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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Blanca (1942)

posted Sep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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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가질 수 없는 선택이다 -

사내는 냉소적이고 강인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점을 그의 전력이 드러낸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왕년에는 이디오피아 독립전쟁과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이력이 있다.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려던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나,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헤밍웨이가 그러했듯, 젊은 날의 그의 가슴 속에는 정의감이라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그는 독일 치하의 프랑스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가 통치하고 있는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에 산다. 그의 직업은 술집 주인이다.

카사블랑카는 독일의 압제를 피해 도망온 수많은 유럽인들이 체류하면서 미국으로 갈 기회를 잡기 위해 발버둥치는 곳.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Rick's Cafe"라는 나이트 클럽을 경영한다. 이곳은 카사블랑카에 사는 모든 외국인들과 도박군과 술군, 온갖 협잡군들의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카페는 그가 흘러 들어온 인생의 막장처럼 보인다. 그 자신도 파리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독일의 침공을 피해 모로코로 도망온 터였다.

그는 파리에서 일자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모로코로 함께 떠나오기로 약속했던 그녀는 그러나 약속했던 기차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함께 떠날 수 없다는 메모 한 장을 보내왔을 따름이었다. 그에게는 그녀의 이별통보가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나 2차 세계대전 전체보다 더 큰 상처일 법도 하다. 아하. 관객들은 깨닫는다. 무엇이 저 사내를 저렇게 냉소적이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건지.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카사블랑카에 나타난다. 그것도 그의 카페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인 레지스탕스 지도자와 함께 그곳에 나타나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자기 남편 혼자만이라도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수용소에서 죽은 줄로 잘못 알고 그와 우울하고도 짧은 사랑을 나눈 것이었다. 그와 함께 남불행 피난열차를 타기로 약속했던 바로 그날, 남편의 동료들은 남편의 생존소식을 전해왔던 것이다.

여자는 그에게 말한다.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도 진심이었다고. 또다시 당신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남편을 미국으로 보내주면 자신은 카사블랑카에 남겠노라고. 자, 당신이 험프리 보가트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더구나 상대 여성이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면? 당신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1) 자기를 그토록 애태운 여자와 그의 남편의 부탁을 무시해 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들은 조만간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될 것이다. (2) 여자의 부탁처럼 남편을 미국으로 가도록 도와주고 지난번에 미완성이었던 사랑의 나머지 분량을 불태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경쟁상대는 죽어버린 전남편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반려자로서 한없이 존경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사나이에 대한 죄스러움이 된다. (3) 유명 카페 주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동원하고 무리를 해서 두 사람을 함께 미국으로 보내준다. 하지만 이렇게 하자니 자신은 같은 여자에게서 두 번 버림을 받는 것이 되는데다가, 자기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카사블랑카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1942년 영화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 영화의 대사와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하나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70년대 미국 심야영화관에서 젊은이들이 열광하던 이른바 '컬트'영화 속에도 이 영화는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그 곡을 다시 연주해줘, 샘(Play it again, Sam)", "이제 아름다운 우정이 시작될 것 같군(I think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그럴듯한 용의자들을 체포해와!(Round up the usual suspects)", "꼬마야, 너를 위해서(Here's looking at you, kid)",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가 있잖아요(We'll always have Paris)"등등 이 영화의 여러 대사들은 영화광이 아닌 사람들의 입에도 오래도록 오르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성공한 영화적인 이유를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긴 어렵다. 특히 이 시기에 명멸했던 수많은 비슷비슷한 영화들과 구분될만한 특징을 논리적으로 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Casa Blanca>의 히트는 여러 요인들의 묘한 화학적 반응의 결과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험프리 보가트와 일그리드 버그만의 불균형한듯 하면서도 절묘한 조화. 사나이의 가슴아픈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배경으로 보편적인 비장미를 덧입힌 줄거리. 그러나 그 비장미가 과도하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게 처리한 결말. 우스꽝스런 상투성과 시대를 초월한 매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대사들.

하지만 이 영화를 일단 본 관객의 가슴에 남는 가장 큰 앙금은 가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한 사내가 처한 처지의 절절함이다. 좌로 가면 사랑을 잃고, 우로 가면 또 다른 이유로 사랑을 잃는다. 떠나 보내도 사랑은 떠나고, 함께 있어도 사랑은 떠난다. 어쩔 도리 없이, 릭에게 사랑은 과거형이다. 되찾을 길 없는 젊은 시절, 뜨겁던 옛 사랑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어찌 그 혼자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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