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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戒 (Lust Caution) (2007)

posted Nov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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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배신이다.

<색계>는 대만 출신 이안 감독에게 두 번째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영화다. 그의 첫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함께 받았던 <Brokeback Mountain(2005)>이었다. 그는 영미 영화계에 입성한 동양계 감독의 선두주자로서 <Sense and Sensibility(1995)>를 통해 호평을 받은 이후 <와호장룡(2000)> 같은 화제작은 물론 <Hulk(2003)> 같은 오락물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색계>는 신인 여배우 탕웨이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양조위(토니 룽)의 인상적인 호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는 분명치 않다. <색계>는 군국주의와 첩보활동, 암살기도, 가학적 사랑, 배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작가의 뚜렷한 주의주장을 담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보니,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상은 저마다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1938년, 홍콩에 살던 여학생 왕치아즈(탕웨이)는 대학 연극부에 가입한다. 연극부는 광위민이라는 급진파 학생이 이끄는 항일운동단체다. 그들은 친일파 핵심인물인 '이'(양조위) 암살계획을 세운다. 내심 광위민을 연모하던 왕치아즈는 이 계획에 동참한다. 그녀의 임무는 위장된 신분으로 ‘이’에게 접근해 암살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그와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그는 상해로 전근을 가버린다.

1941년 상해에서 학업을 계속하던 왕치아즈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이제는 비밀경찰의 국장으로 승진한 ‘이’의 암살을 재시도하자고 권한다. 그녀는 '막부인'이라는 신분으로 또다시 '이'에게 접근하고, 몸을 던져 그의 마음을 얻는다. 두 사람은 점점 더 깊이 서로를 탐한다. 이듬해 그녀는 마침내 그의 암살 기회를 얻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달아나라고 귀뜸해 준다. 양조위가 화들짝 놀라서 빛의 속도로 달아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느리게 흐르던 영화가 그의 달음박질에 맞추어 결말로 치닫는다. 이 도주장면은 남자의 비겁함과 여자의 슬픔과 사랑의 허망함과 배반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다 담고 있다.

여자는 첫사랑을 포기하고 첩자가 된다. 조국을 배반한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도 배반자가 된 거다. (친일파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맡았다고 탕웨이는 중국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를 암살의 덫으로 끌고 간다. 그건 사랑을 배반하는 짓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이 배반에 실패하고, 차라리 조직을 배반하는 쪽을 택한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사랑의 값어치를 믿기로 했던 걸까? 그렇다면 그녀는 그 기대에 배반당한 건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처형당하는 그녀를 구할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

<색계>는 “배신의 드라마로서의 사랑”을 보여주는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랑은 궁극적으로 배신에 다다른다. 놀라운가? 안타까운가? 그래도 별 수 없다. 연인들이 상대방에 대해 품는 기대와 욕심은 마치 괴물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 괴물의 성장속도는 둘 사이의 애정이 커지는 속도나 지속되는 기간의 제곱에 비례한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상대방이 해낼 수 없는 일들을 그에게 바라게 되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기대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고려의 문신 이조년은 이런 걸 다 알고서 노래했었는지도 모른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고.

실존하는 그와, 당신이 갖고싶어 하는 그는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하달 것도 없다. 스스로의 모습에도 자주 환멸을 느낄 정도로 주책없이 기대수준이 높은 것이 인간 아니던가. 어쩌면 그런 허황한 기대감 없이 인류사회가 발전할 수는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사랑이 변하지, 그럼 사람이 변한단 말인가?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에게 이런저런 기대를 품었다가 접었다가 하는, 사랑이 변하는 법이지.

당신은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진짜 사랑이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서 설레는 기대감이 정말 하나도 없다면 그걸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 배반과 이 실망은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다르긴 개뿔이 다른가? 배반이라는 것은 - 그 말의 정의상 - 언제나 자기 자신의 믿음과 기대로부터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면, 그들은 서로의 기대를 배신할 운명을 이미 짊어지고 긴 여정에 오르는 셈인지도 모른다. 시작할 때는 미처 모르더라도 결과가 배신이라는 점은 벌써 정해져 있다. 마치 적과 동침하는 첩보요원의 운명과도 같이.

내 진심을 오해받을까봐 덧붙이자면, 실망이 불가피하더라도 사랑은 아름답다. 배반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신뢰가 바람직한 미덕인 것처럼. 그러니 사랑을 막 시작하려는 연인 여러분, 배반당할 준비들을 미리 하시라. 무너지는 기대감에 너무 놀란 나머지, 우리 사랑이 통째로 가짜가 아닐까 절망하면서 공황 속에서 허둥대기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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