옥상에서 그는 옛사랑을 '복원'하는데 성공한다. 과연 사랑은 위대하고 위험한 모험이다.

하지만 미술품을 가장 위험천만한 모험 속으로 내몬 영화를 찾는다면 <빈(Bean)>(1997)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미스터 빈은 로열 내셔널 갤러리의 직원이다. (어떻게 그가 직원이 되었는가는 묻지 말라...) 짐작하다시피 그는 미술관의 골칫거리여서, 미술관측은 휘슬러의 걸작 <화가의 어머니>를 미국에 순회 전시하는 일을 맡겨 출장을 보낸다. 미국에서 그는 다양한 사고를 저지르는데, 그 압권은 휘슬러의 그림을 망가뜨리는 장면이다. 그가 재채기를 한다. 분비물이 그림에 튄다. 그는 그걸 닦아내는데 웬걸, 물감이 함께 묻어나온다. 그걸 감추려고 그림을 옮기다 액자가 부서진다. 약품으로 손상된 부분을 닦아내다가 초상화의 얼굴이 지워진다. 결국 그림은 - 미스터 빈의 손을 거치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 철저하고 처절하게 파괴된다.

이 멍청한 파괴행각을 능청맞게 연기한 로원 앳킨슨은 정작 옥스퍼드를 졸업한 수재다. (이 영화의 감독 멜 스미스도 옥스퍼드 동문이다.) 수재들이 만든 바보 영화라는 뜻이다. 이 영화의 촌철살인을 이해하려면 왜 하필 휘슬러의 작품을 소재로 삼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임스 에벗 맥닐 휘슬러(1834-1903)는 미국 태생이지만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던 화가다. 그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미국과 유럽을 잇는 가교 역할도 했기 때문에, 미국 미술이 동시대의 유럽미술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싶어 하는 미국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다. 특히 영화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마는 <화가의 어머니(Whistler's Mother)>라는 작품은 뉴욕의 첼시에서 그려진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각별한 애정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미스터 빈이 골려먹은 미국관객들이 느꼈을 서스펜스와 스릴이 더 잘 이해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은 소장품의 아름다움과 값어치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전지식과 연관 짓지 않고 상상하기란 어려운 곳이다. 코미디에 등장하더라도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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